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러시안 블루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전날 밤 건강진단에서 의사들은 나치 지도자 헤르만 괴링의 손톱과 발톱이 새빨갛게 물든 것을 발견했다. 진통제 디히드로코데인을 하루에 백 알 넘게 복용하다 중독된 것이었다. 작가 윌리엄 버로스가 묘사했듯 이 약물은 자극성은 코카인만큼 약하지만 효능은 코데인의 두 배로 헤로인과 맞먹기에 미국 의사들은 괴링을 법정에 세우기 전에 의존증부터 치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합군에 체포될 당시 괴링이 가지고 있던 여행 가방에는 2만 회 넘게 투약할 수 있는 디히드로코데인이 들어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막바지 독일에 남아 있던 생산분의 사실상 전부였다. 그의 중독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다. 독일 국방군 거의 전원이 페르비틴을 지급받았으니 말이다. 이 메스암페타민 알약을 복용한 병사들은 몇 주일 내리 잠도 자지 않은 채 광적인 흥분과 악몽 같은 혼수를 오가며 정신 착란 상태에서 싸웠다. 과다 복용한 병사 중 상당수는 걷잡을 수 없는 희열에 사로잡혔다. “사위가 쥐죽은 듯 고요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무의미해진다. 마치 내가 조종하는 항공기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독일 공군의 한 조종사가 몇 년 뒤 쓴 이 문장은 치열한 격전의 현장이 아니라 지복의 환상을 목격하는 고요한 환희를 회상하는 듯하다.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은 1939년 11월 9일 전선에서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서 페르비틴을 더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상황이 열악합니다. 편지를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만 쓰더라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편지를 쓴 주요 용건은 페르비틴을 더 보내주십사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 사랑합니다. 하인 올림.” 1940년 5월 20일에 쓴 길고 간절한 편지의 결말은 앞서와 똑같은 요청이었다. “비상용으로 소지하게 페르비틴 좀더 구해주실 수 있나요?” 두 달 뒤 그의 부모는 괴발개발 쓴 한 줄의 편지를 받았다. “부디 가능하다면 페르비틴을 더 보내주세요.” 암페타민은 독일의 파죽지세 전격전을 가능케 한 연료였으며, 많은 병사들은 쓴맛 나는 페르비틴 알약을 혀에 녹여 맛보다가 정신병 발작을 일으켰다. 하지만 연합군 폭격기의 불바람이 전격전의 번개를 꺼뜨렸을 때, 러시아의 겨울에 탱크의 무한궤도 바퀴가 얼어붙었을 때, 잿더미가 된 땅 말고는 아무것도 침략군에게 넘겨주지 않도록 독일 제국 내에서 값나가는 것은 전부 파괴하라고 총통이 명령했을 때 라이히독일 제국 지도부가 맛본 것은 사뭇 달랐다. 패망을 앞둔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에 불러들인 새로운 참상에 망연자실한 채 신속한 도피를 택했다. 시안화물 캡슐을 깨물어 독약이 내뿜는 달콤한 아몬드 향을 맡으며 질식사한 것이다.
전쟁의 마지막 몇 달간 자살의 물결이 독일을 휩쓸었다. 1945년 4월에만 베를린에서 38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도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세 시간 떨어진 곳에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반도半島 소도시 데민이 있는데, 후퇴하는 독일군이 서쪽 다리를 파괴하는 바람에 고립되어 적군赤軍의 무시무시한 학살에 무방비로 발이 묶이자 그곳 주민들은 집단적 공포에 사로잡혔다. 사흘에 걸쳐 남녀노소 수백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치 섬뜩한 줄다리기 놀이를 하듯 일가족이 밧줄로 허리를 묶고는 톨렌제 강물 속으로 걸어들어갔는데, 어린아이들은 돌을 채운 책가방을 메고 있었다. 혼란이 극에 달하자, 그때까지 가정을 약탈하고 건물에 불을 지르고 여자들을 겁탈하느라 여념이 없던 러시아 군대는 자살 유행병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들은 정원의 우람한 참나무 가지에 목을 매려던 여인을 세 번이나 구조했다. 나무뿌리 옆에는 쥐약 넣은 쿠키를 최후의 간식으로 먹은 그녀의 세 자녀가 묻혀 있었다. 이 여인은 살아남았지만, 병사들은 젊은 처녀가 부모의 손목을 그은 면도날로 자신의 동맥을 절단하여 과다 출혈로 사망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나치당 상층부도 이와 비슷한 죽음 갈망에 사로잡혔다. 육군 53명, 공군 14명, 해군 11명의 장성들이 자결했으며 교육부 장관 베른하르트 루스트, 법무부 장관 오토 티라크, 육군 원수 발터 모델,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로멜, 그리고 물론 총통 본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헤르만 괴링 같은 나머지 사람들은 머뭇거리다 생포되었으나, 이것은 필연적 결과의 유예에 불과했다. 건강 상태가 재판을 받기에 적합하다는 의사들의 발표가 있고 난 후 괴링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형을 언도받았다. 그는 한낱 범죄자가 아닌 군인처럼 죽고 싶다며 총살형을 요청했다. 최후의 요청이 거부됐다는 말을 듣고서 그는 포마드 병에 숨겨둔 시안화물 캡슐을 짓씹어 자결했다. 병 옆에 놓인 쪽지에는 자신이 “위대한 한니발처럼” 제 손으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쓰여 있었다. 연합군은 그의 흔적을 모조리 지우려 했다. 입술에 붙은 유리 조각을 제거한 뒤 그의 의복, 소지품, 알몸을 뮌헨 오스트프리트호프 공동묘지의 시립 화장장에 보냈다. 거대한 가마에 불을 피워 괴링을 소각했는데, 그 재는 슈타델하임 교도소에서 참수된 정치범과 나치 정권 반대파 수천 명, 악치온 T4 안락사 계획으로 살해된 장애 아동 및 정신병 환자들, 강제 수용소에 갇힌 무수한 피해자의 재와 뒤섞였다. 그의 뼛가루는 지도에서 아무렇게나 고른 작은 개울 바첸하흐에 늦은 밤 뿌려졌다. 하지만 연합군의 괴링 흔적 지우기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수집가들이 나치 최후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독일 공군 사령관이자 히틀러의 후계자 괴링의 유품과 소지품을 거래하고 있다. 2016년 6월 한 아르헨티나인은 제국원수 괴링의 실크 팬티에 3000유로 이상을 지불했다. 몇 달 뒤 이 남자는 괴링이 1946년 10월 15일 깨문 유리 바이알 병이 한때 보관된 구리·아연 원통에 2만 6000유로를 썼다.
국가사회당 지도부가 베를린 필하모닉의 마지막 연주회에서 이와 비슷한 캡슐들을 건네받은 것은 도시가 함락되기 직전인 1945년 4월 12일이었다. 군수부 장관이자 제3제국 공식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편성한 특별 프로그램에 따라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에 이어 브루크너 교향곡 4번 〈낭만적〉이 연주되었으며 마지막 곡은 적절하게도 리하르트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 3막을 닫는 브륀힐데의 아리아였다. 이 곡에서는 발퀴레가 거대한 장작더미 위에서 제 몸을 불사르는데, 번져나간 불꽃이 인간 세상뿐 아니라 발할라의 홀과 신들의 만신전까지 전부 집어삼킨다. 고통에 겨운 브륀힐데의 절규가 여전히 귓전에 맴도는 채로 청중이 출구로 향할 때 독일 소년단히틀러 청소년단 산하 기관 중 하나로, 십대들은 이미 바리케이드에서 죽어나가고 있었기에 10세 이하 어린이로 결성되었다 단원들이 작은 고리버들 바구니에 담긴 시안화물 캡슐을 미사 봉헌 예물처럼 나눠줬다. 괴링, 괴벨스, 보어만, 힘러는 이 캡슐만으로 자결했으나 그 밖의 많은 나치 지도자들은 캡슐을 깨무는 동시에 머리에 총을 쏘는 방법을 선택했다. 누군가 자결을 방해하고자 캡슐에 고의로 불순물을 섞어 자신이 바라는 고통 없고 즉각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느린 고통으로 죗값을 치르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자신의 약물이 오염됐다고 확신하여 사랑하는 블론디에게 약효를 시험하기로 했다. 독일셰퍼드 블론디는 히틀러와 함께 총통 벙커에 들어와 그의 침대맡에서 자며 온갖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총통은 러시아 군대가 이미 베를린을 에워싸고 자신의 지하 은신처로 시시각각 포위망을 좁혀오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자신의 애완견을 내어주느니 차라리 죽이기로 마음먹었지만, 제 손으로 죽일 엄두가 나지 않아 주치의에게 캡슐 한 알을 열어 개의 입안에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얼마 전 새끼 네 마리를 낳은 블론디는 질소 원자 하나, 탄소 원자 하나, 칼륨 원자 하나로 이루어진 미세한 시안화물 분자가 혈류에 스며들어 숨통을 막자 즉시 숨이 끊어졌다.
시안화물은 효과가 어찌나 빨리 나타나던지 맛을 묘사한 역사 기록이 하나뿐이다. 21세기 초 인도의 금세공인 M. P. 프라사드는 32세의 나이에 이 약물을 삼킨 뒤 다음의 세 줄을 썼다. “의사들이여, 시안화칼륨이다. 나는 맛을 보았다. 혀가 얼얼하고 역한 신맛이 난다.” 이 쪽지는 그가 자살을 위해 빌린 호텔방에서 시신과 나란히 발견되었다. 독일어로 ‘블라우조이레’, 즉 청산靑酸이라 불리는 액체 상태의 시안화물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섭씨 26도에서 끓으며 연한 아몬드 향을 내는데, 인류의 40퍼센트는 해당 유전자가 없어서 이 냄새를 맡지 못한다. 이 진화적 변이 때문에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마이다네크, 마우트하우젠 강제 수용소에서 치클론B에 살해당한 유대인 중 상당수는 가스실을 채우는 시안화물의 냄새를 낌새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일부는 자신들의 절멸을 계획한 자들이 자살용 캡슐을 깨물며 들이마신 것과 같은 향기를 맡으며 죽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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