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그녀의 오리들
1장
엄마는 오리 먹이를 잘 만든다. 지유는 만드는 법을 잘 안다.
먼저 돼지고기를 사야 한다. 머리나 갈비, 뒷다리 같은 덩어리 고기를 뼈째 사는 게 좋다. 엄마는 항상 도매시장에 간다. 마트에서 파는 살코기는 양에 비해 비싸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는 ‘비싸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놓고 돈 얘기를 하는 건 상스러운 짓이니까. 대신 이렇게 말한다. 오리도 칼슘이 필요해.
고기 손질도 엄마가 한다. 필요한 도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식도. 뼈를 토막 내는 칼이다. 손도끼처럼 생겼고 손도끼만큼 무겁다. 이 칼을 쓰려면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머리 위까지 들어올려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심한 표정으로 한 방에 탕 내리쳐야 한다. 엄마는 그렇게 한다.
두 번째로 ‘뼈 칼’이 있어야 한다. 뼈에 붙은 살을 바르는 길고 날카로운 칼이다. 포장지를 벗기듯, 갈빗살을 한꺼번에 싹 발라준다. ‘고기 칼’은 힘줄을 끊을 때 쓴다. 관절과 연골을 도려낼 때도 쓴다. ‘회칼’은 고기를 얇게 뜰 때 필요하다. 포를 뜨는 이유는 지유도 잘 모른다.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회칼을 쓸 땐, 엄마에게 말을 걸 수 없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엄마의 손을 뜨게 되니까.
손질이 끝난 고기는 찜기 두 개에 나누어서 삶는다. 뼈에 남은 살이 말끔하게 떨어질 때까지 오래오래, 푹. 다 삶은 살코기는 민서기에 간다. 소시지를 만들 때 쓰는 기계인데, 손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자기가 갈고 있는 게 돼지고기인지 사람고기인지, 민서기는 알지 못하므로. 뼈는 믹서로 간다. 가루가 되면, 갈아둔 고기와 섞어 비닐봉지에 담는다.
엄마가 오리 먹이를 만들기 시작한 건, 지난봄 어느 날이었다. 지유가 엄마를 따라 처음 시골집에 온 날이기도 했다. 이후 네 번 더 왔다. 5월에 한 번, 여름에 두 번, 한 달 전에 한 번.
올 때마다 엄마는 오리 먹이를 만들었다. 처음엔 칼질이 서툴렀지만 이젠 선수가 됐다. 정확하고 빠르게 토막 내고, 바르고, 뜬다. 과정을 지켜본 지유 역시 이 세 가지 용어를 헷갈리지 않고 쓰게 됐다.
지유의 임무는 마당 창고에서 수레를 꺼내오는 것이다. 먼 옛날 엄마의 할머니가 텃밭 일을 할 때 썼다는 건초 수레다. 지금은 집 앞 갈대 습지로 오리 먹이를 가져갈 때 쓴다. 습지는 넓고, 오리 먹이는 무겁고, 반달늪으로 가는 길은 머니까. 엄마는 수레 운전도 잘한다.
반달늪은 지유가 다니는 YMCA 수영장만 하다. 산에서 흘러내린 물과 땅속에서 솟아난 물이 고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깊지는 않아도 바닥이 진흙 펄이라 들어가선 안 된다. 늪 둘레길을 함부로 돌아다녀서도 안 된다. 반달늪 너머엔 깊은 골짜기가 있는데, 발이라도 미끄러져 떨어지는 날엔 뼈도 못 추린다. 지유는 딱 한 번 가봤다. 엄마 몰래.
습지는 엄마의 땅이다. 돌아가신 엄마의 할머니가 시골집과 함께 물려준 것이다. 반달늪은 습지 끝에 있으며, 온갖 새들이 모여든다. 대부분 겨울에 찾아왔다. 봄에 떠나는 철새들이다. 몇몇 오리들만 떠나지 않고 반달늪에서 죽을 때까지 산다. 그들에게 반달늪은 ‘행복한 오리집’이다.
행복한 오리집엔 천둥오리가 가장 많다. 원앙이라는 오리도 있는데 수컷이 인형처럼 예쁘다. 엄마는 놈을 ‘개자식’이라고 부른다. 바람둥이기 때문이다. 쇠물닭은 오리도 아니면서 오리집에 빌붙어 사는 이상한 새다. 더 이상한 놈은 되강오리인데, 물속이나 수초 틈에 숨어 있기를 좋아한다. 해 질 무렵이면 안개가 부옇게 피어오르는 습지 안에서 비명을 지르듯 운다. 때로는 지유의 꿈속에서도 운다.
반달늪 둘레길엔 ‘밥터’라 부르는 바위가 있다. 넓적한 데다 미끄럼틀처럼 비스듬한 모양이다. 엄마는 그곳으로 수레를 밀고 올라가서 먹이를 준다. 이때 오리들을 부를 필요는 없다. 수레를 들어올려서 물에다 부어버리면 된다. 오리들은 알아서 알아차리고 온다. 날아오거나, 물 위를 내달려 오거나, 물속에서 불쑥 머리를 내밀고 올라오거나. 반달늪 오리들은 엄마가 만든 먹이를 좋아한다.
한번은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물었던 적이 있다.
“오리가 좋아하는 먹이는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 떠들어 댔다. 지렁이요. 달팽이요. 미꾸라지요…….
선생님은 되강오리만큼이나 성격이 이상하다. 꼭 손들지 않은 아이를 지목한다.
“우리 지유가 말해볼까?”
지유는 아이들 앞에서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수십 개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면 배 속이 울렁거린다. 배꼽 밑에서 큰 뱀이 돌아다니는 것 같다. 더 나쁜 건, 말하라는데 말하지 않을 배짱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럴 땐 퉤, 하고 침 뱉듯 말해버리는 수밖에 없다.
“돼지고기요.”
아이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책상을 치며 웃는 놈도 있었다. 바보라고 소리치는 놈도 있고. 선생님은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는 듯 되물었다.
“음…… 혹시 돼지벌레가 아닐까?”
지유는 입을 다물었다. 분하고도 분했다. 정답을 말하고도 조롱을 당해서, 자신이 옳다는 걸 증명할 수 없어서, 선생님에게 고기와 벌레도 구분 못하는 바보 취급을 당해서. 이 일을 엄마에게 일렀는데,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걔네들이 몰라서 그래. 그건 반달늪 오리들의 비밀이거든.”
아, 비밀. 지유는 분이 좀 풀리는 걸 느꼈다. 모든 게 저절로 이해되었다. ‘이해’는 지유가 ‘정말’ 잘하는 일이다. 근거 없는 착각이 아니다. 이모가 외할머니에게 그렇게 말했다. 지유는 언어 이해력이 정말 좋아. 핵심 단어만 알려주면 숨은 그림까지 연결할 줄 안다니까.
“엄마가 비밀이 무슨 뜻이라고 했지?”
엄마가 복습을 시키듯 물었다. 지유는 대답했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되는 거요.”
“그리고?”
‘그리고?’는 이런 뜻이다. 답이 완전하지 않아. 지유는 나머지를 채웠다.
“말하면 벌을 받아요.”
어제 오후, 지유는 엄마의 차를 타고 시골집에 왔다. 늘 오던 길로 왔지만, 도매시장에는 들르지 않았다. 어딘지 모를 도로변에 차를 세워서 아빠를 태웠을 뿐.
아빠가 시골집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빠를 만난 것도 아빠가 집을 나간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아빠가 왜 집을 나갔는지 지유는 알지 못한다. 그날의 기억 몇 조각이 어렴풋한 꿈처럼 남아 있을 뿐. 물론 엄마가 이혼한 이유를 말해주기는 했다. 그놈은 ‘개자식’이야, 라고.
어젯밤 잠들기 전, 아빠는 지유에게 귀엣말을 건넸다.
“아빠, 오늘 안 가. 아래층에서 잘 거야.”
아빠는 졸린 목소리로 덧붙였다.
“우리 일찍 일어나서 반달늪에 가자.”
지유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들떠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금세 잠든 모양이었다. 꿈에서 되강오리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다락방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다락방으로 가보니 아래층 같았다. 계단을 내려가보니 욕실 같았다. 욕실로 달려가 문을 열자, 발밑이 푹 꺼져버렸다. 지유의 몸은 끝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져내렸다.
다리를 쭉 뻗지르면서, 지유는 눈을 떴다. 창밖에서 보름달이 눈을 마주쳐왔다. 반달늪 너머로 가라앉던 저녁해처럼 크고 붉은 달이었다.
“괜찮아. 꿈이야. 아침에 잠을 깨면 다 사라져버릴 꿈.”
어디선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다시 눈을 감고 자는 거야.”
지유는 눈을 감았다. 잠에서 깨려면 먼저 잠을 자야 하니까.
지유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날이 밝고 있었다. 파름한 새벽빛 속에 고기 비린내가 떠돌았다.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냄새였다. 엄마가 오리 먹이를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아빠에게도 오리의 비밀을 알려주려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어젯밤 엄마는 아빠와 화해를 했을지도 몰랐다. 아니,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지유는 침대를 빠져나왔다. 이불 정리도 하지 않고, 내복 차림으로 방을 나섰다. 둘 다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이었다. 그 점을 깜박할 만큼 마음이 조급했다. 어젯밤 꿈이 다 사라졌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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