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는 검색 엔진의 원조
“사서들은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잖아요. 우리를 올바른 책으로, 올바른 세상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장소를 찾아주죠. 영혼이 있는 검색 엔진처럼요.”
― 매트 헤이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1939년의 어느 여름날, 우리는 42번가와 5번로 모퉁이에 있는 공공도서관에 들렀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브라이언트 공원에서 걸음을 멈췄어.” 폴 오스터의 소설 『달의 궁전』에 묘사된 뉴욕 공공도서관은 「티파니에서 아침을」, 「타임머신」, 「스파이더맨」,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등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맨해튼의 명소다. 뉴요커뿐 아니라 관광객도 많이 찾는 도서관으로 건물 안팎은 사람들로 늘 북적거린다. 지금 그곳으로 가보자.
“오케이 구글, 뉴욕 공공도서관 찾아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휴대폰 화면에 검색 결과가 뜬다. 구글 지도에서 위성사진을 확대하니 뉴욕 공공도서관과 브라이언트 공원이 보인다. 브라이언트 공원은 도서관 뒤쪽에 펼쳐진 크지 않은 도심 공원으로, 한여름엔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고 한겨울엔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설치되는 것과 비슷하게 간이 스케이팅장이 설치돼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사람들로 빼곡하다. 색색이 옷들로 어지러운 브라이언트 공원 사진과 도서관 외관 사진을 구경하다 뉴욕 공공도서관의 상징인 사자상의 유래가 문득 궁금해졌다. 구글 검색을 해봤다.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이라는 위키피디아에서 다음의 정보를 찾았다. “정문 앞에 설치된 두 사자상은 모체가 된 두 도서관의 이름을 따 각각 애스터Astor, 레녹스Lenox라는 이름이 있다. 1930년대 세계 공황 때에는 각각 ‘인내’와 ‘불굴의 정신’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도서관 검색 결과를 들여다보다가 괜스레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기타를 치며 불렀던 노래가 떠올라 허밍으로 흥얼거려봤다. 구글이 부리나케 앤디 윌리엄스의 「문 리버」를 검색해준다. 신기하고 편리한 세상이다.
구글 창을 열 수 없던 시절, 사람들은 도서관 문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사서에게 찾아가 말 그대로 ‘뭐든지’ 물어봤다. 쓸데없다거나 얼토당토않은 질문이라며 혼내는 사서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용자의 질문과 요청에 응답하는 업무를 미국 도서관에서는 참고 서비스reference service라 한다. 1883년 보스턴 공공도서관에서 시작되어 보편화되었으며, 사서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업무다. 뉴욕 공공도서관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영화 도입부에서 사서의 참고 서비스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 사서가 전화로 유니콘에 대해 질문하는 이용자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답한다. “유니콘이 상상의 동물인 건 알고 계시죠? 12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비아냥거리는 말이 아니다. 정확한 정보를 배려 있게 전달한 것이다. 사서는 유니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지구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는다. 아니 믿어야만 한다.
2014년, 뉴욕 공공도서관 직원이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이용자 질문 카드가 담긴 상자를 우연히 발견했다. 옛날 사서들이 받았던 질문들은 이랬다.
“이브가 먹은 사과는 무슨 종류인가요?”1956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가 모두 같은 사람인가요?”1950년
“어디에 가면 단두대를 빌릴 수 있을까요?”연대 미상
예나 지금이나 참고 서비스에 필요한 사서의 첫 번째 자질은 무한한 인류애와 인내심이다.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은 옛 이용자들의 호기심을 오늘날 사서들이 해결해 엮은 책 『뉴욕 공공도서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에 풀이돼 있다.
뉴욕 공공도서관은 이용자들이 자주 묻는 질문을 추려 『뉴욕 공공도서관 탁상 편람』을 만들었다. 오랜 세월 사서의 도우미 역할을 해온 이 책은 검색 엔진과 디지털 자료의 힘에 밀려 존재감을 잃었다. 뉴욕 공공도서관 로즈 열람실에 있는 1만 4800여 종의 참고도서도 마찬가지 운명이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기가 도래하면 이 두꺼운 종이책들이 다시 유용하게 쓰일지도 모르겠다. 재난 영화 「투모로우」에서 도서관 건물과 종이책은 전혀 다른 역할을 부여받는다.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로 뉴욕에 극한의 한파가 몰아치자, 밀려오는 해일을 피해 사람들이 뉴욕 공공도서관으로 대피하고 추위와 사투를 벌이며 로즈 열람실 서가에서 책을 꺼내 벽난로에 태운다. (도서관은 지구 종말의 날까지 우리에게 따뜻함을 주는 곳이다.) 이 와중에 한 여자의 안색을 눈여겨본 사서는 의학서적을 뒤져 그녀가 급성 패혈증에 감였됐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러고는 “책은 태우는 것 외에도 쓸모가 있지”라며 책 본연의 역할을 되새긴다. 어쩌면 도서관에 소장된 종이책은 인류의 마지막 순간까지 질문에 답을 줄 최후의 도구일지도 모른다.
내가 초보 사서일 때는 ‘구글링’이란 말이 생기기 전이었다. 나는 매일 서너 시간씩 정보 데스크에서 퀴즈쇼에 출연한 기분으로 이용자를 맞으며 참고 서비스 업무를 수행했다. ‘완두콩 통조림 한 캔의 마그네슘 함량’이나 ‘하이힐의 일종인 스틸레토 힐Stiletto heel의 어원’ 등 알아둬도 쓸모없을 것 같은 질문을 받고 온갖 참고자료를 뒤졌다.
사서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도서관에 이 책 있어요?”다. 책 제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의뢰로 많지 않다. 『노트르담의 꼽추』더 헌치백 오브 노트르담, The Hunchback of Notre Dame를 ‘더 헌치백 이프 낫 어 댐’The Hunchback if Not a Dam으로, 『종의 기원』온 디 오리진 오브 스피시스, On the Origin of Species를 ‘오렌지스 앤드 피치스’Oranges & Peaches로, 『앵무새 죽이기』투 킬 어 마킹버드, To Kill a Mockingbird를 ‘하우 투 킬 어 마킹버드’How to Kill a Mockingbird 또는 ‘테킬라 마킹버드’Tequila Mockingbird로, 『헝거 게임』The Hunger Games을 ‘헝그리 게임’The Hungry Games으로, 『삼총사』더 스리 머스커티어스, The Three Musketeers를 ‘더 스리 모스키토스’The Three Mosquitoes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책에서 읽은 실화다. 철자가 틀려도 자동으로 수정해 찾아주는 구글의 첨단 기능에 의존하기 전, 이용자는 사서의 서지 지식에 기댔다. 도서관에서 책 제목과 표지를 주야장천 보게 되는 사서들은 제목의 단어 몇 개만 듣고도 이용자가 원하는 책을 척척 찾아준다. ‘전설의 고향’ 가자고 하면 ‘예술의 전당’에 내려주는 택시기사처럼 말이다.
이용자가 제목을 정확히 알려줘도 사서가 당황할 때가 있다. 내 이야기다. 나는 성인 열람실 담당사서였지만, 지원 요청을 받으면 가끔씩 영유아·어린이 열람실에서 참고 서비스 업무를 보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한 초등학생 이용자가 정보 데스크로 다가오더니 내게 물었다.
“『여자 화장실에 남자애가 있어』한국에는 『못 믿겠다고?』라는 제목으로 출간라는 책 있어요?”
다소 충격적인(?) 책 제목에 사고가 정지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학생을 바라봤다.
“루이스 새커 책이에요.”
‘진작 저자 이름을 말해주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여자 화장실로 뛰어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나도 루이스 새커 참 좋아하는데… 『구덩이』란 책 정말 재밌게 읽었거든. 너도 읽어봤지?”
참고 서비스 일을 할 때는 뻔뻔한 용기가 필요하다.
제일 황당한 요청은 ‘제목도 몰라, 저자도 몰라, 무조건 찾아줘’다. 물론 나도 받은 적이 있다.
“지난달에 여기 대출 데스크 앞 전시 서가에 있었던 빨간 책, 제목이 뭐더라… 찾아줄 수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예의 그 무한한 인류애와 인내심이 절실해진다. 내게 주어진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도서 전시를 기획했던 사서보조부터 서가 정리 봉사자까지 ‘빨간 책’의 정체를 알 만한 모든 사람을 소환했다.
“지난달에 여기 데스크 앞 전시 서가 누가 담당했죠?”
“G가 했을걸요? 쉬는 날이라 오늘 출근 안 했는데요.”
“전시 주제가 뭐였더라?”
“경제경영 도서였던 것 같아요.”
“서가에 있을지 모르니 한번 확인해보죠.”
잠시 후.
“혹시 이 책인가요? 짐 콜린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네! 맞아요.”
이런 황당한 질문을 받더라도 사서는 집단지성의 힘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정체 모를 ‘빨간 책’이 어디선가 짠 하고 나타난다안 그럴 때가 더 많다.
구글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용자는 스스로 손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참고 서비스를 지원하는 로봇 사서나 챗봇 서비스를 도입한 도서관도 생겨났다. 미래에는 영화 「타임머신」의 복스처럼 지구상의 모든 데이터베이스에 시청각적으로 연결된 홀로그램 사서가 등장할지 누가 알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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