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몸을 돌보는 일은 엄숙하고도 복된 노동이다.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문명의 기초란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다. (32쪽)
1장
나는 산 자가 아닌
죽은 자를 위해서
일한다
나는 죽은 사람을 위해 일한다.
내가 이 일을 한 지 어느덧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700여 명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러드렸다. 그저 죽음을 돌보는 일에 끌려서, 누구에게 무엇도 받지 않고서 말이다. 그중 대부분은 무연고로 돌아가신 고독사 시신들, 돈이 없어 유족들도 장례를 꺼리는 기초수급자와 생활보호대상자의 시신들이었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한 건 2004년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구 중앙파출소 앞에 떡볶이와 어묵을 파는 노점이 있었는데 나는 그곳을 자주 들렀다. 어느 날, 그 노점 주인의 남편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노점상 주인분은 삶도 녹록지 않으시고 하루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형편에 워낙 경황이 없으신 것 같았다. 일에 손을 보태줄 친척도 없어 어쩔 줄을 몰라 하셨다.
그래서 내가 도맡아 시신의 염殮을 하고 장례 절차를 도와드렸다. 대단한 것을 도와드린 건 아니었다. 나는 2003년에 대구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의 장례지도학과를 수료했고, 전년도에 배운 내용을 그대로 되새겼을 뿐이었다. 그것이 죽을병으로 몇 년간 죽네 사네 하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온 내가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유일한 일인 듯싶었다. 나라는 존재가 아직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데 작은 보람을 느꼈다.
이런 경험이 조금씩 쌓여서 나를 ‘장례 봉사’의 세계로 이끌었다. 2004년 11월에 장례봉사단을 꾸리고, 죽은 자들을 보내드리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우리를 믿고 장례를 맡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런 금정적 보상 없이 장례를 대신 맡아준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분들이 많았다.
그즈음에는 1년에 평균 열 건, 스무 건 남짓의 장례를 맡았다. 그 수효는 매년 점점 늘어나서 몇 년간은 한 해 보통 70~80건 정도가 되었고, 작년에는 코로나 사망자를 제외하고서도 100건이 넘는 장례를 치러드렸다.
이처럼 내가 맡게 되는 죽음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우리 사회의 고독사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죽음의 현장은 천태만상이다. 그렇지만 유족들의 슬픔에 둘러싸인 채 편안히 눈을 감았던 죽음은 내 경우엔 거의 없다.
누군가를 보내드리는 일에 큰 문제가 없다면, 내가 하는 이 일과 관련된 문의는 거의 오지 않는다. 그럴 일이 없다. 가정이 안 좋은 상태, 가정이 깨져 있는 상태에서만 우리에게 장례를 부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내가 돌보는 고인의 가족 관계나 신상을 묻지 않는다. 유족이 있더라도, 하나같이 다 어려운 환경인 것이 눈에 선하다. 나는 호구조사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니며, 함께 일하는 분들에게도 그런 것에 대해서 일절 묻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할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사연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개개인의 사정은 있겠지만, 나는 그 사정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10년간 죽음의 현장이나 장례식의 사진 한 장 찍어둔 적이 없다. 애초에 찍을 필요가 없다. 봉사단 사무실의 캐비닛 안에도 사진 같은 건 전혀 없다. 내게 누군가의 죽음은 공문과 서류, 이름과 숫자로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는 사진을 찍어서 남에게 자랑하고자 하는 단체가 아니다. 모든 봉사단체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나는 남에게 우리가 이렇게 합니다. 떠벌리는 것은 정말 싫다. 우리가 하는 그 정도면 됐다. 남이 우리를 잘한다고 칭찬해 주었을 때 그것을 받는 정도면 족하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죽은 자의 유족들이 나에게 고마워하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 적이 없다. 당신은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관계가 되어 있을 뿐, 내가 당신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항상 이렇게 되뇌면서 일을 한다.
지난해 코로나 시신들의 장례를 치러드렸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할 사람이 없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그 일을 내가 할 수 있다면 하면 그만 아닌가? 그래서 하자고 결정하고 끝이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누가 나한테 고마움을 느낄 이유가 있는가?
죽음을 위한 봉사라고 하면 다들 궁금해하고, 의심부터 먼저 하고 본다. 그렇지만 내가 이 일을 시작하고 이것 덕분에 그간 단돈 10원이라도 손에 넣었다면, 나는 결코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생활보호대상자가 돌아가시면 나라에서 장례비를 보조해준다. 10여 년 전 처음에는 10만 원부터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 보조금이 80만 원까지 올라왔다. 그 장례보조비만 봉사단이 받으면, 나머지 금액은 우리 후원금에서 보태서 한다.
유족들이 있는 경우 그 장례보조금은 유족에게 간다. 우리는 장례보조금을 받은 후 우리에게 보내달라고 말씀드리지만, 그것을 유족분들이 쓰고 우리에게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괜찮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돈을 억지로 달라고 물고 늘어지진 못한다.
값비싼 수의나 좋은 관 같은 것을 해드리진 못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정성을 다해 장례를 챙긴다. 주위에서 의심을 하거나 오해를 해도 웃고 치울 뿐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누구 눈치를 볼 필요가 있나?
나는 죽은 몸을 닦아드리고, 산 자들과 부대끼면서 생각한다. 사실, 이 장례 의식은 다 산 사람들이 마음 편하자고 하는 형식에 그칠 뿐이다. 돌아가신 분이 무엇을 아나? 돌아가신 분들은 숨을 거둔 직후부터 이제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내 주위의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나갔듯, 나도 언젠가는 죽은 몸이 될 것을 잘 안다. 나는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도와드리는 게 다다. 그저 내가 좋아서 그 일을 한다. 누군가의 시신을 모시고 와서 닦고, 수의를 입히고, 관에 모시고, 차에 태워서 화장을 하러 간다. 화장된 유골을 납골당으로 모신다. 거기까지만 하면 된다. 그게 내 일일 뿐이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날 위해서 한다. 나도 살 만큼 살았고, 죽을 뻔했다가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나도 인간인 이상 내가 죽은 날이 머지않은 걸 잘 알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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