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도서관에 와 봤니?
국립도서관, 공공도서관, 학교도서관, 작은도서관, 어린이도서관까지 다양한 도서관들이 있어. 그 중 나는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이야. 우리나라의 가장 중심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지.
벌써 와 본 적 있다고? 그럼 2층 복도에 있는 전시판도 보았니? 우리나라 도서관의 역사를 알려 주면서 박봉석 아저씨를 소개하고 있어. 한국 도서관의 개척자로 말이야.
도서관에서 일하며 책과 삶을 연결해 주는 이를 ‘사서’라고 해. 책을 구입하고 분류하고 빌려주는 일도 한단다. 박봉석 아저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서였어. 나, 국립중앙도서관이 맨 처음 자리 잡을 때 크게 애를 쓴 분이기도 해.
지금부터 그 아저씨 이야기 들어 볼래?
배움을 좋아하는 소년
열두 살 봉석은 부지런히 산길을 걸어갔다. 40리약 16킬로미터나 걸어가야 하는 먼 절이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오늘은 스님에게 어떤 걸 배울까?”
봉석은 집이 가난해 학교에 가는 건 꿈도 꾸지 못 했다. 대신 식구들이 다니는 절의 스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배우고 싶다고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봉석이 다섯 살 되던 해, 조선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절에 도착해 공부를 마쳤다. 그 뒤 스님이 꺼낸 말에 봉석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네에? 학교요?”
스님이 웃으며 봉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기특하구나. 절에서 네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으니, 학교에 다니며 마음껏 배우고 꿈을 펼쳐 보려무나.”
“학교……”
그 말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 봉석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봉석은 무얼 배우는 게 좋았다. 책이 좋아서 새 책이라도 만나면 책장이 닳도록 읽고 또 읽는 아이였다.
그렇게 스님들의 도움으로 봉석은 중앙공립보통학교지금의 중앙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봉석은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이 새롭고 재미있었다. 역사와 문학은 특히 좋았다. 시를 써서 발표하기도 했다. 봉석은 불교 관련 책들도 파고들었다. 자신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도와준 스님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성적은 대부분 우수했지만 관심 없는 일본어는 점수가 형편없었다.
1926년 봄, 중앙고보 5학년이 된 봉석은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있었다. 평소 친구들과 활발히 어울리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봉석은 축구 시합이라도 벌어지면 주저 없이 선수로 나서곤 했다.
“나라 잃은 백성이 뜻을 펼치려면 공부 못지않게 건강도 잘 챙겨야 해.”
봉석이 제 자신에게도, 친구들 앞에서도 늘 다짐하는 말이었다.
“공 간다. 받아!”
한 친구가 차올린 공이 하늘 높이 떴다. 봉석은 날아오는 공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때였다. 학생 한 명이 운동장으로 뛰어오며 소리쳤다.
“이보게들! 황제…… 황제 폐하께서…… 승하하셨다네!”
“뭐?”
봉석은 그대로 멈춰 섰다. 높이 솟았던 공이 툭 떨어져 힘없이 굴러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봉석과 친구들은 소식을 전한 학생을 둘러쌌다.
“그게 참말이야?”
“이 무슨 날벼락 같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친구도, 주먹을 부르르 떠는 친구도, 단박에 울음을 터뜨린 친구도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일본에 의해 폐위강제로 왕위에서 물러남되어 창덕궁에 갇혀 살던 황제였다. 그래도 임금이 살아 계시기에 아직 내 나라가 있다는 믿음이 백성들에게는 남아 있었다. 일본이 문화 통치라는 이름으로 조선을 더욱 못살게 굴며, 모든 걸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무렵이었다.
일본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다 세상을 떠난 황제의 소식에 봉석의 가슴에도 울분이 차올랐다. 봉석과 친구들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학교 곳곳에서는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 무리들을 볼 수 있었다.
그해 6월 10일, 순종 황제의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창덕궁 금호문 앞 거리를 흰옷 입은 백성들이 가득 메웠다. 봉석과 친구들을 비롯한 중앙고보 학생들은 종로 쪽에 모여 있었다. 멀리서 상여가 움직여 왔다. 여기저기서 나던 흐느낌 소리가 더욱 커졌다. 울음소리는 금세 통곡 소리로 번져 하늘을 울렸다.
말에 탄 일본 경찰과 군인들이 상여와 백성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때 일본 관료가 타고 가던 자동차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조선 사람 한 명이 비수를 치켜들고 그쪽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행렬이 흐트러지고 경찰들이 말굽 소리를 내며 달려갔다. 그때였다.
“대한 독립 만세!”
봉석의 학교 학생들이 모여 있던 데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한 독립 만세!”
만세 소리와 동시에 수백 장의 종이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나라의 독립을 말하는 격문이었다. 봉석도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다. 봉석의 친구들도, 가까이나 멀리 모여 선 사람들도 만세를 외쳤다. 외치고 또 외쳤다.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울음소리들이 만세 소리로 바뀌었다. 종이들이 흩날리고, 손에 손에 든 태극기가 휘날렸다. 봉석은 가슴이 터질 듯 뜨거워졌다. 만세의 물결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일본 경찰과 군인들이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삑―.”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다 체포해! 한 놈도 놓치지 마라!”
군인 경찰들은 칼로 찌르고 총을 쏘며, 흩어지는 조선 사람들을 쫓았다. 그러곤 닥치는 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달아나는 사람들, 쫓아가는 군인 경찰들, 칼에 베이고 총에 맞고 쓰러지는 사람들로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봉석과 친구들도 날쌔게 달아났다. 일본 경찰들은 끈질기게 뒤쫓아 왔다. 다른 학생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봉석의 건장한 체격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다.
봉석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좁은 골목길로 뛰어들었다. 어떤 집의 담장 뒤로 몸을 숨기는데, 어느새 쫓아온 경찰의 말이 앞을 가로막았다.
일본 경찰에게 목덜미를 잡혀 질질 끌려가며 봉석은 입술을 짓씹었다. 안 그래도 부리부리한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힘을 길러야 해. 그래야 앞을 내다볼 수 있어. 그러려면 더 깊이 공부하고 더 많이 똑똑해져야 해.’
며칠 뒤, 단순 가담자로 석방된 봉석은 공부에 더더욱 매달렸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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