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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외국어 학습 딜레마,
그리고 우리 앞에 당도한
외국어 학습의 새로운 목표
(중략)
AI의 등장과 발전으로 실용적인 목적의 외국어 학습은 조만간 사라질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어 학습의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외국어 학습의 주도권이 개인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즉 개인에 따라 외국어 학습에 대한 요구가 그만큼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취미에서 도구로, 도구에서 다시 취미로! 외국어 학습 목적 변천사
외국어 학습이 취미의 대상이 된 것은 최근 들어 일어난 현상이 아니다. 이미 19세기 말 등장했다. 외국어 고전문헌을 읽는 것에서 말하기로 외국어 학습의 내용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자 뜻밖에 외국어를 취미로 배우려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당장 필요는 없지만 언젠가를 위해 또는 호기심에 의해 외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알리앙스 프랑세즈Alliance française, 벌리츠Berlitz 같은 교육 기관이 등장했다. 아울러 인공적 국제 공통어인 에스페란토를 공부하려는 이들도 점점 늘었다. 이러한 외국어 학습의 형태는 주로 대면 수업과 학습 모임이었다. 사람들이 같은 목표를 가지고 모이는 곳이다 보니 취미로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동시에 사교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취미와 사교를 목적으로 한 외국어 학습에 관한 관심은 2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느라 현저히 낮아졌다가 종전 이후 활발해지는 듯하더니 또다시 주춤했다. 외국어 학습이 더이상 취미의 영역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실용적인 이유로 외국어 학습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를 장악한 영어 패권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제 다양한 외국어를 취미로 배우는 대신 앞다퉈 영어를 배워야 했다. 오직 영어만이 성취를 위한 강력한 도구였고,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곧 영어 학습을 의미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비영어권 국가에서는 앞다퉈 교육 현장에 영어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였다. 한국 역시 그런 나라 가운데 하나지만,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세계 주요 도시의 거리에서 만나는 젊은이들에게 말을 걸면 거의 대부분 나에게 영어로 답한다. 그 나라 말로 질문을 해도 영어로 답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 역시 학창 시절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웠을 것이다. 졸업 후에도 열심히 공부를 계속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배운 영어가 자발적 선택에 의한 취미의 대상이었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아마 그보다는 교과 과정의 필수 과목이자 성취를 위한 도구였을 가능성 쪽이 훨씬 높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또 변화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외국어 학습을 취미로 인식하는 경향이 매우 뚜렷하게 다시 등장했다. 물론 이 이전에도 이런 경향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실제로 한국의 중년 가운데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 문화 개방 방침 결정 이전 일본의 만화나 영화 등을 즐기기 위해 일본어를 독학했다는 이들이 많다. 그 역시도 취미로 외국어를 학습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본격적인 취미의 대상으로 외국어 학습의 붐을 일으킨 사례는 훨씬 더 가까이에 있다. 바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등장한 한류다. 외국어 학습을 취미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흐름의 선봉에 한류를 빼놓을 수 없다. 거의 모든 문화가 영어권, 즉 미국에서 발원하여 세계로 뻗어나가던 형국이었다면 언젠가부터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문화가 굳이 미국 또는 영어라는 인프라 없이도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인터넷의 발달인데, 영어의 패권은 여전하지만 오로지 영어만이 전부였던 세상에 다른 언어의 유입과 확산은 유의미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한류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일본에서 붐을 일으킨 드라마 〈겨울연가〉다. 실제로 이 드라마에 몰입한 일본 중년 여성들은 주연 배우인 배용준과 최지우를 ‘욘사마’, ‘지우히메’라고 부르며 강력하고 뜨거운 팬덤을 형성했고, 이들은 드라마 촬영지를 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 것에서 나아가 앞다퉈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른바 일본인들이 취미로 배우는 외국어의 앞자리에 한국어가 자리를 잡은 셈이었다.
2000년대 중반 가고시마 대학교에서 일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였다. 첫 학기를 마친 뒤 학생들에게 한국어 수업을 신청한 동기를 물었다. 몇몇 학생이 학교에서 한글을 배워 욘사마를 좋아하는 어머니에게 가르쳐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동기로 외국어 학습을 시작하는 이들의 의지가 얼마나 유지될 것인가에 대해 당시만 해도 회의적이었다. 역시 욘사마로부터 시작한 학생들은 대부분 다음 학기에 주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한글과 간단한 인사말 정도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한류 열풍으로 한글을 앞다퉈 배우려던 일본 중년 여성들 가운데 한국어를 중급 이상의 단계까지 공부한 사례는 극히 적었다. 이들 역시 대부분 한글을 익히고 간단한 인사말 정도를 하는 것에서 멈췄다. 전국적으로 붐처럼 급증한 한국어 교습 학원의 프로그램 역시 거의 다 기초 한국어 과정이었고, 중급 또는 고급에 이르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원하는 아이들이 있다 해도 뒷받침해 줄 교육 시스템이 거의 없었던 탓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이런 현상이 실용적 목표가 아닌 취미로서의 외국어 학습이 갖는 한계라고 생각했다.
한류로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 붐은 주춤하는 듯하더니 어느새 케이팝이라는 불꽃으로 이어졌다. 드라마에 비해 훨씬 폭발적이었고, 일본과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단순히 스타를 좋아하는 것에서 나아가 온라인과 SNS를 통해 정보 교환을 하는 강력한 팬덤이 등장했고, 역시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국어 수업에 대한 요구가 늘어났다.
2019년 발행한 미국현대어학회Modern Language Association of America 2016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고등교육기관에서 외국어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 가운데 한국어 수강생이 해마다 큰폭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왔다. 물론 미국인들의 전통적 외국어 학습 대상인 스페인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독일어·일본어에 비해 뒤떨어지는 숫자이긴 하지만 몇 년 사이 한국어 수강자가 급증한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러나 케이팝을 통한 한국어 학습 붐은 이 조사의 결과로만 판단할 수 없다. 외국인 팬들의 한국어 학습은 교육 기관을 통하기보다 팬들끼리 서로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훨씬 역동적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팝 팬들은 노래 가사를 자국의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한글을 배우고 단어와 가사의 표현을 익힌다. 그렇게 번역을 해서 올려놓으면 다른 팬들이 그것으로 노래를 이해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서로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주기도 하고, 다른 가수의 다른 노래를 소개해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점 한국어에 익숙해진다. 이들에게 한국어 학습은 골치 아픈 공부의 대상이라기보다 게임을 즐기기 위한 룰처럼 엄연한 취미 활동의 일환이며 자신이 즐기려는 취미의 세계에 더 깊이 진입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도구다.
21세기 케이팝의 팬들은 SNS와 인터넷을 통해 취미로서의 외국어 학습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욘사마를 좋아했던 일본 중년 여성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벌리츠나 알리앙스 프랑세즈를 통해 프랑스 회화를 배웠던 미국인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취미로 외국어 학습을 배웠던 이전 시대 사람들이 대내외적 환경에 의해 대부분 초급 수준에 머물렀다면 21세기 취미로서의 외국어 학습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이전보다 훨씬 유창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선봉에 한류에 이어 케이팝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곧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가 어디까지 어떻게 뻗어나갈까를 지켜보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미 개인에게 넘어온 외국어 학습 주도권
이렇듯 이미 외국어 학습은 개인의 취미, 교양 중심, 지적 자극을 위한 도구 등 각자의 목표를 가진 개인들의 자발적인 동기로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 외국어 학습은 교사 중심, 학교 중심, 교과 과정의 일방적인 흐름에 따르지 않고 개인이 원하는 대로, 각자 형편에 맞춰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전환은 뚜렷하게 진행 중이다. 즉, 외국어 학습의 주도권이 이미 개인으로 넘어가기 시작했고, 조만간 완전히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AI의 등장과 발전으로 실용적인 목적의 외국어 학습은 조만간 사라질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어 학습의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외국어 학습의 주도권이 개인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즉 개인에 따라 외국어 학습에 대한 요구가 그만큼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요구에 의해, 누군가에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시대는 이미 저물어 가고 있고, 그 대신에 개인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 외국어를 학습하는 시대가 이미 문을 연 지 오래다. 그리고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그것도 매우 열심히.
배우기가 만만치 않은 데다가 AI의 급속한 발달로 굳이 힘들게 배우지 않아도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세상이 열리고 있는 이 시대에 그들은 또 우리는 왜 외국어를 배우려 하고, 공부하고 있는가. 누군가는 AI를 통해 변환하는 데이터 값으로서의 언어 사용이 편리할 수 있다. 그런 편리함을 추구하는 이들을 위해 기술의 발전은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전개될 것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새롭게 등장한 ‘외국어 딜레마’와 마주 앉아 있는 셈이다. 곧 AI로 모든 게 해결이 될 텐데 굳이 외국어를 왜 배워야 하느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부터 학습하는 과정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수많은 외국어를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까지 외국어 학습을 둘러싼 개인들의 입장은 천차만별로 다르다. 오늘날 무수한 개인 앞에 주어지는 학습의 내용과 환경 역시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하지만 만약 AI의 진보된 기술에 더해 ‘인간적인 대화’를 원한다면, 누구에게나 똑같은 결과값을 제공하는 매끈한 번역문에 더해 행간에 담긴 문맥의 의미를 제대로 읽고 싶다면 외국어 학습의 문을 다시 한 번 두드려볼 것을 권한다.
외국어 학습을 둘러싼 숱한 전망과 요구 앞에서 결국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외국어 학습이란 무엇을 배울 것이냐, 어디에서 어떻게 배울 것이냐, 누가 어떤 동기와 태도로 배울 것이냐를 둘러싼 수많은 논의와 선택의 과정을 거쳐야만 당도할 수 있는 머나먼 여정인 것 같기도 하다. 분명한 건 있다. 어떤 외국어든,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나이가 몇이든, 지금부터 시작하면 평생의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외국어는 배울 것도 많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부인할 수 없다. 배워나가는 길은 시원하게 앞으로 뻗어나가는 직선이 아니다. 전진과 후퇴를 번갈아 맛볼 것이다. 좋은 날이 있으면 답답한 날이 있다. 그러나 묵묵히 해나가다 보면 단계마다 고비마다 각별한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 길의 가장 좋은 동반자는 좋은 교사도, 탁월한 교수법도 아니다. 외국어 공부를 그 자체로 즐기며 힘들지만 앞으로 나아가 보겠다는 각자의 마음과 태도다. 그러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학습 스타일을 발견하게 되고, 어느덧 외국어 공부에 끌려가지 않고 주체적으로 해나가는 스스로를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평생의 친구를 얻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외국어 학습의 출발선에 선 독자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쓰게 되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이왕 마음먹고 시작한 외국어 학습의 어려움을 함께 견디고, 오랜 시간을 인내하며, 즐겁게 배워나가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기로 하자. 즐기며 연습하며 계속해 나가기. 이 책의 결론은 어쩌면 이미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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