들어가는 말
내가 이 행성에 온 이유
지구에서 산 지 5년째 되던 해에, 나는 엉뚱한 행성에 착륙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정거장을 지나친 게 틀림없었다.
같은 종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나는 내가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할 수는 없는 사람 같았고, 동료 인간과 겉모습은 같지만 기본 특징은 전혀 다른 것 같았다.
우리 집 정원에 세운, 한쪽이 기울어진 알록달록한 텐트는 내 우주선이었다. 나는 그 안에 앉아 지도책을 펼쳐놓고, 우주선을 타고 내 고향 행성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하곤 했다.
우주선 발사 작업이 뜻대로 되지 않자, 나는 나를 이해해줄 것 같은 소수의 사람 중 한 명에게 물었다.
“엄마, 인간 사용 설명서는 없나요?”
엄마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런 거 있잖아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설명해주는 안내서 같은 거요.”
상대방의 표정을 읽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 어려워서 확실하진 않지만, 그 순간 나는 엄마의 마음이 찢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런 건 없단다, 밀리.”
말도 안 돼. 우주의 모든 것에 관해 책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주는 책이 없다니. 세상에 나가도록 준비시켜주고, 힘들어하는 사람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위로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다른 사람과 함께 울고 웃는 법을 알려줄 책이 없다니.
나는 내가 이 행성에 온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상태를 명료하게 인식하고 과학에 흥미가 생기자, 나는 ‘바로 이거’라고 생각했다. 내게 늘 필요했던 설명서를 직접 쓰기로 한 것이다. 나처럼 인간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인간을 설명하는 안내서, 사물을 다르게 보는 법을 터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도울 매뉴얼, 아웃사이더를 위한 삶의 가이드. 바로 이 책이다.
그 일은 항상 모호해 보였고 이룰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A 성적을 받기 위해 복습하는 동안에도 닥터 수스미국의 작가이자 만화가-옮긴이를 읽는 아이였다. 사실 소설을 읽을 때 두렵곤 했다. 하지만 나는 내게 부족한 다른 모든 것을, 특수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뇌와 과학을 향한 넘치는 사랑으로 보완했다.
스스로 정상이라고 절대 느낄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s, ASD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 이하 ADHD, 범불안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 GAD를 갖고 있다. 이 질병들을 모두 갖고 있으면 인간다운 삶을 살기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종종 그렇게 느낀다. 자폐증을 갖고 산다는 것은 조종기 없이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팬이나 기구 없이 요리하거나, 악보 없이 연주하는 일과 비슷하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처리하고 이해하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들다. 우리는 종종 필터 없이 보거나 직설적으로 말하며, 쉽게 격한 감정에 휩싸이고, 기이한 행동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의 재능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나는 내 앞에 있는 탁자를 계속 두드리고, 끽끽거리는 괴상한 소음을 내며, 끊임없이 경련하는 등 나를 괴롭히는 신경성 틱 행동을 시도 때도 없이 한다. 잘못된 때에 잘못된 말을 하고, 영화의 슬픈 장면에서 웃으며, 중요한 순간마다 계속 질문을 던진다. 또 완전한 멜트다운meltdown, 즉 자제심을 잃고 정신적 혼란에 빠지는 일을 결코 피할 수 없다.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싶다면 윔블던 테니스 결승전을 생각해 보면 된다. 공, 그러니까 내 정신은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점점 더 빨라진다. 위아래로 좌우로 튕겨 오르며 계속 움직인다. 그러다 갑자기, 변화가 생긴다. 선수가 미끄러지거나 실수하거나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이다. 공은 통제를 벗어나고, 그러면 멜트다운이 시작된다.
이렇게 살면 정말 답답하지만, 완전히 자유롭기도 하다.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나만의 세상, 즉 스스로 자유롭게 규칙을 정할 수 있는 세상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괴상한 칵테일처럼 뒤섞인 내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 축복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신경다양성은 내 삶의 강력한 무기로, 빠르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완벽하게 분석하는 정신적 도구가 되어 나를 무장시켜주었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다르게, 편견 없이 본다는 뜻이었다. 불안과 ADHD는 내가 ‘스카이콩콩’을 타듯 지루함과 강력한 집중 상태를 넘나들면서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며, 내가 처한 각각의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온갖 결과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게 해주었다. 나의 신경다양성은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와 관련된 질문을 수없이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그 질문들에 답할 능력도 주었다.
나는 살아가면서 내게 무한한 즐거움을 안겨준 과학을 통해 이 질문의 해답들을 찾았다. 인간은 모호한 존재이며 종종 모순적이고 이해하기 힘들지만, 과학은 신뢰할 수 있고 명확하다.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도, 의도를 숨기지도, 뒷말을 하지도 않는다. 일곱 살 때 나는 삼촌의 과학책들과 사랑에 빠졌다. 어디에도 없던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들이 그 속에 가득했다. 일요일마다 나는 삼촌의 서재에서 과학책에 흠뻑 빠져들었다. 마치 잠겨있던 압력 밸브가 풀린 것 같았다. 나를 가장 혼란에 빠뜨렸던 것, 즉 타인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무언가를 생애 처음으로 찾았다. 세상이 보여주기를 거부했던 확실성을 찾아 끝없이 헤매온 내게, 과학은 충실한 조력자이자 가장 진실한 친구였다.
과학은 현재 내가 세상을 보는 렌즈를 마련해주었고, 내가 인간들의 행성을 탐험하면서 부딪힌 가장 진실한 친구였다.
과학은 현재 내가 세상을 보는 렌즈를 마련해주었고, 내가 인간들의 행성을 탐험하면서 부딪힌 가장 불가사의한 인간 행동들을 많은 부분 설명해주었다. 과학은 전문적이고 난해하게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분명하게 밝힐 수 있다. 이를테면 암세포는 효율적인 협력에 관해 그 어떤 팀 빌딩조직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팀워크 개발 기법-옮긴이 훈련보다 더 잘 알려줄 수 있다. 우리 몸의 단백질은 인간관계와 상호작용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머신러닝은 우리가 더 체계적인 결정을 하도록 도울 수 있다. 열역학은 인간의 삶에 질서를 세우려는 노력을 설명하고, 게임이론은 예의범절이라는 미로를 헤쳐나갈 길을 보여주며, 진화는 인간들의 의견이 그토록 다양한 이유를 알려준다. 이처럼 과학 법칙을 이해하면 우리는 두려움의 근원, 관계의 기반, 기억의 작용, 의견 충돌의 원인, 감정의 불안정성, 독립성의 범위와 같은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내게 과학은 잠겨있는 세상의 문을 여는 열쇠다. 과학이 가르쳐주는 것들이 신경전형성neurotypical을 가진 사람이든 신경다양성을 가진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두에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실제 인간이 움직이는 방식, 즉 우리 몸과 자연계의 기능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교과서에서 다이어그램으로만 훑어본 생물학과 물리화학은 사실 고유한 특성, 체계, 의사소통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것들이 일상의 경험을 반영하기 때문에 인간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둘 중 하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다른 하나를 이해하려 하는 것은 내용의 절반이 없는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려면 우리가 사는 세계와 인류를 설명하는 과학을 더 잘 이해해야 한다. 과학은 보통 사람들이 본능, 어림짐작, 가정에 기대는 영역에 명확성을 부여하고 해답을 제공할 수 있다.
나는 사람들과 인간 행동을 외국어처럼 습득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거기에 능숙하다는 이들 사이에서도 어휘력과 이해력에 격차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필요해서 만들어야 했던 사용 설명서인 이 책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인간관계, 개인의 딜레마, 사회적 상황을 더 잘 이해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기억이 시작된 이후 내 삶을 지배해왔던 질문이 하나 있다. 원래 그렇게 프로그램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타인과 연결되는가? 나는 사랑, 공감, 신뢰 같은 감정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절실하게 알고 싶다. 그래서 나는 말과 행동, 사고방식을 시험해보면서 내 삶에서 직접 과학 실험을 했다. 완전한 인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 동족 사이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구성원이 되고 싶었다.
이 과제를 수행하면서 나는 (앞으로 이 책에서 만나게 될, 지지받지 못한 사람들과 다르게) 나를 돌봐주는 가족과 친구, 선생님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행운을 얻었다. 내가 살면서 누린 이 모든 특혜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출발점이 다른 상황에서 어떤 일이 가능할지, 어떤 성취를 이룰 수 있는지에 관해 내 경험을 나누고 싶다. 전형적인 자폐증으로 분류하기에는 너무나 ‘정상’으로 보여서 종종 고기능 자폐증으로 불리지만, 보통의 신경전형성으로 분류하기에는 너무나 괴이한 아스퍼거증후군Asperger’s syndrome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내가 살아온 두 세계를 잇는 통역사라고 생각한다.
한편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깨달음 덕분에 내 삶이 바뀌었다. 내가 한 명의 인간이며, 나 자신이 될 권리, 정확하게는 나 자신이 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받아들여 줄 인간관계를 이어갈 권리가 있다. 특히 선천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타고나지 못해 인간관계를 유지하려 분투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내가 이 책에 풀어놓을 모든 경험과 생각을 통해 인간으로서 우리가 지닌 공통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성취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스퍼거증후군과 ADHD를 지닌 내 뇌 속 이상한 세상으로의 여행에 당신을 초대한다. 정말 괴상한 곳이지만 따분해질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공책과 헤드폰을 챙기도록 하자. 나는 평소 헤드폰을 벗는 일이 거의 없는데, 헤드폰이 감각적으로 과부하가 걸리기 쉬운 나를 바깥세상과 차단해주는 뛰어난 방어 도구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갖췄다면 준비는 끝났다. 이제 출발해보자.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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