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술꾼, 제 발로 병원에 가다
지각 있고 상식적인 알코올중독자?
병원은 집에서 전철로 한 정거장 거리다. 지갑 하나만 달랑 들고 걸어가기로 했다. 봄기운이 완연한 5월의 햇볕 아래 낡은 거리마저 희게 빛나고 있었다. 심란하고 우중충한 내 심경과 정반대의 화창한 날씨다.
검색 사이트에서 주소를 찾아낸 병원은 홈페이지도, 의사 소개도 없었다. 가는 동안 나는 열심히 의사의 신상을 유추했다. 여자일까, 남자일까, 젊을까, 나이가 많을까. 젊은 여성 의사면 좋겠지만 구태여 여성 의사를 찾으러 멀리까지 갈 만한 열의는 없었다. 일단 누구에게든 빨리 진료를 받고 싶었다.
병원은 구청 근처의 깨끗한 신축 건물에 있었다. 10분 정도 대기한 후 그날의 첫 환자로 진료실에 들어섰다. 널찍한 진료실 안쪽 구석 책상에 나와 비슷한 연배의 여성이 가운을 입고 앉아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정신과는 처음이신가요?”
“네.”
나는 동네 내과라도 온 듯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에 오기까지 몇 번이나 반복해서 생각했다. 이건 감기나 생리통처럼 지나가는 질병이다. 지금의 고비만 넘기고 엉망진창인 상태에서 빠져나오면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거다. 다만 그러기 위해 약물의 도움이 절실하니 적당히 대답하고 적절한 약을 처방받아 돌아갈 심산이었다.
그런데 진료는 내 예상보다 한참이나 길어졌다. 꼼꼼한 인상의 의사는 ‘알코올의존 성향’이라고 쓴 내 문진표를 보고는 얼마나 자주, 몇 병이나 마시는지 물었다. 나는 수치심으로 끙끙 앓으며 대답했다.
“일단 매일 마시고요. 마시는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한 번에 소주 한 병 반이나 와인 한 병 정도인데…… 자주 마시는 게 문제예요. 낮에도 마시고 저녁에도 마셔요. 얼마 전부터는 아침부터 마시게 됐고요.”
“최근에 심경이 힘들 만한 일이 있었나요?”
아, 이런 것까지 물어볼 줄은 몰랐는데…… 나는 쭈뼛거리며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했다.
5년 전, 나는 10년간의 기자 생활을 뒤로하고 퇴사했다. 원래는 책을 쓰겠다는 야심 찬 포부가 있었는데 어영부영 지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초, 큰마음 먹고 친한 선배와 함께 유튜브 콘텐츠 제작을 시작했다. 전직 산업부 기자 출신이라는 점을 살려 우리 나름대로 최신 트렌드와 비즈니스에 관해 진단하고 견해를 이야기하는 영상이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적지 않은 구독자 수를 모았다.
유튜브 채널이 흥하자 잔뜩 고무된 나는 유튜브를 같이 만들던 선배와 식당 사업까지 시작했다. 내 나름으로는 큰돈을 투자한 터라 열심히 사업에 매달렸지만 초짜 사업가에게 외식업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개업 후 몇 달 동안 수익은커녕 적자만 쌓여갔고, 결국 몇 달 버티지 못하고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다. 이제 유튜브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한 그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상 제작을 함께하던 선배의 개인사에 좋지 못한 일들이 생겨 출연이 불가능해졌다. 혼자서도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는지 구독자 수와 조회수는 점점 떨어져만 갔다. 불안함과 초조함,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영상 업로드를 아예 중단하고 말았다.
그런 연유들로 병원을 찾기 3개월 전부터 나는 사실상 백수 상태였다. 이런저런 일들로 바쁘게 지내던 일상이 갑자기 뚝 멈췄고 아무 할 일이 없는 공백의 시간이 이어졌다. 만사에 실패한 것 같은 느낌에 수치스러웠고 할 일 없는 백수가 된 자신이 말할 수 없이 한심스러웠다.
누군가 어떤 실패를 겪고 괴로워하며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낸다면 과연 무엇을 할까? 뭘 하면서 그 공허한 감정과 넘쳐나는 시간을 채울까? 나는 원래도 술을 무척 좋아하는 애주가였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낙담한 스스로를 달래려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음주량과 횟수는 점점 늘어났다.
여기까지 말했을 때 의사가 끼어들었다.
“하던 일들이 한꺼번에 엎어진 탓에 우울해져서 술에 의존하게 됐다는 건데…… 사실 일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집안일이나 아이를 키우는 것에 전보다 더 집중하면서 보람과 성취를 느끼는 건 생각해보지 않으셨나요?”
순간 멍해졌다. 청소를 안 해서 먼지 쌓인 거실, 사다 놓은 반찬으로 대충 때우는 저녁상, 아침마다 지지고 볶는 아이의 얼굴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가사와 가정에 충실해서 성취를 느낀다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저는…… 그런 것에서 성취를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는 변명하듯 덧붙였다.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르니까요.”
의사는 동의했다
“그렇죠. 이건 개인 성향 따라 다른 문제죠. 그럼 혹시 지금의 고민을 나눌 만한 주변 사람은 없나요? 여동생? 엄마?”
나는 두 번째로 멍해졌다.
“동생과는 그렇게 친한 편이 아니고, 엄마에게는…… 어휴, 그런 이야기는 절대 안 하죠.”
나는 어릴 때부터 독립심이 강한 편이었고 사춘기 이후로는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놓거나 정서적으로 기대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학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온 뒤로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부터는 아예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멀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엄마를 멀리했다는 편이 맞을 거다. 내 가족관계가 얼마나 소원한지 깨달으며 새삼 스스로 놀랐다.
“남편은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언젠가부터 남편에게조차 속마음을 말하지 않게 됐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에게 진솔하게 내 속내를 털어놓는다는 게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고민이나 괴로운 일을 하소연하려고 하면 목이 콱 막히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을 선택했다.
“자존심이 상하는 게 싫어서…… 힘들다는 얘기는 잘 안 해요.”
의사는 표정에 의아함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기분이 이상했다. 자존심 때문에 배우자에게 힘든 심정을 털어놓지 못한다니. 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나는 내 괴로운 속사정을 다른 이에게 드러내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괜찮은 척,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하며 황폐해진 내면을 감추고 살아온 게 습관으로 굳어졌다.
“일에서만 성취를 느끼는 분인데 일이 중단됐고, 그래서 우울한데 말할 사람도 없고. 이건 뭐, 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겠군요.”
의사는 담담하게 말하며 노트북에 뭔가를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나는 처음 본 사람 앞에서 벌거벗은 것처럼 점점 위축됐다.
“술을 자주, 많이 마시는 건 드러난 증상에 불과해요. 우울의 근본적인 원인들이 있으니까 술을 마시게 되는 거죠. 그게 나아지지 않으면 약을 먹더라도 금방 다시 또 술을 마시게 될 거예요.”
돌이켜보면 나는 늘 술을 좋아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못 말리는 주당, 선배들 사이에서는 술을 궤짝으로 마시는 ‘장비’로 통했다. 하지만 최근 한 달의 음주 패턴은 사람들과 떠들썩하게 어울리며 즐겁게 부어라 마셔라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집에서 혼자, 너무 많이, 너무 자주, 그것도 너무 일찍부터 먹고 있었다. 하루라는 시간의 용량을 다른 아무것도 없이 그저 술로만 가득 채워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밤에 혼자 술판을 벌인 것으로 시작했다. 밤 10시쯤 아이와 남편이 쿨쿨 잠들면 거실은 나만의 술집이 된다. 만두 같은 냉동식품을 데우거나 가끔은 배달음식까지 주문해 술상을 차렸다. 낮에 사서 냉장고에 넣어둔 차가운 술병을 꺼내 거실 탁자로 가져갈 땐 콧노래가 나왔다. 위스키에 탄산수를 탄 하이볼, 찐득한 칠레산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 편의점 네 캔 1만 원의 축복을 받은 그 셀 수도 없이 많고 많은 맥주들이 번갈아 내 술상 위에 올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텅 빈 채 재활용품 수거함으로 쑥 들어갔다.
거실 소파에 늘어지게 앉아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를 틀어놓고 정신없이 마시다 보며 맥주 세 캔이나 와인 한 병쯤은 순식간에 없어졌다. 술을 마시는 그 순간만큼은 갈 데 없이 방황하던 마음이 차분해졌고, 취기가 오를수록 기분이 고조되면서 우울한 기운이 싹 물러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곤드레만드레 취하고 나서야 비틀비틀 침실로 가서 쓰러지듯 잠들었다.
매일 밤을 이렇게 보내는 탓에 우리 집 재활용품 수거함은 2~3일 만에 맥주캔과 술병으로 꽉 찼다. 나중에는 쓰레기 양이 눈치 보여 위스키를 탄산수에 타서 마시는 식으로 바꿨는데 그마저도 너무 빠르게 비워버리는 바람에 곤란했다. 원래 재활용품 버리는 건 남편 몫인데 어느 날부터는 다 마신 술병을 감추기 위해 내가 자진해서 버리기 시작했다.
이런 밤들이 몇 주씩, 몇 달씩 지나고 나자 나중에는 한낮에도 술 생각이 났다. 처음에는 집에서 혼자 점심을 먹으며 와인이나 맥주를 곁들였다. 반주로 한두 잔 마시던 수준에서 시간이 지나며 맥주를 세 캔씩, 와인을 한 병씩 해치우는 걸로 바뀌었다. 마시지 않으려고 장을 볼 때 일부러 술을 사두지 않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점심 때가 되면 음주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배달음식과 소주를 주문해서 벌건 대낮부터 혼자만의 거창한 술판을 벌였으니까. 나중에는 오전 내내 시계를 흘낏거리며 초조한 마음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점심시간을 기다리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술에 집착하는 와중에도 일상생활을 나름대로 유지했다는 점이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간식과 저녁을 챙겨준다. 숙제를 봐주고 씻긴 다음 아이가 잠들면 다시 또 혼자만의 술판을 벌였다. 싸구려 위스키에 탄산수를 탄 하이볼, 와인, 맥주…….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으로 원칙을 세워 적어도 정오는 넘어야 술을 마시자고 결심했지만, 결국은 금기를 깨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하늘이 물감처럼 새파랗게 화창하던 5월의 어느 날,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날도 우울한 생각, 절망적인 망상에 휩싸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하지? 이 나이가 됐는데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상태라니.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다니. 내 인생은 망했어. 나는 무가치한 인간이야.’
술, 술이 필요했다. 취하면 정신이 몽롱해지면 생각이 멈출 거고, 기분이 좀 나아지며 슬픔도 아픔도 사라지겠지.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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