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줍기
골짜기에는 연못이 두 개 있었다.
아래 연못은 은을 불에 녹여 흩뿌린 듯 반짝이는데, 위쪽 연못은 고요히 산 그림자가 가라앉아 초록이 죽음처럼 깊다.
얼굴이 끈적끈적하다. 뒤돌아보니 헤치며 걸어온 풀숲과 조릿대에 피가 떨어져 있다. 핏방울이 꿈틀거릴 듯하다.
다시, 뜨듯하게 출렁거리며 코피가 밀려나온다.
나는 허둥지둥 면 수건을 코에 쑤셔 넣었다. 반듯이 누웠다.
직사광선은 아니지만 햇살을 받은 초록 뒷면이 눈부시다.
콧구멍 안에서 멈춘 피가 기분 나쁘게 되돌아간다. 숨을 쉬니 근질근질하다.
유지매미가 산 가득 울어 젖힌다. 돌연 화들짝 놀란 듯 참매미가 소리를 내지른다.
바늘 하나만 떨어뜨려도 뭔가 무너져 내릴 듯한 7월의 한낮이다. 나는 꼼짝도 할 수 없다.
땀이 배어 나오는 채 드러누워 있자니, 매미의 소란, 초록의 압박, 흙의 열기, 심장의 고동 따위가 머릿속 초점으로 모여든다. 한데 뭉쳐졌나 싶으면 부옇게 흩어져버린다.
그리고 나는 하늘로 쓱 빨려 올라갈 것 같다.
“도련님! 도련님! 도련님―!”
묘지에서 부르는 소리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장례식 다음 날 오전, 할아버지의 뼈를 주우러 와서 아직 뜨듯한 재를 이리저리 뒤적이는 사이 코피가 뚝뚝 떨이지기에, 나는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띠 수건 끄트머리로 코를 눌러가며 화장터에서 작은 언덕으로 올라왔던 것이다.
부르는 소리에 뛰어 내려간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연못이 기우뚱 흔들리며 사라진다. 지난해의 마른 잎에 미끄러진다.
“도련님은 정말 태평이구먼. 어디 가 있었던겨? 방금 할아버지의 영혼이 올라왔구먼. 한번 보라니께.” 일을 도와주는 할멈이 말한다.
나는 조릿대 숲을 버스럭버스럭 내려가,
“어디?”
코피를 많이 흘린 뒤의 안색과 미끈거리는 수건에 신경을 쓰면서 나는 할멈 곁으로 다가갔다.
감물 먹인 종이를 마구 비벼 구긴 것 같은 손바닥 위 하얀 종이에 놓인 소량의 석회질이 몇 사람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울대뼈인 모양이다. 애써 그렇게 생각하니 사람 모양인 듯 여겨진다.
“방금 겨우 찾아낸겨. 결국 할아버지도 이런 모습이 되었구먼. 유골함에 넣어드리세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 ― 여전히 할아버지는 앞 못 보는 눈에 기쁜 빛을 가득 띠고 내가 돌아오는 대문 소리를 맞아주실 것만 같다. 만난 적도 없는 한 아주머니가 까만색 옷차림으로 서 있는 게 신기하다.
옆에 놓은 단지에 다리며 손, 목 등의 뼈가 어지럽게 가득 들어 있다.
울타리도 덮개도 없이 기다랗게 구멍을 팠을 뿐인 화장터다.
타다 남은 불쏘시개의 열기가 독하다.
“자, 묘지로 가요. 여긴 이상한 냄새가 나고 햇빛이 노래요.”
어질어질한 머리와 또다시 흘어내릴 듯한 코피가 염려되어 나는 말했다.
뒤돌아보니, 일을 돕는 남자가 뼈단지를 안고 따라온다. 화장터에는 재가 그대로 남아 있고, 어제 장례식 분향 후에 사람들이 모여 앉았던 멍석도 그대로다. 은박지를 바른 대나무도 그대로 우뚝 서 있다.
역시나 할아버지도 간밤의 경야 때, 푸른 화염의 도깨비불이 되어 신사의 지붕에서 날아올라 격리 병원의 병실을 흘러 마을 하늘에 이상한 냄새를 풍기며 갔다고 한다. 무덤으로 가는 길에 나는 그런 소문을 떠올렸다.
우리 집 묘는 마을 묘지와는 다른 곳에 있다. 화장터는 마을 묘지의 한쪽 구석에 있다.
돌탑이 늘어선 우리 집 묘에 왔다.
나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냅다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호흡하고 싶었다.
골짜기에서 물을 퍼 담아 온 큼직한 구리 주전자를 내려놓으며,
“주인님의 유언이니께, 가장 오래된 조상님 비석 아래 묻어드리게.”
할멈이 말했다. 유언이라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할멈의 두 아들이 다른 일꾼을 앞지르듯 가장 높은 곳의 오래된 비석을 넘어뜨리고 그 아래를 파헤쳤다.
상당히 깊은 구멍인가 보다. 뼈단지가 깊숙이 내려지는 소리가 났다.
죽은 후에 저런 석회질을 조상님 터에 넣어둔들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 잊혀가는 삶.
비석이 원래대로 섰다.
“자, 도련님, 작별하세요.”
할멈은 작은 비석에 좔좔 물을 끼얹었다.
선향이 타는데도 강한 햇살에 피어오르는 연기의 그림자가 없다. 꽃이 시들어 있다.
모두 눈을 감고 합장한다.
나는 사람들의 누런 얼굴을 바라보다 다시 머리가 어질해졌다.
할아버지의 삶 ― 죽음.
나는 용수철을 단 듯 힘껏 오른손을 흔들어보았다. 달각달각 뼈 소리가 난다. 작은 뼈단지를 들고 있다.
주인님은 참 애석한 분이셨다. 집안에 큰 도움을 주신 어른이셨다. 마을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 이야기. 그만했으면 좋겠다. 슬퍼하는 건 나뿐일 테지.
집에 남은 사람들도 할아버지를 여의고 외톨이인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동정하는 마음속에 호기심이 섞여 있는 듯이 여겨진다.
툭 하고 복숭아가 떨어졌다. 발치에 굴러왔다. 묘에서 돌아갈 때는 복숭아밭 산자락을 돌아서 간다.
이 글은 내가 세는 나이로 열여섯 살 때 일어난 일을 열여덟 살1915 때 쓴 것이다. 지금 문장을 다소 다듬으면서 베껴 써보았다. 나로서는 열여덟 살 때의 것을 쉰한 살에 베껴 쓰는 일이 꽤 흥미롭다.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할아버지의 죽음은 5월 24일이었다. 그러나 이 「뼈 줍기」는 7월로 되어 있다. 이러한 각색은 보인다.
신초샤新潮社에서 발행된 「문장일기」에 쓰여 있지만 중간에 한 장이 찢겨 사라졌다. “타다 남은 불쏘시개의 열기가 독하다”와 “자, 묘지로 가요……” 사이에 일기장 두 페이지 분량의 누락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누락된 채로 베껴 써두었다.
이 「뼈 줍기」 앞에는 「고향에게」라는 글이 있다. 할아버지와 살았던 마을을 ‘너’라고 부르며 중학교 기숙사에서 보낸 편지 형식인데, 그저 유치한 감상이다.
이 「고향에게」에서 「뼈 줍기」와 관련된 부분을 조금 뽑아준다.
…… 그토록 네게 굳게 맹세한 나였는데, 얼마 전 숙부네 집에서 나는 집을 파는 걸 허락했다.
또한 너는 요전에 광에서 커다란 궤짝이며 옷장이 장사꾼 손에 넘어가는 걸 보았으리라.
내가 너를 떠난 뒤 우리 집은 가난한 떠돌이의 거처가 되고, 그 아내가 류머티즘으로 죽은 다음에는 이웃집 광인을 가두는 감옥으로 사용된다고 들었다.
광 속의 물건들은 시나브로 하나씩 도둑을 맞고, 묘가 있는 산은 둘레가 점점 깎여나가면서 인접한 복숭아밭 땅으로 들어가고, 할아버지의 3주기도 다가왔건만 불단의 위패는 쥐 오줌에 젖어 나뒹굴고 있겠지.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