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읽기'와 '독자'를 되돌아보다
우리는 다양한 것을 읽는다. 길을 가다 ‘멈춤’ 표지판을 읽을 수도 있고, 장폴 사르트르의 작품을 읽을 수도 있다. 도움을 구하는 광고나 하이쿠를 읽을 수도 있다. 위키피디아의 글을 읽을 수도,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를 읽을 수도 있다. 이 모두가 읽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각각이 의미하는 바는 다르다. 우리가 종이와 스크린, 오디오를 통한 읽기의 장단점을 논할 때에도 어떤 읽기를 뜻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몰랐던 ‘읽기’의 다양한 유형
읽기의 유형에 대한 표준적 접근법은 ‘훑어보기skimming’텍스트를 훑으며 요지를 파악하는 것와 ‘살펴보기scanning’특정 정보를 찾는 것 그리고 ‘선형적 읽기’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를 나눠서 보는 것이다. 우리는 글이나 책을 읽을 때 먼저 목차를 훑어본 다음 더 읽고 싶은지혹은 더 주의를 기울여 읽고 싶은지 결정할 수 있다. 종이로 출력한 텍스트를 가지고서 특정 단어나 이름, 날짜를 찾으려 할 때는 ‘살펴보기’를 하지만, 디지털 텍스트이면 곧바로 검색이나 찾기 기능을 실행한다.
‘선형적 읽기’는 다시 구분해볼 수 있다. 읽는 작품의 범위에 초점을 둔다면 ‘폭넓은 읽기’와 ‘집중해서 읽기’로 나눠 이야기할 수 있다. ‘폭넓은 읽기’란 무엇일까? 광범하게 다양한 책혹은 기사, 이야기을 읽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집중해서 읽기’란? 보다 적은 수의 작품이나 주제에 집중하되 대개는 더 깊이 읽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우리는 ‘선형적 읽기’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다. 실제로 한 편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책의 부분 부분을 휙휙 넘겨보거나 중간에 그만둔다. 우리는 수백 년 동안 그렇게 읽어왔다. 3장에서 보겠지만, 선형적 텍스트라고 해서 모두 선형적 방식으로 읽힌다는 솔깃한 믿음은 진실이라기보다는 신화에 가까울 때가 많다.
텍스트를 완독할 때도 읽는 사람마다 목적그리고 마음가짐이 다를 수 있다. 어떤 작품은 단 한 번만 읽고 마는데, 대개 적당히 빠른 속도로 페이지를 따라간다. 이런 읽기를 나는 ‘일회성 읽기’라 부르고 싶다. 긴 비행이나 휴가 중에 흠뻑 빠져 읽기 위해 집어든 추리소설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오디오북이든을 떠올리면 된다.
또 다른 유형의 선형적 읽기는 지속적인 주의를 요하는 텍스트를 읽을 때 나타난다. 많은 경우 이는 ‘다시 읽기’를 뜻한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특별히 재미있게 읽은 나머지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읽은 열두 살짜리 아이를 생각해보라. 내 친구 중 한 명은 몇 년에 한 번씩 향수에 젖어 《오만과 편견》을 다시 꺼내 읽곤 한다. 성경을 되풀이해 읽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생각해볼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글로 된 텍스트를 반복해서 읽듯 오디오북도 그렇게 다시 들을 가능성이 있을까? 생각해볼 질문은 또 있다. 종이와 디지털 버전 중 우리가 다시 읽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은 어느 쪽일까? 연구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오디오나 디지털 텍스트보다 종이 텍스트를 다시 찾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주의를 좀 더 기울이는 또 다른 방법은 의도적으로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다. 하버드대학교의 영어학 교수인 루번 브라우어Reuben Brower는 몇 년 전 학부생을 위한 문학 강좌를 개설했는데, 여기서 학생들에게 자신이 ‘느린 읽기’라고 부르는 것을 가르쳤다. 브라우어가 염두에 둔 것은 다음과 같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을 관찰하기 위해 읽기 과정의 속도를 늦추고, 단어들, 단어들의 쓰임 그리고 그 의미에 아주 면밀히 주의를 기울일 것.
브라우어는 자신의 학문적 배경인 고전학을 토대로, 학생들도 마치 라틴어나 그리스어를 번역할 때처럼 단어 자체에 집중하는 법을 배우기를 바랐다. 요즘 즐거움을 위해 읽는 경우에도 느긋한 보속을 취하도록 권장하는 ‘느린 읽기’ 운동이라는 게 있다. 하지만 용어는 같아도 둘은 아무 관련이 없다.
브라우어처럼 단어에 집중하는 것은 20세기 중반 영미문학계에서 번성했던 이른바 신비평주의의 핵심이기도 하다. 신비평주의에서 문학 읽기와 분석의 목표는 작품특히 시을 자기 완결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었다. 따라서 의미를 파악할 때 작가의 일대기나 작품이 쓰인 역사적 배경은 소환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신비평주의자들은 비평의 임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꼼꼼히 읽기close reading’라 불렀다. ‘꼼꼼히 읽기’는 명시적으로 문학 텍스트에, 좀 더 구체적으로는 텍스트 해석의 방법론에 적용되었다.
‘꼼꼼히 읽기’라는 말은 전문 영역에서 기원했지만 우리에게 훨씬 더 친숙한 것, 다시 말해 한 편의 글에 면밀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하는 데에도 사용되어왔다. 영어학 교수인 존 길로리John Guillory는 이를 더욱 포괄적인 의미에서 ‘자세히 읽기reading closely’라고 불렀다. 사실 사람들은 문학 비평이 출현하기 오래전부터 수천 년에 걸쳐 ‘자세히 읽기’를 실행해왔다.
그런가 하면 여러 대학교의 작문 강사들은 ‘비판적 읽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비판적 읽기’의 핵심은 저자가 말한 것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비판하며 텍스트를 쌍방향으로 읽는 것이다. 지금 이야기한 과정들이 왠지 모르게 친숙하게 들린다면, 바로 이런 것이 ‘비판적 사고’라고 하는 무정형의하지만 너도나도 이야기하는 개념에서 토대가 되는 뇌 활동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꼼꼼히 읽기’나 ‘자세히 읽기’, ‘비판적 읽기’ 같은 개념은 요즘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또 다른 용어인 ‘깊이 읽기’와 비슷한 정신 영역에 자리 잡고 있다. ‘깊이 읽기’라는 말은 문학 연구자인 스벤 버커츠Sven Birkerts가 1994년에 출간한 책 《구텐베르크 비가The Gutenberg Elegies》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버커츠는 ‘깊이 읽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깊이 읽기란] 천천히 생각에 잠기며 한 권의 책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그저 단어를 읽는 게 아니다. 그 주변에서 우리의 삶을 꿈꾸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버커츠의 말에 호응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깊이 읽기’에 대한 더욱 최근의그리고 구체적인 정의는 읽기 전문가인 매리언 울프와 미리트 바질라이Mirit Barzillai가 내린 것이다.
[깊이 읽기란] 이해를 촉진하는 동시에, 추론적 사고와 유추적 사고, 분석적 기술과 비판적 분석, 성찰과 통찰까지 포함하는 일련의 정교한 과정이다.
‘깊이 읽기’에 바치는 찬가는 비단 교육자와 읽기 전문가들뿐 아니라 다른 많은 분야에서도 나온다.
‘깊이 읽기’는 사려 깊고 느린, 성찰적 읽기다. 앞으로 보겠지만 ‘깊이 읽기’는 대부분 인쇄물과 관련이 있다. 앞으로 읽게 될 장에서 ‘깊이 읽기’의 개념을 다시 논의하게 될 텐데, 평소 우리의 읽기가 이 기준에 정확히 얼마나 부합하는지, 스크린 읽기와 오디오 읽기는 ‘깊이 읽기’에 적합한지 질문해볼 것이다.
“적절한 길이와 복잡성을 갖춘 ‘읽기 식단’이 주어진다면, 읽기는 정신 집중과 인내와 기율을 길러주고, 감정적이면서도 미적인 경험을 제공하며, 언어 지식을 키워주고, 경제적인 안정과 개인의 행복을 증진해줄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텍스트를 훑어봐서는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없다.”
― 읽기의 미래에 관한 스타방에르 선언
깊이 읽기의 반의어도 있다. ‘하이퍼 읽기hyper reading’다. 1990년대 후반 커뮤니케이션학 교수인 제임스 소스노스키James Sosnoski가 온라인 생활이 우리가 읽는 방식에 주는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소스노스키에 따르면 ‘하이퍼 읽기’란 ‘독자가 주도하는, 스크린 기반의, 컴퓨터 지원하의 읽기’이다. 여기에는 ‘긴 텍스트들로부터 조각들을 검색해 훑어보고 하이퍼링크하고 추출하는 것’이 수반된다. 말하자면 ‘훑어보기’와 ‘살펴보기’를 합친 것을 한층 강화한 셈이다.
문학 교수인 캐서린 헤일스Katherine Hayles는 ‘하이퍼 읽기’라는 개념을 과잉 주의hyper attention 문제와 함께 논의하면서 대중화했다. 헤일스는 ‘하이퍼 읽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정보가 집약된 환경에 대한 전략적 대응으로, 자신의 주의를 아껴 관련 정보를 재빨리 파악하는 것이다. 그 결과 주어진 텍스트의 비교적 적은 부분만 실제로 읽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하이퍼 읽기’는 ‘훑어보기’와 ‘살펴보기’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약간의 변화가 더해진 것이다. 바로 색다른 동기가 추가되었다. 단편적인 조각들만 찾아 읽는다면 정신적인 에너지를 아낄 수 있을 것이라는 동기 말이다. 원리만 보자면 이 접근법은 종이 읽기나 스크린 읽기에 다 적용할 수 있다오디오는 빨리감기를 하지 않는 한 단어가 하나하나 다 재생되는 것을 듣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로 보자면 사람들을 ‘하이퍼 읽기’ 쪽으로 가장 강력하게 몰아가고 있는 것은 디지털 기술이다.
‘하이퍼’라고 하면 또 다른 이분법이 떠오른다. 디지털 읽기와 관련이 있는 이분법으로, 이른바 ‘선형적 읽기’ 대 ‘하이퍼링크 따라가기’다. 링크는 독자의 유형에 따라 축복일 수도, 저주일 수도 있다. 읽기 능력을 웬만큼 갖춘 데다 주제에 관한 사전 지식 수준도 높은 독자에게는 링크가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해로 안내하는 경로를 열어줄 수 있다. 반면 읽기를 어려워하거나 주제 친숙도가 낮은 독자에게는 링크가 정신적 미로로 이끌어 오히려 이해를 저해할 수 있다. 5장에서 우리는 이런 결론을 뒷받침하는 연구를 보게 될 것이다.
읽기에 관련된 변수들을 하나둘 검토하다 보면, 텍스트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매체가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심리학자들은먼저 제임스 깁슨James Gibson이 주창하고 나중에 도널드 노먼Donald Norman이 수정을 가하는 식으로 ‘유도성affordances’12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해왔다. 이 용어는 특정 사물이 자신을 유용하게 만드는 측면을 말한다. 가령 손잡이는 캐비닛을 여는 데 좋고, 코트는 추위를 막는 데 좋다. 컴퓨터그리고 다른 디지털 도구들는 검색과 멀티태스킹, ‘하이퍼 읽기’에 좋다. 디지털 기기들은 우리를 빠르게 혹은 선택적으로 읽게 강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도록그리고 그런 쪽으로 유인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읽기의 이분법에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단일 텍스트 읽기’와 ‘복수 자료 읽기’다. 디지털 이전 시대에 자란 사람들은, 가령 연구 논문을 쓸 때 종이책이 진열돼 있는 곳 앞에 앉아서 썼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복수의 자료들이 디지털 파일이거나 웹페이지인 경우가 많다. 오늘날 점점 많은 연구 영역에서 학생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온라인 읽기 자료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지 조사하고 있다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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