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모든 생명은 대화한다
오늘 당신은 누구와 얘기를 나눴는가? 배우자? 반려동물? 아니면 화초? 심리치료사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파울 바츨라빅Paul Watzlawick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소통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 하는 소통만이 아니라) 모든 의사소통은 행동이고, 인간이 행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통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 즉 가족, 친구, 직장동료들과 끊임없이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지구에 사는 다른 생명체는 어떻게 소통할까? 파울 바츨라빅의 말에서, ‘인간’을 박테리아, 식물, 동물로 바꿔도 될까? 그래서 그들 역시 “소통하지 않을 수 없을까?”
이 책이 다룰 내용은 ‘바이오커뮤니케이션Biocommunication’이라는 개념으로 요약된다. 모든 생명체는 능동적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그렇게 소통할 수 있다! 그리스어 ‘βίος/bíos’에서 유래한 ‘바이오Bio’는 간단히 말해 ‘생명’을 뜻한다. 라틴어 ‘communicatio’에서 유래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은 대략 ‘메시지’를 뜻한다. ‘생명’과 ‘메시지’는 환상의 짝꿍인데, 식물이나 동물 같은 생명체는 주변 환경의 메시지를 받아 그것에 반응해야 한다. 작은 버섯에서 아주 큰 나무에 이르기까지, 숲에 사는 생명체들도 전달한 메시지가 아주 많다. 그러므로 숲이 고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제대로 귀 기울여 듣지 않았을 뿐이다!
자연은 위대하다
내가 처음으로 바이오커뮤니케이션에 매료된 곳은 나의 고향 브란덴부르크의 숲, 들판, 냇가였다. 그곳에서는 새들이 짹짹짹 지저귀고, 소들이 음메 울고, 냇물이 졸졸졸 흘렀다. 나는 어려서부터 주변 생명체들과 소통하는 연습을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에 실린 여러 동화, 신화, 전설들이 내 손을 들어주었다. 거기에서는 사람과 동식물이 얘기를 나눌 수 있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연의 지혜가 영웅들을 도왔다. 예를 들어, 고대 켈트 문화에서 자연과의 소통은 당연시되던 일이었다. 아이슬란드 등과 아일랜드의 일부 주민들은 새로운 건설 프로젝트가 있으면 지금도 여전히 ‘어머니 대자연’에 허락을 구한다. 일본 홋카이도섬에 사는 아이누 원주민 역시 자연과의 고유한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동식물과 소통한다.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다른 생명체와 대화를 시도하겠는가?
물고기들은
어떤 말을 주고받을까?
나는 포츠담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했다. 내가 걸어야 할 길은 금세 명확해졌다. 나는 행동생물학자가 되기로 했다! 동물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서로 소통하는지 전부 알고 싶었다. 특히 고양이가 흥미로웠고 그래서 이 신비로운 동물의 의사소통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러나 인생이 다 그렇듯, 일은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다. 나는 석사 논문을 쓰는 내내 멕시코에서 고양이와 전혀 무관하게 지냈다. 나의 첫 번째 연구대상은 생뚱맞게도 물고기였다. 동물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데 물고기는 그다지 흥미로워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처음에는 물고기의 행동연구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나의’ 물고기들은 달랐다!
대서양 몰리Poecilia mexicana와 감부시아 모기물고기Hetero-phallus milleri는 체내수정을 하여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 물고기로, 왕성한 성생활을 누린다. 일반적으로 물고기들은 이성 교제가 필요 없다. 체외수정을 하기 때문이다. 암컷이 알을 낳고 수컷이 그 위로 헤엄쳐 지나면 끝!
그러나 대서양 몰리나 감부시아 모기물고기처럼 새끼를 낳는 물고기들은 체내수정을 한다. 체내수정을 하려면 수컷의 정자가 어떻게든 암컷의 몸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난자와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수정을 하려면, 당연히 암수 사이에 의사소통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수컷과 암컷의 ‘대화’가 그렇게 어려운 도전과제가 아니더라도, 떼 지어 사는 물고기들은 자동으로 거대한 통신네트워크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수컷과 암컷 단둘이 아무 방해 없이 오롯이 소통하기가 힘들다. 두 연인이 주고받는 사랑의 대화를 무리의 다른 물고기들도 들을 수 있고, 엿보거나 엿듣는 물고기가 늘 있기 마련이다. 나의 석사 논문은 바로 이런 ‘삼각관계소통’에 관심을 두었다. 예를 들어, 나는 수컷이 다른 구경꾼 수컷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다르게 행동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행동실험을 했다. 그들은 구경꾼과 상관없이, 점찍은 암컷을 계속 공략할까 아니면 구애 전략을 바꿀까? 이 질문의 대답을 이 책에서 듣게 될 것이다!
시골토끼와 도시토끼는
대화주제가 다르다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정보 교환에 매료된 나는 석사 논문을 마친 뒤에도 계속 그 매력에 빠져 있었지만, 여전히 꿈은 고양이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2010년 5월에 나는 장차 나의 박사 논문 지도교수가 될 사람과 고양이의 의사소통 연구에 관해 의논하러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으로 갔다. 하지만 또다시 모든 일이 계획과 다르게 흘러갔다. 그날 밤 나는 라이트를 켜지 않은 채 자전거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밤거리를 달렸고, 그때 일이 벌어졌다. 조그마한 새끼토끼가 갑자기 자전거도로에 뛰어든 것이다. 재빨리 길가 덤불로 방향을 튼 덕에 가까스로 정면충돌은 피할 수 있었다. 토끼와 나, 양쪽 모두 약간의 타박상을 입었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충격을 받았지만, 나는 그때 의아하게 여기며 속으로 물었다. ‘이런 야생동물이 왜 프랑크푸르트 같은 대도시를 돌아다니지?’
다음 날 지도교수가 내 멍을 보고 물었고, 나는 국제금융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진 기이한 충돌에 관해 얘기했다. 지도교수는 “늘 야생토끼를 연구해보고 싶었다”며, 귀가 아주 길고 몸통이 작은 동물의 의사소통에 관해 논문을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고양이가 훨씬 흥미진진하고, 내가 행동생물학자가 된 이유도 사실 고양이 때문이었다”라고 열심히 설득했지만, 지도교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나는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야생토끼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나는 이 주제와 관련된 문헌들을 조사하고, 이 동물들을 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공원에 살다시피 했다. 놀랍게도 야생토끼는 아주 특별한 소통방식을 가졌다. 그들은 같은 화장실을 쓰며 똥과 오줌으로 소통한다. 이런 화장실을 ‘공중변소’라고 부르는데, 사실 이런 ‘공중변소’는 집단생활을 하는 여러 포유동물의 의사소통 수단이다. 야생토끼는 프랑크푸르트 한복판에서 아주 편안해 보였고, 그 모습이 나의 흥미를 더욱 끌었다. 관광객을 즐겁게 하려는 듯, 이 동물들은 오페라하우스 앞에 혹은 독일 증권가의 고층빌딩 사이에 앉아 있었다. 이 장면은 기이함 그 이상이었기에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왜 야생토끼가 독일의 금융대도시로 왔을까? 사계절 내내 풍성하게 차려지는 식탁, 도시의 따뜻한 기온 혹은 울창한 빌딩 숲의 넉넉한 은신처 때문일까? 연구를 통해 나는 동물의 소통 행동이 도시에서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시골토끼와 도시토끼의 소통 행동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내기 위해 그들의 공중변소 의사소통을 비교해 보았다. 도시토끼와 시골토끼는 혹시 서로 다른 것에 대해 ‘얘기하고’ 그래서 그들의 공중변소가 다르게 배치될까? 약속하건대, 이 질문에 대해서도 앞으로 자세히 다르게 될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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