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광주로 가는 길
코를 찌르는 닭똥냄새. 불과 2~3년 전만 해도 전라도에 진입했다는 걸 알게 해주는 신호는 코에서부터 왔다. 천안논산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논산을 거쳐 익산에 들어서면서다. 인근 양계장과 소·돼지 축사에서 풍기는 분뇨 냄새는 가만 놔두면 차 안을 온통 뒤덮어버릴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닭똥 냄새는 압도적이었다. 냄새가 도로를 뒤덮는 길은 전주에 다다를 때까지 이어졌다. 고속도로 표지판에 ‘삼례’라는 두 글자가 나타나면, 얼른 차량 바깥 공기의 유입을 막는 게 일이었다.
차량으로 서울과 이 지역을 오갈 때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했던 닭똥 냄새는 한국 사회에서 전라도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후각적 기호다. 전라북도는 전국 시도 가운데 닭육계와 산란계 합산 사육 두수가 가장 많다. 2021년 상반기 현재 3,470만 마리로, 2위인 충남3,030만 마리보다 440만 마리 앞선다. 비율로 따지면 전북이 기르는 닭은 19.5%에 달한다.
전북 내에서 닭 사육이 늘어난 데에는 현대 한국인의 주요 먹거리가 된 치킨의 힘이 크다. 식용유에 튀겨낸 프라이드치킨이 1980년대 초 대학가를 중심으로 확산되다가, 1980년대 후반 들어 처갓집 양념통닭, 멕시칸치킨, 페리카나 등 1세대 치킨 프랜차이즈가 양념치킨을 선보이면서 치킨은 주말 저녁 가족들이 부담 없이 고르는 외식 메뉴로 떠올랐다. 1990년대 급증한 중산층은 교촌치킨, BBQ, 네네치킨, 호식이두마리치킨 등의 등장을 이끌었고, 2000년대에는 BHC, 굽네치킨 등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에 따라 치킨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치맥’ 문화가 대중화되었고, 간장치킨, 파닭, 오븐치킨 등 조리 방식의 다양화 및 고급화도 이루어졌다.
닭 사육 두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은 필연적이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전국에서 사육되는 육계1,890만 마리는 달걀을 낳는 산란계3,930만 마리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1999년 4,180만, 2009년 7,600만, 2017년 8,740만, 2021년 상반기 1억 300만 마리로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2021년 상반기 산란계 사육 두수는 불과 6,400만 마리였다.
전국 양계업에서 전북이 차지하는 위상을 살펴보자. 먼저 1988년에는 5.1%에 지나지 않았는데, 당시 양계업이 부유한 도시 인근에 몰려 있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1999년 11.8%, 2009년 15.6%, 2017년 18.3%로 비중이 늘며 급격히 ‘양계의 메카’가 되었다. 특히 고기 소비용인 육계는 27.5%가 전북에서 길러진다. 전남도 육계의 13.6%를 기르고 있다. 이를 합산하면 40.1%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를 이제 ‘호남이 없으면 치킨도 없다’는 말로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양계장은 ‘공장형 축산’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규모화를 지향하고, 각종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대표적인 기피시설이다. 전국의 양계장은 육계는 1,757곳, 산란계는 847곳에 불과하다. 그런데 350만 마리 이상 기르는 시군구 10곳 가운데 6곳이 남원, 정읍, 나주, 익산, 김제, 고창 등 전라도 지역이다. 다른 1곳도 접경지역인 논산이니 사실상 7곳이라 말해도 무방하다.
반면 치킨 소비는 수도권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2019년 치킨 전문점 2만 5,700곳 가운데 23.8%는 경기도, 14.6%는 서울, 7.4%는 부산에 있었다. 치킨 전문 프랜차이즈는 대구·경북을 모태로 한 곳이 다수다. 교촌치킨, 멕시카나치킨, 호식이두마리치킨, 땅땅치킨 등이 대구를 기반으로 성장한 치킨 프랜차이즈다. 교촌치킨은 1991년 경북 구미에서 시작했는데, 입소문이 번지면서 1995년 프랜차이즈로 변신하고 서울로 진출했다. 서울이 치킨을 소비하고, 대구가 치킨 회사를 만든다면, 전북은 치킨 원가의 10% 남짓인 닭을 길러 납품한다. 모두가 꺼리는 저부가가치에 더럽고 힘든 일을 떠맡아야 했던 호남의 역할이, 오늘날 치킨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재연되는 셈이다.
환경 규제 등의 영향으로 이제 고속도로에 가득 깔린 냄새는 사라졌지만, 전주 이남으로 가면서 2~3차선으로 줄어드는 도로는 여전히 호남에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명색이 고속도로인데 도로 중간에 팬 곳을 아스팔트로 메운 자리가 곳곳이다. 또 요즘 고속도로답지 않게 휘어 있고 고도차가 심하다. 그나마 예전보다 좋아진 도로 형태다.
지금은 크게 언급되지 않지만 도로와 철도는 전라도의 낙후성과 소외를 그대로 보여주는 징표였다. 호남선 철도가 일제 식민지 시절 단선單線 그대로 수십 년간 유지된 것이 대표적이다. 대전~익산 복선화는 1978년, 익산~광주는 1988년, 광주~목포는 2003년에야 공사가 마무리된다. 1980년대 후반 경부선은 하루 112대 운행된 데 비해, 호남선은 4분의 1인 수준인 28대에 그쳤다. 열악한 도로 사정까지 겹치면서 호남선 철도 객차는 언제나 만원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상경하는 사람과 가난한 보따리장수들을 가득 싣고 달리곤 했다.
지역의 풍경: 빽빽한 아파트와 텅 빈 구도심
고속도로 광주 나들목을 지나면 바로 아파트 단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광주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호남고속도로 양옆으로 아파트가 연이어 늘어서 있다. 호반, 라인, 대주, 부영 등 친숙한 호남 기업들의 이름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때부터다. 호남고속도로는 장성에서 동서 방향으로 꺾여 광주 구도심을 지나, 곡성과 순천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광주 시가지가 팽창하면서 광주광역시 내 도로는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는 모양이 됐다. 끊임없이 신시가지를 조성하는 도시개발 양상 덕분이다. 덕분에 광주는 아파트의 도시가 됐다.
2019년 현재 광주의 주택 52만 6,000호 가운데 아파트는 42만 호에 달한다. 아파트 비중은 79.7%로 대전73.5%, 대구72.4%, 부산66.5%, 서울58.3%을 앞선다. 아파트 단지를 이어붙인 기이한 형태를 한 세종시85.2%가 유일하게 광주보다 아파트 비중이 높은 도시다. 그러다 보니 광주의 지역 경제와 정치는 ‘아파트’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북광주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북구와 동구 구도심을 지나면, 2021년 6월 발생한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 현장이 나온다. 참사가 발생한 현장은 학동 4구역 재개발사업이 한창이다. 원래 2층 양옥집들이 주로 들어찬 곳이었는데, 철거를 거부하는 외곽의 몇몇 건물을 제외하면 모두 헐려 있다. 2,300세대가 들어서는 대규모 부지는 황량하기 짝이 없다. 멀리 ‘아이파크’라는 커다란 글자가 벽면에 적힌 29층짜리 아파트가 무등산을 가로막고 서 있는 모습만이 눈에 띌 뿐이다. 주변의 건물들이 낮다 보니 1,400세대의 고층 아파트는 위압감마저 준다.
이 아파트무등산아이파크는 광주에서 재개발사업 붐에 불을 지핀 곳이다. 세대수가 가장 많은 110㎡ C타입은 2017년 4월 3억 원 전후로 거래됐는데, 2021년 7월에는 8억 1,000만 원에 팔렸다. 학동 4구역은 재개발사업이 끝나면 무등산아이파크 2차라는 명칭으로 불릴 예정이다. 북쪽으로는 서방시장 인근 풍향동에서, 남쪽으로는 화순군과 만나는 소태동까지 동구와 북구의 웬만한 노후 주택단지에선 재개발사업이 추진 중이다.
활기 넘치는 재개발사업 현장과 달리 구도심은 수십 년째 정체 상태다. 한때 충장로 우체국 앞에만 서 있으면 아는 사람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는 구도심은 이제 10~20대들만 오갔다. 지역 대표 제과점인 궁전제과를 지나치면서 SNS에 올릴 사진을 찍는 이들을 제외하면, 몇 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옛 전남도청 자리에 청사 건물을 놔두고 지하로 파 내려간 형태로 조성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야심 차게 진행된 사업과 달리 인적이 드물다.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롤 기다리는 이들만 보일 뿐이다. 예전 모습 그대로인 도청 앞 구도심에서 40년 전 역사가 그저 보전되는 공간이 된 셈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각, 충장로의 한 식당에서 친구와 만나 저녁 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가졌다. 역사가 꽤 오래된 노포로 낙지볶음, 조개 해장국 등이 이곳의 대표 메뉴다. 지역 소주인 ‘보해’를 내달라 청하니 들여놓지 않은 지 오래란다. “여기 사람이라면 보해를 먹어야 하겄지라. 그런데 보해를 들여놓으면 한 병도 안 나가서 몇 달간 쌓여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겄소”라는 것이 사장님의 설명이다. 한때 지역 소주의 강자 중 하나였던 보해는 이제 식당 냉장고에서까지 밀려나 존재감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보해양조의 소주 시장 점유율은 2012년 5.4%에서 2020년 2% 전후로 반 토막이 났다. 전라도 기반 지역 기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면 바로 보해일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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