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자리
스스로 속지 않겠다는 마음이 산을 보는 마음이라면
스스로 비우겠다는 마음이 물을 보는 마음일 거라 생각 는데
들을 보는 마음이 산도 물도 아닌 것이 참으로 좋다
살아 있는 서명 같고
말의 축포 같은
참 그것은
너무 많은 마음이니
붉은 꽃처럼 뜨거운 시절을
붉게 피어 견딘다
서로가 견딘 자리는 크다
제각기 자기 색깔
세상의 바람 중에
솔바람만큼 영원한 초록이 있을까
사람의 일 중에
진실만큼 짙은 호소력이 있을까
세상의 말 중에
거짓말만큼 새빨간 속임수가 있을까
사람의 감정 중에
우울만큼 깊은 우물이 있을까
사람의 사랑 중에
옛사랑만큼 희미한 그림자가 있을까
세상의 사람 중에
시인만큼 변화무쌍한 계절이 있을까
세상의 시詩 중에
고독만큼 자신을 고립치로 만드는 성지聖地가 있을까
제각기 자기 색깔
제각기 자작自作 나무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
마음 끝이 벼랑이거나
하루가 지루할 때마다
바람이라도 한바탕 쏟아지기를 바랄 때가 있다
자기만의 지붕을 갖고 싶어서
우산을 만들었다는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후박잎을 우산처럼 쓰고 비바람 속을 걸어가던 네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별명이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 랭보를 생각할 때마다
바람은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서로 부르며 손짓하는 것이라던
절절한 구절을 옮겨 적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라고 다른 얼굴을 할 때마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던 죽은 시인의 시를 중얼거릴 때가 있다
여러번 내가 나를 얻지 못해 바람을 맞을 때마다
바람 속에 얼굴을 묻고 오래 일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이 세상 어디에 꽃처럼 피우는 바람이 있다면
바람에도 방향이 있고 그 속에도 뼈가 있다고 말할 것이다
바람 소리든 울음소리든 소리는 존재의 울림이니까
쌓아도 쌓아도 그 소리는 탑이 될 수 없으니까
바람이여
우리가 함께 가벼워도 되겠습니까
오늘 밤에도 산 위로 바람 부니
비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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