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기다렸는데 도리어 어둠이 오고
환하기를 고대하였는데 앞길은 깜깜하기만 하다
― 「이사야」 59장 9절에서
어둠을 저주하기보다는 촛불을 켜는 게 낫다.
― 격언
1장
가장 소중한 것
실제 현실에 비하면 우리의 과학은 모두 초보적이고 유치하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년
비행기에서 내려 보니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 이름이 적힌 종이판을 들고 있었다. 나는 과학자들과 텔레비전 방송국들이 함께하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가는 중이었다. 그 회의는 상업용 방송에서 과학 소개 분량을 확대한다는 거의 가망 없어 보이는 일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주최 측이 친절하게도 공항으로 운전 기사를 보내 주었다.
“한 가지 여쭤 봐도 될까요?” 내 가방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가 말했다.
“그럼요. 괜찮아요.”
“그 과학자와 이름이 같아서 혼동되지 않습니까?”
나는 무슨 소린가 하고 잠깐 생각했다. ‘나를 놀리는 건가?’ 마침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었다.
“제가 그 과학자예요.”라고 말했다.
그는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그 과학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제 이름은 윌리엄 버클리입니다.”(그는 논쟁을 좋아하는 유명한 텔레비전 대담자인 윌리엄 버클리William F. Buckley, Jr., 1925~2008년와 이름이 같았다. 아마 그는 분명 그 사람을 매우 좋게 봤을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한참을 가는 동안에 차의 앞 유리에 붙은 와이퍼가 리듬감 있게 좌우로 움직이며 찰싹찰싹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그는 내가 바로 ‘그 과학자’여서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에 관해서 질문이 많다고 했다. “제가 몇 가지 여쭤 봐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괜찮고말고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나 과학에 관한 이야기는 분명 아니었다. 그는 샌안토니오 근처에 있는 공군 기지에 냉동 상태로 감금되어 있는 외계인, 채널링channeling, 죽은 사람이나 다른 세계의 존재와 대화하는 방법을 가리키는 단어인데, 그렇게 신통하지 않은 방법임이 분명하다., 수정구슬,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1503~1566년의 예언, 점성술, 토리노의 수의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그는 이상한 주제를 하나하나 흥분한 듯 열정적으로 소개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를 실망시켜야 했다.
“증거가 빈약해요.”라고 나는 계속 말했다.
“훨씬 더 간단한 설명 방식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그는 독서 폭이 넓었다. 이를테면, 그는 아틀란티스Atlantis와 레무리아Lemuria 같은 ‘가라앉은 대륙’에 관한 다양한 사변적 주장들의 미묘한 차이를 알고 있었다. 지금은 바다 깊은 곳에 잔해만 남아 심해의 발광 어류와 거대한 크라켄노르웨이 바다에 산다는 전설적인 괴물만이 찾아드는, 한때 번성했던 고대 문명의 상징물들인 넘어진 기둥들과 부서진 뾰족탑을 찾기 위한 해저 탐험으로 어떤 것이 있고, 언제 착수되었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바다는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아틀란티스와 레무리아 대륙의 존재를 입증하는 해양학적, 지구 물리학적 근거는 단 하나도 없다. 과학적으로, 아틀란티스와 무Mu 대륙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다. 그가 슬슬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에게 그렇게 말해 주었다.
빗길을 달리는 동안 나는 그가 점점 더 시무룩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단지 몇 가지 잘못된 주장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의 정신 세계의 소중한 측면 하나를 부정한 것이었다. 그는 저 밖의 별들 사이에 희박하게 존재하는 차가운 기체 속에 생명의 분자적 구성 단위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을까? 그는 400만 년 전에 쌓인 화산재에서 발견된 우리 조상들의 발자국에 관해서 들어보았을까? 인도 대륙이 아시아 대륙에 충돌했을 때 히말라야 산맥이 솟아오른 사실은 알고 있었을까? 피하 주사기와 비슷한 형태를 한 바이러스들이 어떻게 숙주 세포의 방어 체계를 뚫고 자신들의 DNA를 주입해 세포의 증식 기제를 파괴하는지 들어보았을까? 아니면 지능을 가진 외계 생명체에 대한 탐사나, 에블라 맥주Ebla beer, 영화 「스타워즈Star Wars」에 등장하는 외계인의 맥주. ― 옮긴이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바이러스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고대 에블라 문명Ebla civilization, 기원전 3000년경부터 시리아 북부에 있었던 고대 도시 문명. ― 옮긴이에 대해서 들어보았을까? 아니다. 그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다. 또한 그는 양자 역학적 불확정성은 아주 어렴풋이라도 알지 못했고, DNA는 자주 연결되는 대문자 3개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말 잘하고 지적이면 호기심 많은 ‘버클리 씨’는 현대 과학에 대해서는 사실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는 우주의 경이로움에 대한 자연스러운 기호嗜好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과학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과학은 모두 그에게 도달하기 전에 걸러져 버렸다. 우리의 문화 시설, 교육 체계, 통신 매체는 이 사람을 저버렸다. 그에게 흘러가는 것 중 이 사회가 허락한 것은 주로 거짓과 혼란이었다. 이 사회는 진정한 과학과 싸구려 모조품을 구분하는 방법을 그에게 전혀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는 과학의 현황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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