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 1988
이 책은 페미니즘 관점으로 정치 이론을 다룬 책이지, 여성에 대한 책은 아니다. 『과학과 젠더Reflections on Gender and Science』에서 이블린 폭스 켈러Evelyn Fox Keller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젠더와 과학에 대해 연구한다고 했을 때, 대개 이를 여성에 대한 연구로 여기는 걸 보고 상당히 놀랐다. 여성이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면 남성도 당연히 그러하다. 과학도 그러하다.” 정치와 정치이론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인문학 연구자라면 인간세계의 모든 게 구성된 것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페미니즘 연구자들은 지난 10여 년간 인간세계의 모든 것이 젠더화를 통해 구성되었다고 주장해 왔으며. 이 책도 그런 주장을 담고 있다. 정치 이론은 서양사에서도 특히 남성의 관점이 강한 분야로, 갖가지 양상으로 남성성이 깊게 스며들어 있다. 정치 이론의 고전에는 여성이 정치에서 어떻게 역사적으로 배제되고 종속적 지위로 떨어졌는지 기술되어 있으며, 남성적 공권력, 질서, 자유, 정의에 대한 표현이 매우 풍부하게 담겨 있다.
지난 10여 년간 페미니즘 비평이 여러 분야의 모든 틈새로 확장된 과정을 꼼꼼히 따라온 이라면, 여성과 직접 연관되지 않은 페미니즘적 탐구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대 페미니즘의 고민이 상대적으로 익숙지 않은 이라면, 이런 탐구가 모순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내가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남성됨manhood과 정치를 연구한다고 동료들에게 말했을 때, 그들은 오로지 ‘페미니즘’이라는 말만 듣고 내 연구가 정치 또는 정치 이론에서의 여성이나 여성 정치사상가 같은 ‘여성 문제’를 다루리라고 짐작했다. 혹자는 수전 오킨Susan Okin의 『서구 정치사상의 여성Women in Western Political Thought』이 내 연구와 “가장 유사한 경쟁 연구”라고 평하기도 했다. 물론 오킨의 연구는 크나큰 존경을 받을 만하지만, 제목에 드러나듯 그 책은 서구 정치사상에서 남성이나 남성성이 아니라 여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많은 이들은 페미니즘 연구이면서 여성을 최우선 관심사로 두지 않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것이고, 페미니즘을 제외한 이 세상 모든 것이 인간, 즉 남성에 관한 것이라는 세계관에서는 내 연구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이 책은 이런 몰이해에 깃들어 있는 칼날, 바로 그 정치적인 지점에 관심을 둔다. 과학의 구성 과정에 젠더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받이들이지 못한 이들을 목도하고서 켈러가 놀랐던 것을 다시 생각해 보자. 이런 몰이해가 정말 놀랄 만한 일일까? 인종 차별 반대 운동에서 나오는 몇몇 말들은 소수자를 시민권 안에 가둬 버리곤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성 문학이든 여성 권리든 여성 문제에 한정된 페미니즘은 그 문제 밖에 있는 이들에게 도전이나 위협으로 보이지 않고, 따라서 쉽게 받아들여진다. 여성과 관련된 것으로만 구성된 페미니즘은 페미니스트가 아닌 남성도 별다른 고충이나 상처 없이 다양하게 지지, 협력, 감내 또는 주변화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이 모든 것이 전혀 남성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페미니즘이라면 교육과정에 ‘끼워 넣을’ 수 있고, 강연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여 가며 들을 수 있고, 학술회의의 한 대목으로 엮을 수도 있으며, 전문가 조직의 자리를 하나 따내거나 구직 면접의 기회도 얻게 할 수 있고, 교육법 수정안 9조의 통계치로 변환할 수도 있다. 그런 페미니즘은 부족한 일자리를 두고 어쩌다 여성 우대 정책에 대한 갈등이 빚어질 때나 가족 모두가 피곤한데 누가 설거지를 하면 좋을지 옥신각신할 때 정도를 빼고는 남성과 무관해 보인다.
여성이 완전히 배제된 영역에 페미니즘의 척도를 도입하는 것은 페미니즘을 주변화하거나 들러리 서지 않게 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제2의 물결’ 페미니즘 연구지들은 20여 년 전 첫발을 내디딘 이래로 기나긴 여행을 해 왔는데, 이 여정에는 주목할 만한 두 번의 전환이 있었다. 첫 번째는 전통적 학문에서 여성을 지우거나 터무니없게 묘사하던 것들을 기록하고 보여 주는 데서 그 삭제와 묘사를 바로잡는 기반 공사 작업으로 이동한 것이다. 페미니즘 연구자들은 이미 승인된 역사 가운데서 여성 혐오misogyny와 근거 없는 믿음을 공들여 찾아내는 한편 우리 자신의 역사와 문헌을 복원해 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여성’은 여성들이 되었다. 다시 말해 ‘영구 불멸의 여성성’이라는 상상이 아니라, 그 상상에다가 근대·백인·중간계급 등과 같은 속성을 결합시켜 변주한 형태가 아니라, 저마다 특정 인종·계급·시대·문화에 걸맞게 구성된 복수의 창조물이 된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 자신을 복원하는 것에서 그 회복된 관점으로 세계를 비판적으로 따져 보는 것으로의 전환, 즉 기존 담론·규율·제도·실천의 젠더화된 특질에 대한 비평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주변부 여성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그 경험을 만들어 낸 세계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가는,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파고들어 가는 이동이었다. (이 전환은 오직 이 순서대로만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덕분에 페미니즘 연구는 이익집단을 변호한다는 오명에서 벗어나, 가장 심오하고 충만한 시민을 상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는 영장류 동물학에서 관료제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에서 재현에 이르기까지, 성과학에서 도덕론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문의 틈새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론과 인식론에 대해 이야기할 무언가를 조금씩 만들어 가고 있다. 물론 많은 이들이 우리를 다시 게토로 보내 버리고 싶어 하지만 말이다. 『미국 정신의 종말The Closing of the American Mind』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앨런 블룸Allan Bloom을 비롯한 몇몇 이들은 이를 절실히 바라고 있다. 켈러를 놀라게 한, 여성 문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젠더를 ‘상상할 수 없는’ 이들 또한 그러하다.
동시대 페미니즘은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사회가 남성적으로 구축한 다양한 담론·규율·제도 등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세계를 해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변혁하기 위해서” 이론에 던지는 유용한 경고다. 남성적 담론·규율·제도 등을 공격하면서 이를 바꾸는 길을 찾아 지도를 그리는 사이, 우리가 남성 지배의 급소를 타격하기 때문이다. 또한 페미니즘은 기존 지식과 권력의 질서에 대한 대안을 상상하고 그려보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짊어진, 역사에 필요한 일원임을 자각하고 있다는 징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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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목소리로 쓰였다. 일부는 참고한 텍스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일부는 내가 정치적·학문적으로 텍스트에 다중적으로 몰입하며 나타난 현상이다. 텍스트의 영향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타인의 기분과 스타일에 잘 휩쓸리는 편이라서 막스 베버Max Weber에 대한 장은 진지하고 직설적이면서도 우울한 반면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에 대한 장은 암시적이고 쾌활하다. 의도적으로 그리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텍스트와 이렇게 ‘합체’된다는 것은 분명 미심쩍은 데가 있다. 이는 분명 젠더화된 무언가와 관련되는데, 체득된 의식구조는 변혁적 마음가짐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 법이다. 여기에서 내가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정치에 뜨거운 관심을 품은 학자라면 누구든 틀림없이 이런 다중적 몰입을 경험해 보았으리라는 점 정도다. 나는 이따금 고전 정치 이론가들의 기교 넘치는 천재성에 얼어붙는다. 애초에 나는 지적인 미학 때문에 정치철학에 끌렸다. 다시 말해 애초에 나를 끌어당긴 것은 플라톤Platon의 정치학이 아니라 장엄함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적 지배의 피해자를 비롯해 고난과 부정이 만연한 세계에 대한 긴급한 요구들이 내 마음을 움직인다. 이런 순간에는 텍스트의 뉘앙스와 해석의 미묘함에 집중하는 데서 벗어나 정치 이론의 정전들이 권위를 부여하고 정당화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조바심이 앞선다. 물론 여기에는 내 모순된 자아들이 있다. 각기 팽팽한 긴장 상태로 묶여 있는 생명의 가닥들이, 플라톤이 ‘무질서한 영혼’의 증상이라고 또는 (내 생각에는 다소 가혹한 판단인) 민주주의의 무정부주의적 단계라고 규정했던 방식으로 서로 싸움을 벌인다.
이런 나의 모순된 모습에는 열정 가득한 정치철학 추종자와 조바심내는 시민만 있는 게 아니다. 남성들의 잘난 척이 우스꽝스러워 보이고 그들이 만든 제도가 너무나 터무니없어 보일 때, 나는 그 고매하신 이론적 지껄임과 자아도취적 묘사를 패러디하고 싶어진다. 또 다른 때에는 남성성의 구성 과정 그리고 남성성 내부의 긴장과 모순에 흠뻑 사로잡혀, 그 복잡한 지점들을 콕 집어내고는 상당히 흡족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성적 지배가 부조리나 내적 긴장이 아닌 파괴적 결론으로 내 눈앞에 나타날 때, 그리고 여성의 정신 건강과 생존과 세계가 위기에 놓이는 순간에는, 격렬하고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등장하게 된다. 이런 목소리들의 다중성은 페미니즘에 들어 있는 두 가지 목소리의 대립, 즉 (비록 저평가되었지만) 힘 있는 사회적 행위자로서의 여성이라는 특징과 종속적이며 희생된 여성이라는 특징 간 대립으로 나타난다. 사실 둘 다 우리 자신이다. 남성적 지배에 말도 못 하게 하찮은 순간과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순간이 모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를 포기하는 페미니즘은, 여성과 여성 경험의 범주를 포착하는 분석에 실패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드러나는 각기 다른 목소리들은 일종의 문학적 장치가 아니라 정치 이론과 세계를 다루는 페미니스트 연구자에게는 피할 수 없이 내재된 것이어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일부 여성운동은 적어도 이 다양한 목소리들의 크기를 줄이거나 위계질서를 정하거나 심지어 분류하고 유형화하는 식으로 간섭하지 않고, 윤리적 상대주의에도 굴복하지 않으면서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있다. 때로는 무척이나 어색하지만, 우리는 차이에 대해 그리고 분절적이고 유동적이며 복수인 정체성에 대해 단순히 관용적인 데 그치지 않고 진정 민주주의적이면서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정치 이론도 언젠가는 이 길을 따르게 될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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