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나는 도배가 좋다
‘그런 일을 하다니 대단하네.’
‘그런 일을 하기에는 좀 아깝지 않아?’
‘아직도 그 일 계속하고 있니?’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고 도전한 ‘도배사’라는 나의 새로운 직업은 사람들에게 ‘그런 일’로 더 많이 불렸다. 최근에는 부모님이 지인으로부터 ‘따님이 그런 일 하는 사람하고 눈 맞아서 결혼까지 하면 어떻게 하시게요?’라는 말도 들었다고 하셨다. 내가 이미 ‘그런 일’을 하고 있는데 같은 일 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것을 왜 누군가가 우려하는 것이며, 근본적으로 내가 하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렵고 조심스럽게 언급되는지 의문이 든다.
‘직업에 귀천이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사람들의 대답은 분분할 것이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귀한 직업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천한 직업을 얻게 된다’라고 주장하며 당연히 귀천이 있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반면 ‘직업의 귀천을 나누는 사회가 잘못되었으며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새로운 직업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그 직업이 돈을 더 많이 벌기도 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귀천을 나누겠냐’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직업에 귀천이 있을까 오랜 시간 고민해보았지만 쉽게 답이 내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도배를 시작한 이후로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의 직업에 어떠한 평가를 내리고 그것을 은연중에 내비친다는 것이다.
나는 충동적이거나 용기 있지는 않지만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래서 항상 크고 작은 도전을 하고는 한다. 고등학생 때에는 노래를 잘 못해도 중창 동아리에 들어갔고, 대학교 신입생 때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수십 명의 팀원들을 이끄는 봉사활동 리더로 나서기도 했다. 외국어에 자신이 없어도 해외로 탐방을 가서 여러 기관의 담당자들을 인터뷰하기도 했고, 자취가 해보고 싶었던 때에는 목표와 계획이 담긴 ‘자취 계획서’를 작성해 부모님을 설득했다. 이는 모두 어떤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했다기보다는 그 순간 해보고 싶은 일이었기에 도전했던 것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선택하지 않는 직업을 고른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였다. 도배라는 것이 내게는 ‘한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일’인 셈이다.
도배가 어떤 일인지, 어떻게 진행되는 작업인지 조금도 알지 못할 때부터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직장을 그만두면서 하고 싶은 일은 기술직이었다. 철없던 어린 시절의 로망이건 혹은 직장생활의 도피처이건 상관없이, 도전해보고 싶던 일을 하고 있는 현재 그 선택에 만족한다. 일이 내게 아주 잘 맞아서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어서도 아니다. 다만 내가 해보고 싶은 일에 뛰어들었으며 어려운 상황을 버텨내고 점점 기술자가 되어간다는 사실이 좋을 뿐이다. 싫증을 잘 내고 다양한 시도를 즐기기 때문에 언젠가는 도배를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내가 내 인생에서 도배라는 일에 도전하고 그 직업에 몸담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내 인생에서 성장과 도전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중략)
도전, 그러나 도피
어려서부터 나는 무언가 결정을 내릴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그때 나는 어떤 일에 대해 판단 내리는 것이 무척 어려웠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최대한 많은 저보를 바탕으로 결정해야 마음이 편하지만 그 역시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기에 항상 불안해한다. 그 선택이 설령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나 혼자만의 일이라면 스스로 수습하고 책임지면 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더욱 난감해진다.
의학드라마를 즐겨보는 내가 항상 궁금해하며 동시에 존경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의사들이 그 어려운 의학용어와 병명 등을 외우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에 진단을 내리고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빠른 판단력이다. 그 한순간의 선택으로 누군가의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데 말이다. 나의 판단에 의하여 누군가의 삶이 변하는 것, 그것만큼 어렵고 두려운 것은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 받는 직업들은 대부분 판단과 행동으로 누군가의 삶에 깊이 관여해야 하는 일들이다. 의사, 변호사, 공무원, 교사 등 당장 떠오르는 직업들만 해도 모두 그렇다.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에는 자신 있었지만, 그로 위해 얻게 될 직업이 타인을 만나 그 삶을 들여다보고 영향을 끼치는 일이라면 되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그 영향이 부정적일 수 있다면 말이다.
내가 처음 직업으로 택했던 ‘사회복지사’ 역시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는 일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 업무를 해보기 전까지는, 필요한 이에게 경제적·물질적·정서적 지원을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영향이 긍정적이기만 할 줄 알았다. 많고 많은 사회복지 분야 중 노인복지를 선택한 이유도 지원을 하는 대상이 어리면 어릴수록 사회복지사가 그의 삶에 미치게 될 영향이 클 것이라 생각했고, 이미 꽤 오랜 삶을 살아온 대상이라면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것도 결국 직장을 그만두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처음으로 취직한 노인복지관에서 맡은 ‘노인일자리’ 업무는 재미있고 보람찼다. 어르신들을 만나 응대하고 일자리를 소개해드리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어르신들이 일하는 장소의 직원들과 어르신들의 관계를 조율하는 일 모두 흥미롭고 적성에 잘 맞았다. 그러나 ‘복지 서비스’의 특성상 자원내가 맡은 일에서는 ‘일자리’를 의미은 한정적이고 수요일자리를 희망하는 어르신들는 많기에 그 대상을 선별해내야만 했으나 이 사업을 진행하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정해준 선별 기준은 실제 어르신들의 간절함과 필요성에 비례하지 않았다. 당장 그 일자리가 아니면 소득이 없어지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어르신은 탈락하고, 반면 비교적 가볍게 용돈벌이로 하는 어르신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선별 기준에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고 기준에 따라 서비스에서 제외되는 대상자들을 바라보는 상황이 힘들었다. 그리고 일선에서 이런 불합리를 직접 겪는 사회복지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르신들께 사과를 드리고 이유를 설명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나의 이상과는 달랐던 사회복지 업무, 조직 생활의 불합리 등의 이유로 퇴사를 마음먹은 후 다양한 직업을 찾아보았다. 새로운 분야를 경험하는 것 자체는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정말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일까 신중하게 고민했다. 내가 나 스스로를 혹은 가족들을 먹여살릴 수 있는 일, 내가 오래 버틸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조직 생활에 취약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으면서도 매 순간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되는 일이 무엇일까 물색했다.
그렇다. 도배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할 수 없는 일을 피하다 보니 시작하게 된 것이다. 여러 직업군과 회사를 검색하며 내가 그곳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놓이게 될 최악의 상황들을 상상했다. 지금 당장은 특정 업무나 보수, 업무 환경 등이 매력적으로 보일지라도 금방 지쳐 나가떨어질 만한 곳들은 제외했다. 그렇게 찾다보니 남은 후보군은 많지 않았다. 조직 생활이나 힘들게 소비자를 상대해야 하는 일이 아닌 것, 누군가의 삶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일, 순발력 있게 판단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일, 그리고 기술직 중 내가 견딜 수 있는 일. 그렇게 찾은 일이 바로 도배 일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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