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코끼리의 인사
무샤라 웅덩이를 향해 차를 모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미비아의 에토샤 국립공원 북동쪽 모퉁이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매해 7월 무렵에 그곳을 방문해 코끼리를 연구했다. 2만 2,000제곱킬로미터가 넘는 넓은 땅에 위치한 에토샤 국립공원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으로 손꼽힌다. 이곳에 살고 있는 코끼리의 수는 약 3,000마리에 이른다.
나는 생각에 잠겨 먼지에 휩싸인 채 희뿌옇게 바랜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흙먼지가 날리던 그 순간, 길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두 마리의 거대한 동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가 달려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나는 코끼리 두 마리와 충돌하지 않으려고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춰 세웠다. 코끼리는 땅에 사는 동물 중 가장 덩치가 크다. 바로 내 눈앞에서 암컷 코끼리 두 마리가 흰 먼지구름을 잔뜩 일으키며 서로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코끼리 시간’이 시작되는 때에 맞춰 웅덩이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이미 한 시간이나 늦어버렸다. 나는 하루 중 코끼리 가족이 웅덩이에 모이는 시기를 ‘코끼리 시간’이라고 불렀다. 오후 네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가 ‘코끼리 시간’이다. 그곳에는 내가 연구팀과 함께 연구하고 있는 코끼리들도 있었다. 코끼리들을 식별할 수 있는 목록을 만들려면 해가 지기 전에 사진을 찍어두어야 했다.
먼지가 가라앉자 나는 곧바로 ‘노브노즈’와 ‘도넛’을 알아봤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코끼리들에게 각각의 특징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노브노즈의 코에는 커다란 혹이 튀어나와 있었고, 도넛의 귀에는 도넛 모양 같은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다른 방향에서 걸어오던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자마자 곧장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번에도 그들은 으레 나누던 인사를 나누기 위해 내 길을 막았다.
코끼리들은 얼굴을 마주하고 섰다. 머리를 어깨 위로 높이 쳐들고 귀를 빠르게 퍼덕거렸다. 도넛은 코를 치켜올리고 우레 같은 소리로 울부짖었다. 방금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 듯한 소리였다. 오랫동안 관찰한 끝에, 나는 야생 코끼리들이 엄청나게 흥분하면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코끼리들은 부드러운 소리를 내면서 서로의 코를 상대의 입가로 가져갔다. 두 코끼리는 코를 길게 뻗어 악수하고 있었다. 도넛이 코끝을 노브노즈의 입가에 부드럽게 갖다 대자 둘 다 흥분해서 코끝을 떨었다. 노브노즈도 화답하듯 도넛의 입가에 자신의 코끝을 가져갔다.
그들에겐 당연한 인사 의례를 한 차례 마친 뒤에 두 코끼리는 북쪽을 바라보며 나란히 섰다. 둘은 코의 한 발 길이 정도나 되는 부분을 도로에 축 늘어뜨렸다. 코끼리의 코는 엄청나게 크고 무엇이든 휘감을 수 있지만 이번만큼은 코의 근육이 모두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는 금방이라도 행진하려는 듯 어깨를 꼿꼿이 세웠다. 하지만 둘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몸을 고정한 채 으르렁거리며 소리를 지르기만 했다. 그다음에 어김없이 하는 일이 있다. 갑자기 볼일을 시원하게 보는 것이다. 이 일을 마친 뒤에야 비로소 암컷 코끼리의 인사가 마무리된다. 순수한 기쁨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그들만의 방식이다.
여러분은 이들이 엄청난 흥분에 휩싸인 채 서로를 반기는 모습을 보고 적어도 몇 년 만에 처음 만났으리라고 짐작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얼마 만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기껏해야 몇 분에서 몇 시간 정도일 것이다. 한 마리를 볼 때마다 다른 한 마리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러니 분명 둘은 아주 오랫동안 떨어져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코끼리는 내가 연구하는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노브노즈는 코끼리 가족의 대장이고, 도넛은 부대장이다. 이들 무리는 주로 근처의 다른 웅덩이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자주 관찰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늘 도넛이 노브노즈의 딸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적당히 차이 났으며 둘은 아주 친밀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노브노즈와 도넛은 계속해서 길고 낮은 울음소리를 냈고, 빠른 속도로 귀를 퍼덕거리면서 열광적인 인사를 멈추지 않았다. 이제 눈 옆 측두샘에서 액체가 흘러내리면서 양쪽 뺨에는 두 개의 눈물 자국이 생긴다. 심리적으로든 생리적으로든 분명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코끼리들이 이렇게 세세한 순서를 지켜 인사하는 목적은 확실했다.
우리도 동물 세계의 일부다
동물 세계의 의례를 우리 삶과 관련지어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사실 동물의 의례와 인간의 의례는 다르지 않고, 다르지 않아야만 한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평화롭게 공존하려면 인사 예절을 지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동물 세계에서 인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관찰하면서 우리는 이 ‘의례’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우리는 인사말 건네기, 머리 숙여 인사하기, 눈 맞추기, 포옹하기와 같은 행동들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인사할 때뿐만 아니라 구애를 하거나 인간관계를 맺거나 함께 어울리거나 애도할 때 지켜야 하는 의례들은 우리 삶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의례를 지키기를 거부하면 잃을 게 많다. 의례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일상을 유지하게 해준다. 모두가 똑같이 행동할 때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예의를 갖춰 의식을 치르는 동물들에게서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
사실 인간은 다른 동식물과 다양한 공통점을 공유한다. 어느 날 오후 워싱턴 DC의 자연사박물관에서 호모에렉투스 쪽에 전시된 인간의 조상에 관한 도표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우리가 지닌 유전자의 50퍼센트는 바나나와 똑같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유전자가 초파리 유전자와 61퍼센트가 겹치고 쥐의 유전자와는 85퍼센트가 동일하며,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침팬지의 유전자와는 98퍼센트나 일치한다는 사실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바나나라니! 바나나는 뇌도 없고 척추도 없고 동물도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세포 유지’라는 유전자를 바나나와 공유한다. 이 유전자는 호흡, 회복, 재생 같은 기본적인 세포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 식물과 동물 모두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포가 재생할 수 있어야 하고 지속적으로 이산화탄소나 산소를 소비해야 한다. 모든 생물이 유전자의 일정 부분을 공유한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인간은 지구의 다른 모든 생물과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최근 유전자 연구에 따르면, 현재 모든 생물은 약 35억 년 전에 생겨난 단세포 생물에서 진화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출발지는 ‘모든 생물의 마지막 공통 조상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의 머리글자를 따서 LUCA라고 이름 붙인 생물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 과학계는 생명의 근원지에 관해 논쟁해왔다. 생명이 시작된 곳이 소금기가 많거나 온도가 높은심해 열수구나 화산 근처 극한 환경인지, 아니면 다윈이 생각했듯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작고 따뜻한 연못’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지금은 갈라파고스제도의 심해 열수구에서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의견이 보편적이다.
단세포생물이 다세포생물로 진화하는 데는 30억 년 정도가 걸렸지만, 10억 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나나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다세포생물의 공통 조상을 만날 수 있다. 덕분에 바나나와 인간의 유전자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 이해하기 힘들다면, 인간도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는 아가미구멍과 꼬리를 지닌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모든 척추동물의 배아에는 아가미구멍이 있다. 모든 척추동물은 4억 년 전에 살았던 물고기와 공통 조상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말, 호랑이, 고래, 박쥐 그리고 인간과 같은 다양한 포유동물의 조상은 800만 년 전에 살았던 작은 ‘쥐’였다. 그래서 모든 포유동물은 젖샘과 몸털을 지니고 있고 가운데귀 속에는 작은 뼈 세 개가 있다는 분명한 특징을 공유한다.
우리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지어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인간이 더 발달하거나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존재라서 자연을 지배한다는 이제까지의 생각은 그릇되었다. 과연 인간이 다른 동물과 비슷하다는 깨달음은 인간의 권위에 대한 위협일까? 인간과 동물이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할 수는 없을까? 특히 동물들의 의식을 지켜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삶의 모든 면에서 동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의례를 행한다. 덕분에 동물들은 험난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기어코 살아남는다. 의식을 치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고 가족이나 집단과 긴밀하게 소통한다. 동물들의 의례는 인간의 의례와 다를 바 없다.
뇌 영상 기술이 발달해 우리는 동물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다른 영장류나 개, 암초 오징어 등 수많은 동물의 뇌를 비교해 인간과 동물의 뇌가 비슷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게다가 인간과 동물은 비슷한 환경에 노출되면 같은 호르몬을 분비한다. 많은 동물이 인간과 같이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도 있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야생동물은 끊임없이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나는 이들은 관찰하면서 우리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어 매일같이 감탄한다. 코끼리들이 예의를 갖춰 인사하거나 새끼를 구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동물 사회가 인간 사회와 얼마나 비슷한지 새삼 다시 생각한다. 이가 모두 빠진 늙은 코끼리를 위해 젊은 코끼리가 음식을 대신 씹어서 먹여주는 다정함에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인간이 노인을 돌보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인간의 범주를 확대해 이처럼 높은 감성 지능을 지닌 동물들을 우리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동물 사회에 더 공감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인간과 동물의 조상은 같다. 심지어 우리 안에서도 다른 집단끼리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야생동물과 인간이 공통적으로 행하는 의례들을 탐구한다. 그러면서 인간과 야생동물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마지막에는 두 동물 집단의 차이점을 알아낼 수 있는 길도 제시하고자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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