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켈뢰브 가족
마이아 : 어머니1918년생, 1940년에 결혼, 1957년에 이혼 후 다섯 남매 부양
스티그 : 맏이1941년생, 군과 동거중
브릿 : 둘째이며 고명딸1943년생, 유고슬라비아 출신 페테르와 동거중
얀과 울라 : 쌍둥이1945년생
라슈 : 막내1950년생
*군 : 마이아의 여동생, 스티그와 동거중인 군과 동명이인
*릴메타 : 마이아의 여동생
*마그다 : 스톡홀름에 사는 마이아의 큰언니
오래전 어느 날이 기억난다
해는 이글거리고 쌍둥이 유아차는 끌기 무겁다. 첫째와 둘째는 쌍둥이가 탄 유아차 옆에서 걷는다. 아이들 모두 칭얼대며 투정을 부린다. 피곤해 죽겠다. 우리는 4시간 동안 진료소에 앉아 있었다. 학교에 갈 나이가 되기 전에 아이들이 맞아야 할 주사는 엄청나게 많다. 주사는 디프테리아와 천연두, 폐결핵을 예방해줄 것이다. “집에 가는 길이라 좋구나.” 나는 생각한다. 안나리사 간호사는 기분이 너무 좋지 않았다. 간호사는 내가 대기실 탁자에 놓아두었던 깨끗한 아이들 옷가지를 흩뜨렸다옷들을 어디에 두어야 했을까? 옷을 벗겨주어야 할 아이들이 많았던 탓에 무릎에 앉힐 자리가 부족했다.
언덕은 가파르고 몸은 좋지 못하다. 끌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이 있다. 4년 동안 아이 넷.
집으로 가는 언덕길을 거의 다 올라가자 자전거 한 대가 우리를 향해 벨을 울린다. 자전거에서 내리는 이웃에게 인사한다.
“마이아, 지금요.” 이웃이 소리를 지른다. “지금 시청 사회복지과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지금 그날을 되씹으며 내 이웃이 스웨덴 사회의 시민들이 받을 사회적 혜택에 대해 신문에서 읽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택보조금, 육아수당 등등.
그때는 신문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사회복지과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이웃은 굉장히 새된 목소리로 나에게 스웨덴 사회의 구조 일부를 소리 높여 설명해주었다.
“마이아는 자격이 충분해요.” 이웃은 재차 말했다. “돈이 없으면 사회복지과에 가요. 장작과 먹을거리와 옷 살 돈을 받을 수 있어요.”
“그에 관한 법이 있어요.” 이웃은 거듭 말했다.
저 말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2, 3일 후 병원 진료비를 요청하기로 결심했다. 우리 쌍둥이 아들은 사시가 있어서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했다.
난생처음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을 구하고 ‘사회복지과’에 갔다.
나는 전혀 근심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사회복지과가 있던 경찰서 청사 복도에 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던 것도 기억한다.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 모두 그곳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행복의 빛이 미래에 드리워져 있었다. 미래에는 그 누구도 먹을 것이나 입을 옷을 걱정하며 살아갈 필요가 없을 터였다.
내 차례가 되었고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 말할 수 있었다. ‘사무소’가 진료비를 지불한다고 적힌 쪽지를 받았다. 어레브루로 가는 일은 아마 내가 알아서 해야 할 것이었다. 안과에도 자주 가게 되었다. 쌍둥이에게 안경을 맞춰주어야 했다. 안경 안쪽에는 정상적인 눈을 위한 안대가 붙어 있을 터였다. 일종의 테이프를 많이 사야 했다. 쌍둥이는 툭하면 안경과 안대를 망가뜨렸다. 수도 없이 참으며 수선을 한 후에야 쌍둥이는 이것들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쌍둥이는 여섯 살 때까지 안경과 안대를 써야 했다. 그러고 나서 사시안이 교정되었다.
1953년 한국 위기
아동복지 담당공무원이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옷의 목록을 작성하라고 말한다. 담당공무원은 퇴근하고 나는 그 책상에 앉아 있다나는 저녁에 시청 사무실 몇 군데를 청소한다.
출근할 때 나는 다섯 아이 모두 겨울옷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나는 한 손에 펜을 쥔 채 앉아 있지만 종이에는 아무것도 적지 못하고 있다. 마음은 한반도에 가 있다. 한 철이 지나면 그곳에는 얼마나 많은 재킷이 필요할까?
마침내 나는 재빨리 “바지 한 벌과 재킷 한 벌”이라고 적는다.
나는 온통 한국 생각뿐이다.
나는 살림을 할 수가 없다. 매달 나는 예산 책정을 결심한다.
월급날이면 한 달 30일에 맞추어 돈을 쪼갤 것이다.
계획적으로 살림을 할 것이다.
앵클부츠
우리 아들 중 하나에게 신발과 겨울용 신발 덮개 사주는 것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 아이는 중고등학교에 다닌다.
그 학교는 좋은 신발을 신는, 교육받은 엘리트 학교다.
이제 신발과 신발 덮개를 장만해줄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사회복지과 방문 전날 온몸에 메스꺼운 느낌이 든다. 혀는 입천장에서 떨어지지 않다시피 하고 배 속 신경들은 꾸르륵거린다.
“일찍 가야 하나, 아니면 늦게?”
어느 날 밤에는 커다란 판지 상자 속에 웅크리고 있는 몽상에 빠진다. 그곳에서 나는 죽는다. 나는 판지 상자에 멋진 글씨체로 미리 이렇게 써놓았다.
일체의 도움에 감사했습니다.
_ 어느 사회복지 대상자
사회복지사가 상자를 열고 그 안에서 죽은 사람을 발견할 때 나는 사회복지사의 표정을 살핀다. 사회복지과 방문 전날 밤 그런 생각들을 한다.
아침이 되어 사회복지과로 간다. 사회복지과 과장은 겨울용 앵클부츠를 제안한다가장 저렴하다. 나는 제대로 된 신발에 대한 내 결정을 굽히지 않았고 저녁에 신발 한 켤레와 신발 덮개 한 쌍이 우리집 현관에 놓여 있었다.
내가 바꾸고 싶은 것
(결코 실리지 못한 독자 투고)
우리 일부 사회복지사의 넓기도 한 오지랖.
사회복지사는 교육을 받았어도 모든 일을 할 수 없으며 다 알지도 못한다.
긴급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대처가 스웨덴에서는 얼마나 잘 준비되어 있는지에 대한 언론 기사가 자주 눈에 띈다…….
나는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후 우리가 읽는 이 좋은 것의 일부를 받아보려고 노력했던 비혼자 딸을 알고 지낸다. 의사는 그녀에게 그녀가 연금을 받을 만큼 아프지 않기 때문에 질병연금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어느 기초지자체 공무원은 그녀가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녀가 연금을 받기까지는 나이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공무원은 계속해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홀아비 집에 가정부 자리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돈이 그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진다고 믿지 말아야 한다.
숙고 한 가지.
나는 복지사회에 산다.
시간은 이 지구 전역과 똑같은 식으로 흘러간다.
새벽과 낮과 한낮과 저녁과 밤.
나는 한 가지를 아주 깊이 생각했다……. 인간의 인내를.
다른 종류의 ‘자극’ 없이 인간은 매우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우리 동네에서는 그러한데, 그 이유는 이웃들 사이에서 큰 불평이 전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들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등등……. 작은 집들에서 아내들은 작은 인형의 집에서처럼 살아간다. 저들 각자는 가장 좋은 커피잔들과 가장 흰 침대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한 진짜 남편의 표정을 반드시 보여준다.
저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자기들 인형의 집에서 놀 수 있을 것인가?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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