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무이, 어무이. 나 아안 가아. 아아안 가.”
오랜만에 듣는 거북이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창문을 열고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119 구급대 두 명이 발버둥 치는 거북이 아저씨를 양쪽에서 잡고 게걸음으로 골목을 나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지나기도 버거운 좁은 골목에서 버둥거리는 아저씨를 데리고 가는 구급대원들이 몹시 힘겨워 보였다. 거북이 아저씨의 낡은 판잣집 앞에는 여든이 훨씬 넘은 그의 어머니가 숱이 얼마 남지 않은 흰머리를 떨리는 손으로 계속 쓸어 올리며 서 있었다. 어렸을 때는 거북이 아저씨가 술에 취해 큰길가에 누워 있거나 억지로 승합차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가는 것을 자주 보았다. 거북이 아저씨가 막걸리를 마시고 리코더를 불며 도로 한가운데를 위태롭게 걸으면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떠올랐다. 그러나 아저씨 뒤로는 쥐도, 아이들도 따르지 않았다. 혼자 비틀비틀 걷는 아저씨가 외로워 보여 가끔씩 나 혼자 아저씨를 따라가다 엄마한테 혼이 났다. 거북이 아저씨를 데리고 나갔던 구급대가 다시 골목으로 들어오더니 이번에는 할머니를 데려갔다. 할머니는 구급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순순히 골목을 나섰다.
“엄마, 엄마. 이상해. 구급대 아저씨들이 거북이 아저씨네 할머니까지 데려가는데?”
엄마는 주방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오늘 두 분 다 요양원으로 가셔.”
“할머니는 왜?”
“치매가 심해지셨어. 며칠 전에 할머니가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잊어버리셔서 불날 뻔했어. 그래서 할머니는 치매 요양 병원으로, 아저씨는 정신 요양원으로 가. 그동안 통장님이랑 주민 센터 사회 복지사랑 애 많이 썼어.”
“그럼 이제 다시 못 오시겠네?”
“그렇겠지.”
“거북이 아저씨네도 빈집 돼?”
엄마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우리 빌라 뒷골목의 건물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큰 화재로 집이 여러 채가 전소되어 구청에서 이재민들을 위해 지어 준 임시 주택이다. 불나기 전에는 일제 강점기 때 지은 조선 기계 제작소의 줄사택이 있었다고 한다. 불이 난 줄사택을 철거하고 시멘트 블록과 합판으로 대충 지었던 집은 30년이 지나도록 임시 주택이 아닌 주택으로 건재했다.
재개발 얘기가 그치지 않던 우리 동네는 몇 년 전 현지 개량 방식으로 재개발이 결정됐다. 덕분에 30년 된 가건물 역시 일제 강점기 병참 기지의 흔적과 함께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다. 혹시 아파트라도 생길까 기다리던 일부 주민은 실망했지만 다른 곳으로 이주할 능력이 없던 주민들은 시의 결정을 반겼다. 시에서 근현대 역사가 살아 있는 마을 공동체를 되살린다며 동네 곳곳에 ‘마을 골목과 공동체 살리기 운동’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걸었다. 시에서 낸 보도 자료를 그대로 베낀 언론들은 “은강구의 대표적인 쪽방촌인 은강동이 주민이 주도하는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어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게 되었다.”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시에서는 공동체 살리기에 함께할 주민 대표를 구성했는데 은강 인터넷 신문의 객원 기자인 아빠도 거기에 초대받았다. 아빠는 나름의 책임감을 느끼고 동네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공동체 건축 전문가와 도시 계획 전문가 들도 만났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 맞는 개발 기획안을 가지고 호기롭게 마을 협의체에 나갔다. 그러나 회의가 있는 날이면 늘 화가 잔뜩 나서 돌아왔다. 하루는 침울한 얼굴로 엄마에게 말했다.
“협의회에 그만 나가야겠어. 민관 협력 사업이라더니 우리는 그냥 꼭두각시야. 시랑 구에서 계획한 걸 브리핑하지 주민들의 의견을 묻지 않아. 마을 공동체를 살린다면서 기껏 내놓는 안이 강이네 동네 쪽에다 문학관이니, 북 카페, 게스트하우스 그런 걸 만들고, 장모님네 동네에다 임대 주택을 몰아넣겠다는 거야.”
“뭐야? 이미 계획을 다 세워 놨던 거야?”
“그런 거 같아. 내가 골목을 지키고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우리 동네 골목을 그대로 두고 임대 주택을 아랫동네, 윗동네로 나눠서 짓는 게 좋다고 그랬지. 저소득층을 위한 3평, 5평 짜리는 우리 동네에 맞지 않는다고. 노인들이 많다고 해도 여기는 다 가족 단위로 산다고. 근데 이 인간들은 우리 동네를 굳이 쪽방촌이라고 하면서 자기들 생각을 고집하는 거야.”
엄마가 씁쓸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의심스러웠어. 주민 협의체 대표들을 자기들이 뽑는 게 어디 있어? 그 사람들은 당신도 구색 맞추려고 데려간 거야.”
아빠가 주민 협의체를 나온 지 2년이 지나 엄마가 태어나 자랐던 윗동네 판잣집이 헐리고, 4층짜리 임대 주택 세 동이 들어섰다. 줄사택이 모여 있던 아랫동네를 일제 강점기부터 경제 개발기로 이어지는 근현대 시간 여행지로 만들려던 계획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윗동네와 아랫동네 사이에 있던 집 몇 채를 헐어 은강자립복지관을 세우고 주차장도 만들었다. 강이네 옆으로는 집을 몇 채 허물고 굴 가공 공장을 세웠다. 겉으로 보면 동네가 많이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윗동네에 들어선 임대 주택에 원래 살던 주민들은 몇 가구 들어가지 않았다. 나머지는 보상금만 받고 다른 데로 이사를 갔다. 임대 주택은 주변 집들에 비하면 깔끔하고 번듯했지만 평수가 워낙 작아 가족이 살기에는 좁았다. 마을주민의 자립을 도울 거라고 떠들썩하게 홍보하던 굴 가공 공장은 생각보다 잘 안되는 것 같고, 그나마 복지관에서는 혼자 사는 노인을 위한 사업들을 벌였다.
“이제 저 빈집에 들어와 살 사람들은 없겠지?”
거북이 아저씨네 골목을 내려다보며 묻자 엄마는 아까보다 더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서 아침이나 먹어. 늦겠다.”
나는 엄마가 해 놓은 토스트와 요구르트로 아침을 때우고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멨다. 고3이 된 뒤로 등교 시간이 한 시간이나 빨라져서 아침마다 지각을 할까 봐 종종거려야 한다.
“지우야, 오늘 꽃샘추위래. 패딩 입고 가.”
“패딩 더러운데.”
“그럼 겨울에 드라이클리닝 해 왔던 코트 입어.”
옷장으로 쓰는 조립식 옷걸이에서 급하게 코트를 꺼냈는데 오른쪽 소매에 푸르데데한 곰팡이가 묻어 있었다.
“엄마, 코트에 곰팡이 슬었어.”
“또? 작년 가을에 방수 공사 했는데 왜 또 그러지? 겨울에 얼었던 데가 녹아서 그런가?”
“내가 어떻게 알아. 아, 진짜 짜증 나.”
내 방의 곰팡이는 한두 해 일이 아니지만 지난해에 빌라 전체 방수 공사를 한 터라 올봄에는 안심하고 있었다. 도배와 방수 공사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엄마 아빠가 입주하던 날부터 개미 떼가 사방에서 출몰했다는데 그게 부실 공사의 징후였단다. 그런데 그 책임을 물을 데가 없다. 빌라를 지은 건축업자는 우리가 입주한 지 한 달 만에 부도를 내고 감옥에 들어갔고 그걸로 끝이었다.
“쌀쌀한데 언니 옷이라도 입고 가.”
“언니 옷이 나한테 맞아?”
나는 언니 옷을 건네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집을 나섰다. 빌라 현관을 나오니 생각보다 날이 꽤 쌀쌀했다. 언니 옷이라도 걸치고 나올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길 건너 아파트 앞은 중·고등학생들과 출근하는 어른들로 붐볐다. 버스 정류장에 딸린 전광판이 마을버스가 오려면 아직 10분이나 남았다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버스를 탈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걷기로 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