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번뜩이는 생각
1
한편으로는 명리名利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성취할 수 있기를 갈구한다. 나는 이 고상한 허위의 협로 위에서 때로는 건강한 발걸음으로 나는 듯이 걷다가, 때로는 여기저기 마구 부딪쳐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흐른다. 마치 똥개 한 마리가 귀부인의 품 안에 기어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노력과 요행이 나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두 날개다. 똥개는 귀부인의 발에 걷어차이면 아주 운치 있게 서글픈 울음을 울면서 몸을 돌려 돌아갈 것이다. 한적하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숨어들어 가 막막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면서 사색에 잠겨 말할 것이다, 그것이 운명이라고. 그리고 결국 꼬리를 움츠리고 황량한 유랑의 들판을 외롭게 걸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가 자신의 상처를 핥으면서 다시금 요행의 행낭을 수습하여 또다시 몸을 돌보지 않고 명리의 길에 나서서 한 번도 단념한 적 없는 번뜩이는 사념과 상상을 기다릴 것이다. 이것이 똥개와 나의 차이점이다.
마침내 나는 또다시 리좡李撞을 생각하게 되었다.
같은 고향 사람인 이 인물은 이미 여러 차례 원형原型의 신분으로 나의 글쓰기에 등장한 적이 있었다. 내 일생의 가장 중요한 작품에서 그의 삶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나는 또 소설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캄캄한 낮, 환한 밤」速求共眠이라는 작품을 썼지만 결국 픽션으로 발표하고 말았다. 당시 내가 『인 콜드 블러드In Cold Blood』트루먼 커포티Truman Capote의 소설.라는 책을 읽었었다면 틀림없이 논픽션의 방식으로 그 작품을 독자들의 눈앞에 디밀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하루아침에 아주 유명해지고 폭발적으로 명성과 이익을 얻게 되었을 것이며, 아마도 오래전에 비허구의 대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문단에서의 미미한 이름과 이익을 위해 비굴하게 아첨하고 도둑질을 일삼으면서 우리에 갇혀 빛이 날 듯 말 듯, 꺼질 것 같으면서도 꺼지지 않는 기름등처럼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한 시대에는 그 시대의 문학과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은 시대의 예열 속에서 먼저 뜨거워져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고전으로 남을 수 있다. 따라서 훌륭한 작품은 시대의 미래를 위한 무사巫師나 점술가가 되어야 한다. 애석하게도 내가 이런 이치를 깨달은 것은 나이가 반백을 넘어서였다. 명리뿐 아니라 나는 이미 예술이라는 이 장난을 철저히 꿰뚫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예술은 명리를 위한 양복이자 중산복中山服, 중국의 혁명가 쑨원의 호를 딱 중국식 정장.이다. 명리가 충분한 수준에 도달해야만, 아무렇게나 땅 위에 내버린 낡은 자전거도 세상 사람들에게는 행위예술의 비륜飛輪이자 선구자로 여겨지게 된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도 그렇고 공룡이나 신선, 요괴류에 관한 영화도 그렇다. 모든 예술이 반복적으로 한 가지 법칙을 증명해주고 있다. 다름 아니라 예술의 고향은 명리이고, 명리의 고향은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작가나 영화감독이 예술에서 명리로 나아가거나 명리에서 예술로 나아간다. 여기에 또 어떤 차이가 있단 말인가? 이처럼 과감하고 분명한 생각에 기초하여 50세 생일 전날 밤에 신이 하사한 것처럼 불면이 내게 영감의 거대한 세례를 가져다주었다. 6월 13일 깊은 밤이었다. 창밖의 베이징北京은 가라오케의 별실처럼 밤의 불빛과 희미한 환락에 젖어 있었다. 도시 전체가 우울과 슬픔에 덮여 있었다. 그리고 나는 침대 위에 누워 계속 몸을 뒤척이면서 또다시 번뇌와 상처, 슬픈 노래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손을 뻗어 수면제 약병을 찾다가 밤새 침묵하고 있던 핸드폰에 손이 닿았다.
밤의 어둠 덕분에 핸드폰의 손전등 기능이 생각났다.
손전등 기능 덕분에 카메라가 생각났다.
카메라 덕분에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덕분에 리좡과 나의 실제 사건이 생각났다.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치 지진 때문에 꿈에서 깬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습격처럼 영감이 솟구쳤다. 예고 없이 찾아온, 혹은 약속에 맞춰 찾아온 영감이었다. 아내가 지나치게 날 사랑한 나머지 내 얼굴을 한 대 후려갈긴 것 같았다. 그 얼얼한 쾌감은, 한순간도 허영을 몰랐던 사람들은 평생 깨닫거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솔직히 말해서 30년 동안 이어진 글쓰기의 분투가 나를 시골 아이에서 이른바 작가로 변화시켜주었다. 방대한 문장을 거침없이 척척 써 내려가지만, 그 가운데는 흙과 모래가 같이 떠내려오듯이 좋은 글과 나쁜 글이 한데 섞여 있었다. 비방과 칭찬이 반반인 작품들은 한순간에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거론할 가치가 부족한 것이 되고 만다. 파리의 먼 교외의 시골 들판에서 천신만고와 온갖 굴욕을 다 겪은 끝에 마침내 귀부인의 창문에 올라 실내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광경과 함께 귀부인의 아름다운 육체를 보는 순간, 과거의 인생에서 느꼈던 모든 즐거움과 고통이 마땅히 가져야 할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았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아내가 물었다.
“왜 그래요?”
내가 대답했다.
“어서 자구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