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펼치며
공부하는 교사를 위하여
교사는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전문가다. 가르치는 일에는 수업을 비롯하여 생활지도를 포함한 모든 교육활동이 들어 있다. 교육의 효과는 곧바로 눈에 보이게 나타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서서히 은연중에 학습자의 삶에 깃든다. 교과지식을 주고받는 것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 편에서 교사의 말과 글, 행위는 또 다른 학습교재가 된다. 기본적으로 교사들은 더 잘 가르치기 위하여 노력한다. 전문성, 사명감, 소양 등 교사의 자질을 결정하는 모든 요소는 ‘더 잘 가르치는 능력’을 향한다. 이를 위해 많은 교사들이 필요한 교육을 받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한마디로 교사들에게는 더 잘 가르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있다.
그런데 더 잘 가르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진지하게 이 질문을 생각해보니 딱 맞는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질문을 살짝 바꿔서 더 잘 가르치기 위해 교사가 해야 할 일을 살펴보자. 지금 당장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검증된 교수자료를 구하는 일일 것이다. 또한 선호하는 수업기법을 익히기 위해 연수 프로그램을 수강할 수도 있고, 학급운영과 생활지도에 대한 방법과 매뉴얼을 찾아 적용할 수도 있다. 최근 들어 감염병 사태에 따른 원격수업의 확대는 교사들에게 온라인 네트워크 환경에서 디지털 학습자원을 능숙하게 다룰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교사들의 노력을 낱낱이 늘어놓아도 잘 가르친다는 일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중략)
첫 번째 책
교사, 교육적 상황과
맥락의 창조자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
막스 반 매넌 지음 | 정광순·김선영 옮김 | 학지사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가르침의 교육현상학적 이해》(고요한 지음 | 학지사 | 2013)
《상상의 나래 펴기》(맥신 그린 지음 | 문승호 옮김 | 박영스토리 | 2019)
《교육적 상상력》(앨리엇 아이즈너 지음 | 이해명 옮김 | 단국대학교출판부 | 1999)
《교육은 자기 교육이다》(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지음 | 손승남 옮김 | 동문선 | 2004)
교육이란 ‘무엇’인지, ‘왜’ 교육을 하는지,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이런 질문들에 진지하게 답해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들은 차례로 교육내용, 교육철학, 교육과정의 이유를 묻고 있다. 물론 이런 질문들에 성실하게 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교육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가르치는 자가 의도한 대로 진행되기도 하고, 때로는 가르치고 배우는 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경험이나 지식이 획득되기도 한다.
교·사대에서 4년 동안 공부한 예비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다는 징표로 교원자격증을 받는다. 가르치는 자의 전문성을 국가가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처음 교단에 서는 교사는 아이들 앞에서 당황한다. 이제껏 공부한 교육의 철학적·사회적·심리적 기초는 머릿속에서만 뱅뱅 맴돌 뿐 정작 교실 안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국가가 인정한 자격증을 소지했고 거기에 임용시험 공부를 추가로 했음에도 실제 교육현장은 교과서 속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세계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교직에 몸담은 시간이 길어도 마찬가지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교과서대로, 내가 의도한 대로, 교육과정 문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교사들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이상적 공간으로 학교와 교실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촘촘한 교수학습 절차가 그대로 진행된다면 학습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교단에 섰을지도 모른다. 맥신 그린maxine Greene은 《상상의 나래 펴기》에서 가장 사려 깊고 비판적 의식이 수반된 도발적인 교실이란, 교사와 학습자가 자신들의 삶의 맥락에 근거하여 협력적으로 탐색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려 깊음, 비판적 의식을 수반하는 도발적 교실, 삶의 맥락, 협력적 탐색과 같은 말들은 교·사대 교육 과정에서도,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노량진 학원가에서도 익숙하게 듣던 말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교·사대 교육 과정에서도,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노량진 학원가에서도 익숙하게 듣던 말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교·사대 교육과정이 학습과 삶의 연계와 맥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타당하다.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The Tone of Teaching를 쓴 막스 반 매넌Max van Manen은 교사들이 이 같은 당황스러움을 잘 이해한 학자다. 반 매넌은 교육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통해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교육의 질적 속성에 주목하였다. 책은 번역본 기준으로 140여 쪽에 불과하지만, 저자 특유의 쉽고 친절한 언어로 가르침의 의미에 다가서고 있다.
첫 장인 ‘교육적인 고민’에서 반 매넌은 교육자, 심리학자, 부모와 관련된 예화를 들고, 그것으로부터 교육적 의미를 탐색한다. 달리 해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쉬운 접근이다. 만약 현상학이 어떠니, 해석학이 어떠니 하면서 학술적 접근으로 시작했다면, 이 책은 대다수 평범한 교사들의 마음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는 현상학을 다루면서도 판단중지나 본질직관, 이해와 해석 등 어려운 개념들로 접근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육의 상황과 맥락 속에는 교육이론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접목되어 있다. 이론은 실제를 만나 그 의미를 획득한다. 실제는 이론의 검증을 받을 때 더 생생하게 살아난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다. 난해한 이론적 전개를 피하면서도 생생한 사례를 통하여 저자와 독자가 교감하는 중에 행간마다 숨어 있는 이론의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교사들의 공부 여정에 시동을 걸어줄 첫 책으로 반 매넌의 책을 주저 없이 선택했다.
이 책을 읽을 때내 한 번은 통독하고, 다시 읽을 때는 밑줄을 그으며 음미하고, 그러고는 눈에 잘 띄는 곳에 책을 두고, 생각날 때마다 아무 곳이나 펼쳐 읽으면 좋겠다. 아울러 동료들과 책에 대한 느낌을 나눠도 좋겠다. 대화를 통해 공감하고, 그중 몇몇을 실천으로 옮긴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많은 부분은 대화 그 자체로 남겠지만, 공부란 본디 그런 것이다. 세밀하게 목표를 세우고, 하루에 읽어야 할 분량을 정하는 따위의 생각은 잠시 밀어두어도 좋다.
교육의 상황과 맥락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를 읽기 시작한 독자들은 먼저 반 매넌이 던지는 도발적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당신은 아이들 앞에 어떤 교사로 설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이 질문에 ‘교사가 아이들 앞에 교사로 서지, 달리 무엇으로 선단 말인가?’라고 되물을지 모른다. 물론 단지 직업인으로서 교사가 하는 일을 묻는 것이라면, 애초에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서문에서 역자는 반 매넌의 말을 빌려 교사의 역할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교사는 어떤 상황을 교육적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고, 그가 처한 상황에서 교육할 수 있어야 하고, 그로 인해 학생이 뭔가를 배울 수 있게 해야 하는 사람이다.(6쪽)
교사와 학생 사이에 놓인 상황은 늘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때의 상황이란 말 그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 사이에 놓인 특별한 장면이다. 이 상황에 교육적 의미를 부여하고 배움의 장으로 끌어오며, 그것을 아이와 연결하는 사람이 바로 교사다. ‘상황을 교육적으로 만든다’라는 말은 단순히 주어진 교재에 따라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배움의 장에 형성된 상황과 맥락을 교육적으로 이해하고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적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는 이 책 전반에 걸쳐 흐르는 반 매넌의 철학이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반 매넌은 교육상황을 현상학과 해석학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한 학자다. 현상학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진리를 엄밀하게 나타내기 위해 현상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려는 학문이며, 해석학은 텍스트나 언어 등을 해석하고 이해하여 그것들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이나 의미를 밝히는 데 관심을 두는 학문이다. 현상학이 어떤 현상을 선입견이나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기술하려고 한다면, 해석학은 텍스트를 비롯한 다양한 대상으로부터 의미를 밝혀내기 위한 이해와 해석의 과정을 중시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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