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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의 날
철제 침대에 누워 커다란 광선총을 마주 보았다. 방 크기만 한 5톤쯤 되는 레이저 무기가 날 겨냥하고 있다. 저런 건 영화 속 슈퍼 악당이 쓸 법한데? 제대로 쏘면 행성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릴 것 같다.
방사선사가 내 얼굴에 플라스틱 마스크를 씌우며 물었다.
“요즘 음악 뭐 듣니, 로스?”
방사선사가 내 긴장을 풀어 주고 싶은 눈치다. 목 위쪽으로 단단한 그물망 마스크가 덮이자 꼼짝달싹할 수가 없다. 어제 내 목과 얼굴에 맞춘 마스크였다. 방사선사는 낑낑대며 마스크의 잠금 장치를 하나하나 침대에 고정시켰다.
“음, 이거저거…… 아무거나요!”
이 사이로 간신히 목소리가 나왔다. 얼굴에 딱 맞춘 마스크 때문에 턱을 거의 움직일 수 없었다. 마스크를 다 고정시킨 후 방사선사는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방사선사의 이름은 프랭크였다.
“여기 삼십 분 누워 있으려면 음악이라도 듣는 게 나아. 나한테는 없는 음악이 없어. 듣고 싶은 거 말해 봐. 뭐든.”
머리를 굴렸다.
“그럼…… 라디오로 ‘히트 팝송’ 채널 틀어 줄 수 있어요?”
프랭크가 갑자기 배를 한 대 걷어차인 것처럼 허리를 굽혔다. 그대로 동작을 멈춘 채 말했다.
“뭐든 다 되지만 그건 좀 그렇다.”
프랭크는 허리를 펴고 찡그린 표정으로 날 봤다.
“진심이야? 정말 그런 구닥다리 노래나 나오는 채널을 좋아해?”
“실은 부모님이 하루종일 틀어 놓거든요.”
멋쩍어서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다.
프랭크가 날 물끄러미 보더니 한숨을 크게 쉬었다.
“좋아. 내일은 네가 좋아하는 곡을 말해 줘야 한다.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 말고.”
그러고는 성큼 걸어가 높은 벽 선반 위에 놓인 오래된 대형 시디플레이어를 만지막거렸다. 옆에는 시디와 카세트 테이프들이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었다.
시디플레이어라니. 두 눈을 의심했다. 여기 있는 장비만 해도 수억 원은 될 텐데 최신 플레이어 살 돈이 없단 말인가? 그때 프랭크의 유니폼 사이로 슬쩍 팔의 문신이 보였다. 도마뱀의 꼬리 같기도 하고 문어 다리 같기도 했다.
비욘세의 목소리가 치료실에 울려 퍼졌다. 프랭크가 진지해졌다.
“어제도 연습했지만 한 번만 더 복습하자.”
프랭크는 들고 있던 차트를 두 팔로 감싸 들고 수천 번은 해 본 솜씨로 설명을 시작했다.
“침대가 올라가면서 기계 안으로 들어갈 거야. 치료에 걸리는 시간은 25분 정도. 팔다리는 물론이고 주요 부위까지 들어가. 방사선 기사에게 뭔가를 던져선 안 되고 먹을 것을 줘서도 안 돼. 수중 발레 하듯이 발을 배배 꼬아서도 안 돼. 내려오라는 사인을 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야 해. 록 밴드 구구돌스 노래를 흥얼거릴 생각 같은 건 하지도 마. 나 구구돌스 무지 싫어한다.”
또 다른 방사선사가 치료실로 들어왔다. 이름이 캘리였나? 캘리에게 프랭크는 자리를 비켜 주었다. 캘리가 푸른 점토를 내 콧날 위에 얹었다. 날 보고 싱긋 웃으며 내 ‘멀쩡한’ 눈을 방사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내 가슴을 토닥였다. 아까부터 긴장하고 있었지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덫에 걸린 토끼가 된 기분이었다. 얼굴만 괜히 벌겋게 달아올랐다.
“자, 지금부터가 중요해.”
프랭크가 다시 다가왔다.
“내가 사인을 주면 위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X(엑스)자를 봐. 어제 미리 표시를 해 두었어. 기계가 네 위를 지나갈 때 X자가 보일 거야.”
마스크 때문에 고개를 거의 끄덕일 수 없었지만 프랭크는 눈치껏 내 반응을 알아차렸다.
“X자에서 절대 눈을 떼면 안 돼. 그랬다간 스타워즈에 나오는 죽음의 별처럼 눈알이 산산조각 날 테니까.”
나는 작게 끙 소리를 냈다. 프랭크가 내 팔을 잡았다.
“농담이야, 로스. 말이 그렇다는 거야. 어쨌든 X자만 계속 노려봐. 눈이 폭발하는 일은 없지만 시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명심해. 눈은 X자에만 고정하는 거야. 안 그러면……. 아무튼 이것만 잘 지키면 별 문제 없을 거야.”
캘리가 유아용 카시트의 머리 받침대처럼 생긴 U자형 작은 장치를 들고 왔다. 내 얼굴 위에 대고 장치에 붙은 마우스피스가 입안에 쑥 들어가도록 눌렀다. 나는 입을 앙다물며 마우스피스를 이로 세게 물었다. 캘리가 장치의 양 끝을 침대에 연결시켰다. 철컥. 거대한 기계 팔이 떠받드는 침대였다. 영화 스타트렉에서 튀어나왔나?
코가 간지러웠다. 머리를 움직일 수 없으니 꿈틀거리만 했다. 해부대 위에 놓인 벌레가 된 기분이었다.
프랭크와 캘리가 날 내려다봤다.
“괜찮니? 담요 가져다 줘?”
캘리가 양말 신은 내 발가락 하나를 꾹꾹 눌렀다.
“아이에요. 개안아요.”
“좋아. 우리는 바로 옆 조정실에 있을게. 잘할 수 있을 거야.”
캘리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다정하게 웃었다. 여기 사람들은 잘 웃는다. 아마 내가 어쩔 줄 모르는 상태인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별거 아냐. 너도 곧 알게 되겠지만.”
프랭크가 윙크를 날렸다. 캘리와 프랭크가 내 왼편으로 비켜섰다. 치료실을 나가는 두 사람을 따라 머리를 돌릴 수 없었다. 라디오 속 그웬 스테파니는 계속해서 바나나를 외쳐대고 치료실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거대한 기계 속에서 꿈틀대는 생명체는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이 모든…… 장치들 중에.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숨이 내 몸을 빠져나가는 동안 몸이 덜덜 떨렸다. 점점 더 긴장되었다.
“좋아. 이제 시작할게. 몸에 힘 빼고 눈은 붉은색 X자, 알지? 자, 침대 올라간다.”
프랭크의 목소리가 작은 스피커 속에서 지직거리며 울렸다.
몇 초 간 정적이 흐른 후, 쾅 하고 굉음이 나더니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삐 소리와 함께 왱왱거리는 환풍기 소리를 내며 방 크기만 한 기계가 깨어났다. 방사선을 쏘려면 기계가 데워져야 하는 걸까? 나도 모르겠다.
침대가 진동하며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스피커에서 프랭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휴스턴 기지, 로스호 이륙에 성공했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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