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있는 것 같다
산에 가 돌을 모아 탑을 쌓고 서원誓願을 했다.
돌도 나를 모르고 나도
돌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게 돌에다 한 것인지
내가 나에게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탑을 쌓은 나와
탑을 쌓기 전의 내가 다르듯
탑이 된 돌들도 이미
그전의 돌은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서로 남은 아니었다.
그곳이 산천이거나 떠도는 허공이거나
우리가 무엇으로든
치성을 드리고 적공을 하면
짐승들도 함부로 하지 않고
비바람도 어려워하는 것 같았는데
산에 가 돌로 탑을 쌓고 서원을 했다.
돌도 돈만은 아니었고
나도 나만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와 나 사이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
오래된 일
아주 오래전 일이다.
세상에 온 지 얼마 안 돼 숨을 놓은 조카를
형님이 안고 나는 삽을 들고 따라갔다.
아직 이름도 얻지 못한 그애를 새벽 솔밭에 묻고
여우들이 못 덤비게 돌멩이를 얹어놓고 온 적이 있었다.
내가 사람으로 살며 한 일 중
가장 안 잊히는 일이다.
밤길
밤길을 간다
어려서는 어머니 등에 업혀 이 길을 갔고
아비가 되어서는 어린 자식 업고 가던 길
오늘은 혼자 간다
나 들으라고 노래하며 간다
이 길을 가며 때로는
몰래 뒤를 밟는다는 짐승이나
시커먼 어둠도 두려웠지만
언제나 무서운 건 사람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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