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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의 비보
소영이는 내가 아는 유일한 ‘기씨’였다. 소영이 아빠와 동생은 행주 기씨 무슨 파 종손이라고 했다. 나와 다르게 소영이는 성씨에 대해 아는 게 많았다. 기씨 집안은 자손이 귀해 걱정이라고 종종 말하기도 했다. 그럴 때 소영이는 무슨 조선 시대 할머니 같았다.
일요일 밤, 아홉 시가 넘었는데도 엄마는 계속 휴대폰만 한다. 양손 엄지손가락을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카톡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텔레비전 시청 시간도 끝나고, 휴대폰 사용 시간도 바닥나고, 아직 자긴 싫고…….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옆에 앉은 엄마를 슬쩍 넘겨다보았다. 낯익은 동그라미들이 주르르 올라가는 대화방은 우리 반 학부모 단체방이다. 대화가 너무 빨리 올라가는 토에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다. 궁금해서 엄마 쪽으로 자꾸 몸을 기울이자, 엄마가 나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채린아, 이제 네 방으로 들어가.”
단호한 말투였다. 쳇, 입이 튀어나왔지만, 일단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챙기면서도 궁금했다. 엄마 표정만 봐서는 꽤 심각한 얘기다. 일요일 밤에 같은 반 부모들끼리 나눌 심각한 대화가 뭘까? 학교도 안 간 일요일, 밤인데 말이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내 책상 의자에 앉았다.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다. 이러면 보통 엄청 긴 잔소리가 이어진다. 대충 머리를 굴려 봐도 오늘 특별히 잘못한 일은 없다. 대체 무슨 일일까?
“채린아.”
“응, ……왜?”
“너희 반 부반장 소영이 있잖아.”
“소영이가 왜?”
“…….”
엄마는 잠시 말을 하지 않고 내 얼굴만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이윽고 엄마가 한숨부터 내쉬더니 말을 꺼냈다.
“소영이네 가족이 시골에 갔다가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대.”
놀라서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가족들이 모두 사망했나 봐.”
“기소영?”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반 기소영?”
“그래.”
내가 아는 그 ‘기소영’이 틀림없는 모양이었다. 난 다시 한번 침을 꼴깍 삼켰다. 어째선지 가슴이 두근대고, 입에서 한숨이 툭 튀어나왔다. 그 순간 난 어이없게도 자손이 끊긴 행주 기씨 집안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엄마는 한동안 내 얼굴을 요리조리 살피다가 일어서며 말했다. “네가 반장이니까……, 주민 센터 앞 꽃집 있지? 내일 아침에 거기 들러서 국화 꽃다발 사서 학교에 가. 알았지?”
난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 생각이 났다.
“엄마, 나 돈 없어. 돈 줘야지.”
무심코 내민 내 손을 바라보며 엄마가 또 한숨을 쉬었다.
“엄마가 미리 말해 놓을게. 돈도 계좌 송금해 놓고. 넌 내일 까먹지 말고 꼭 챙겨 가. 알았지?”
난 또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 어여 챙기고 일찍 자.”
엄마가 방을 나가고, 난 한참을 멍하니 그대로 앉아 있었다. 책가방을 어서 싸고 일찍 자야 하는데, 좀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 안에서 뭔가가 쑥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멍멍했다. 지금 내가 슬픈지 어떤지도 알 수 없었다. 이럴 땐 저절로 눈물이 나야 하지 않나? 그저 소영이네 가족이 모두 죽었다는 엄마의 말만 머릿속에 자꾸 반복해서 울렸다. 가까스로 다시 책가방을 잡았다. 필통과 공책을 가방에 넣었다가 도로 빼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겨우 준비를 마쳤다.
잠자리에 누워서야 소영이를 다시 생각했다. 가깝다면 가깝다고도 할 수 있는 내 친구, 기소영이 죽었다. 생각해 보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죽음.’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살아 계신 나에게는 참 낯선 단어다. 제일 연세가 많은 인천 할아버지는 10킬로미터 마라톤 대회도 나가신다. 그래서일까? 여든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를 보면서도 ‘죽음’을 떠올리거나 언젠가 돌아가실 거란 생각을 쉽게 할 수 없었다.
“소영이가 죽었다. 우리 반 부반장 기소영이 죽었다. 교통사고로.”
나는 작은 목소리로 되뇌어 보았다.
“…….”
머릿속이 텅 비고, 내가 내뱉은 말이 나랑은 상관없이 공중에 붕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친하지 않았던 걸까?
소영이랑 나는 1학기 내내 함께 다녔다. 그랬지만 우리 둘 사이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정말 맘이 잘 맞는 절친인지, 그냥 반장, 부반장 사이일 뿐인지. 그걸 모르겠어서 지금 내 마음이 이렇게 애매모호한지도 모른다. 사실, 소영이의 답답하고 무른 성격 때문에 짜증 났던 적도 많았으니까. 어쩌면 소영이와 난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갈라지면 다시 볼 일 없는 정도의 사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래서 지금 내 마음이 이런 걸까? 소영이가 죽었다는 이 상황이 마냥 슬픈지가 않고 당황스럽고 낯설 뿐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만 복잡해졌다. 원래 나 같으면 혼자 고민하지 않고, 소영이에게 문자라도 보내 당장 물어봤을 거다.
‘야, 기소영. 우리 절친이니, 아니니?’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앞으로도, 다시는.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눈을 감아 버렸다.
국화 꽃다발은 유난히 크고 풍성했다. 여러 겹의 커다랗고 검은 리본도 눈에 확 띄었다. 주민 센터 앞은 우리 동네에서 제일 번잡한 교차로다. 아침엔 학교 가는 아이들과 차들로 더 북적댄다. 걸어가는 사람들도, 차에 탄 사람들도 죄다 내 손의 꽃다발만 보는 것 같았다. 괜스레 그 시선들이 신경 쓰여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저만치서 나를 기다리는 나리만 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나리도 어젯밤 소영이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날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울한 표정만 짓더니, 고개를 돌려 앞서 걸어갔다. 어지간히 화나는 일도, 슬픈 일도 말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나리다. 그런 나리가 조용하다. 나리와 함께 학교에 가며 아무 얘기도 안 하긴 처음이었다.
교문 근처는 등교하는 아이들과 배웅하는 어른들로 북적였다. 아침엔 학교 건물로 이어지는 정문만 열기 때문에 유난히 복잡하다. 정문 앞은 인도가 매우 좁아서 더 그렇다. 나와 나리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교문으로 들어서려는데, 한 아줌마가 불쑥 물었다.
“얘, 누가 죽었니?”
모르는 얼굴이다.
“우리 반 친구 한 명이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어머나! 세상에! 어휴, 어떡해…….”
아줌마는 손으로 입을 막고는 큰 소리로 안타까워했다. 마치 소영이를 잘 아는 듯한 표정이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어른들도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누가? 누가 죽은 거야?”
“6학년 3반 기소영요.”
“야! 그걸 왜 말해?”
나리가 느닷없이 화내며 내 팔목을 확 잡아당겼다. 우리는 어른들 틈에서 빠져나왔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소영이 얘기를 왜 해?”
여전히 화난 목소리로 나리가 따져 물었다. 난 나리가 화난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큰 비밀이라고 숨겨?”
“야! 너는 늘 그게 문제야. 말을 너무 쉽게 막 해!”
순간, 어이가 없었다. 아침부터 나리한테 이런 말을 듣다니! 우리 반 애들 중에서 장난도 제일 심한 편이고, 나 못지않은 프로 막말꾼 남나리한테서 말이다. 기가 막혔지만, 뭐라고 대꾸해야 할진 몰랐다. 정작 나리는 이런 내 기분은 신경도 안 쓰고 뚜벅뚜벅 앞서 걸어갔다. 그 멀쩡한 뒤통수를 바라보자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딱히 되받아칠 말은 여전히 생각나지 않았다.
‘소영이를 아는 아줌마일 수도 있고……. 어차피 다 알게 될 텐데, 내가 소영이 이름 좀 말한 게 뭐가 잘못이야? 남나리, 진짜 웃겨.’
나리의 뒷모습을 째려보며 마음속으로만 이런저런 변명을 해 댔다.
“반장! 기소영 안 죽었대. 살아 있대. 죽었다는 거 가짜 뉴스야.”
우리 반 깝죽이 김호준이었다. 다른 애들도 호준이와 함께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애들은 킥킥거리며 나리와 나를 내려다보았다.
“뭐야! 괜히 샀잖아.”
나는 손에 든 국화 꽃다발을 내려다보았다. 참 쓸데없이 커보였다. 거추장스러운 꽃다발을 버리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오래 들고 있어서 무거웠던 걸까? 손에서 힘이 스르르 빠지며 꽃다발을 떨어뜨렸다. 검은 리본의 큰 꽃다발이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난 냉큼 주울 생각도 못 하고, 꽃다발을 그저 바라보았다.
얼굴에 따가운 시선이 꽂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나리가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 선 아이들도 하나같이 나를, 어쩌면 꽃다발을 보고 있었다. 나리는 이제 노골적으로 나와 바닥에 떨어진 꽃다발을 번갈아 보았다. 창문에 매달린 아이들도 좀 전의 웃던 얼굴을 싹 거두었다. 아이들이 날 오해하는 게 분명했다. 내가 일부러 내동댕이쳤다고, 어쩌면 박채린은 소영이가 죽기를 바랐다고. 어젯밤처럼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냥 실수로 떨어뜨린 건데…….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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