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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할 말이 없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기 문제의 원인을 유년기에서 찾아내던데 말이지. 유년기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마저 나는 한참 지난 후에 알았다.
비슷한 이야기로, 부모에 대해서도 거의 할 말이 없다. 이번에는 전혀라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일단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은 대강 지어내 납득한 것이다. 그 어떤 아버지도 아이를 낳진 못하므로.
필요한 것은 모두 책에서 배웠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얻은 지식은 이미 한 번 텍스트로 여과된 것이어서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책에서 배운 것들을 실제 감각으로 통역해내는 데 시간을 많이 들여야 했다. 그럭저럭 잘 되는 것도 있었고, 잘 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언젠가 사람들은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기분이 더러워져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실컷 운 다음에는 단팥빵을 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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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책을 쓴다면, 다음 질문들에 대한 답을 활자로 남겨두는 일을 목표로 할 것이다. 속옷은 며칠에 한 번 갈아입어야 하는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왜 아는 척해야 하는가? 유명한 비밀은 비밀인가? 일행과 함께 있을 때 다른 사람과 마주치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애초에 그 일행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
내게도 나름의 요령이 있다. 예를 들어, ‘그건 좀 그렇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가벼운 신음 소리를 내며 어깨를 들썩인다. 이것은 꽤 효과적이다. 대답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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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무언가 떠오른다. 혹은 천천히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그것을 말하려 한다. 황급히 말할 상대를 찾거나 종이와 펜을 구하려 두리번거리지만, 그땐 이미 생각이 문을 열고 나가버린 뒤다. 그 자리엔 그와 아주 닮았으나 묘하게 촌스러운 생각만이 멋쩍게 앉아 있다. 진한 화장을 한 앳된 여자아이처럼. 그렇게 되면 아무리 갈피를 잡으려 애써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촌스러운 여자아이도 함께 애써주지만 어쩔 수 없다. 마치 유효 기간이 만료된 꿈 같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은 대개 이런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당연해서 남들은 딱히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많은 일들을 고민하느라,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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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둘이 살던 아파트는 그가 일하던 빵 공장의 사택이었다. 외벽에는 ‘우정’이라고 쓰여 있고, 엘리베이터는 없으며,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벗겨진 페인트 부스러기가 떨어져 날리는 그런 아파트. 집은 417호였다.
버스 정류장이 먼 데다가 주변 건물들도 다 낡고 낮아서, 학교에 갔다 돌아올 때면 멀리서부터 아파트를 바라보며 걷곤 했다. 여러 가지 색의 하늘 아래 우뚝 서 있는 그 건물은 언제나 추레한 남자를 연상시켰다. 멍하니 앉아 지친 표정으로 담배를 태우는, 등이 몹시 굽은, 더 이상 아무 데서도 팔지 않을 것 같은 옷을 입은 중년의 남자. 생각해보면 그 건물은 하루하루 낡아갈 뿐 한 치도 어떤 것을 향해 나아가지 않았던 것 같다. 낡아가는 속도와 방향마저 무의미했다.
내게도 유년기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 그 집에 버려져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집 자체가 나의 유년기일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스무 살 이전의 기억은 실수로 쏟아버린 사진들을 그러모아둔 것처럼 난잡하고 무의미하다. 열여덟 다음에 열다섯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반박할 말이 없을 정도다. 하나하나의 사건은 사진처럼 또렷한데, 도무지 순서를 맞출 수가 없다. 그 무렵에는 누가 나를 좀 구해주든 죽여주든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렇게 해준 이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 터널 같은 유년기에서 빠져나오고 한참 뒤의 일이다.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야 나는 친척이라는 사람 몇몇을 보았다. 고모 둘과 숙모 하나. 놀랍게도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서로 몹시 닮아 보였다. 연습 삼아 ‘고모1’을 만든 다음 ‘고모2’를 만들었더니 재료가 남는 바람에 ‘숙모’까지 만들었다는 식으로. 고모 둘은 그렇다 치더라도 숙모까지 닮은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지만, 아무튼 그들은 매우 닮은 얼굴의 세 여자였다. 애초에 고모와 숙모가 있는지도 몰랐으니 내가 연락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죽음의 냄새를 맡은 것처럼 알아서 찾아왔다. 그러고는 익숙하다는 듯이 일을 척척 맡아 처리했다. 주변에 부고를 알리고, 사망 신고를 하고, 장례를 치르고, 얼마 안 되는 유산을 확인하고, 신변 정리를 하고, 역시 있는지도 몰랐던 보험금을 수령하는 일들을.
장례를 마친 다음에는 고몬가 숙모 중 하나가 내게 새 옷을 사 입히고 아버지가 일하던 공장으로 데려갔다. 몇십 분간 대화가 오간 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사택에 그대로 머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나는 열아홉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고모인지 숙모인지가 물었다.
“공부는 잘하니?”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자 고모인지 숙모인지는,
“그래, 차라리 잘 됐어. 공부를 잘하면 대학에 가야 할 텐데….” 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고모로부터 명함을 한 장 받아 전화기 옆에 두었는데, 언젠가 저절로 사라졌다. 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쫓기듯 그 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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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쩌면 가장 정확한 단어를 추려내기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타는 듯한 햇볕 아래 사람들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서 있다. 모두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한 방향으로 걷는 중이다. 바구니엔 고만고만한 크기의 조약돌이 가득하다.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그것을 몇 개씩 집어 발 앞에 뿌린다. 그것을 주우며 또 한 걸음 나아가고, 또 한 움큼 뿌린다. 죽을 때를 대비해 아이를 하나 낳아 그에게 바구니를 맡긴다. 그렇게 조약돌은 또 땅에 뿌려지고 거둬들여진다. 영원히.
어느 누가 그런 것을 제안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 그렇게 하기로 했는지 이유도 알 수 없다. 어차피 뿌리고 주울 것이라면 그냥 품 안에 넣고 걸으면 될 텐데. 조약돌이 서로 뒤바뀌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면 옆 사람의 손바닥에 쥐여주면 될 텐데. 의문을 품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지만 우리는 알고 있는 종류의 일이기 때문에. 아무튼 우리는 매일같이 시간을 뒤통수로 흘려보내며 조약돌을 뿌리고 다시 줍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내는 방식과 놀라우리만치 닮았다. 언제 시작한 것인지도, 그리고 언제 끝낼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이 그런 식으로 살아남아 이어지고 있다. 사실 우리가 늘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은 이야기 자체라기보다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레퍼런스가 중요했다면 아버지의 묘비에는 〈누구의 이야기에서 따옴, 1963부터 2017까지〉라고 적어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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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가장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막 재가 되어 나온 아버지를 받아 들고 잠시 걸었던 기억이다. 유골은 난초 무늬가 있는 백자가 담겨 있었고 몹시 뜨거웠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빵 공장에서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퍽 핍진성을 갖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빵 공자이나 화장장이나 비슷하게 생긴 오븐을 쓰는 것이다.
물론 신은 관객의 눈치를 보지 않으므로 현실의 각종 사건들은 아무런 예고 없이 들이닥치곤 한다. 일례로 아버지의 죽음이 그러했다. 어느 날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니 그는 현관문 도어 클로저에 목을 매달고 죽어 있었다. 아마 이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했으리라.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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