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뜬눈으로 영상 지우며
여자는 날마다 죽었다
일상이 지옥이 되는 디지털 성범죄
여자아이의 치마를 들추고, 몰래 여자 화장실을 훔쳐보고, 그에 관해 소문내는 것은 남자아이들이 별다른 제재 없이 즐기던 유희다. 조금 커서는 함께 모여 음란비디오를 돌려 보고, 자기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군대에 가서는 이를 아침저녁 나누는 대화의 소재로, 문화로 함께 향유한다. 이렇게 성장한 남자아이들의 몸속에서는 여자를 훔쳐보고, 마음대로 찍고, 돌려 보고자 하는 욕망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잠복해 있다가 발화하는 것만 같다.
치마가 들춰지고, 마음대로 볼일도 못 보고, 남자 아이들의 잘못으로 소문에 오르내려도 ‘행실 잘하라’며 오히려 혼나던 여자아이들이 자라나, 남자 사진을 촬영해 유포하거나 남자로부터 당한 일을 그대로 되갚자며 똑같이 하려고 하거나, 혹은 하고 있다. 이른바 ‘미러링’이다. 여자들이 미러링하는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은데, 내 눈에는 싫어하는 벌레가 온몸에 잔뜩 들어붙었는데 이를 떼어내지 못해 몸부림치는 고통으로 느껴진다. 내 눈에 미러링은 여성의 비명이다.
2018년 5월 12일 홍익대학교 크로키 수업 중 남성 누드모델의 나체 사진을 동료 여성모델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유포한 사건인, 일명 ‘홍대 남자모델 불법촬영 유포 사건’이 터졌다. 경찰은 신속하게 대응해 범인을 체포하고 법원은 범죄에 걸맞게 징역형을 선고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는 칭송을 받기는커녕 여성들의 분노만 키웠다. 사진을 유포한 여성모델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신속하게 구속되었는데, 여성이 피해자인 동종 사건에서는 경찰이 왜 그동안 가해자 검거에 미온적인 대응을 보여온 것이냐며 엄청난 비판이 일었다. 2018년 5월 19일 1만여 명의 여성들이 서울 대학로에 빨간 옷을 입고 모였다. “남성이 피해자인 홍대 사건의 경우 이례적으로 빠르고 적극적으로 수사가 이뤄졌지만, 여성이 피해자인 수많은 불법촬영 사건에 대해서는 그간 경찰이 노출 정도, 외모 등을 언급하며 2차 가해까지 서슴지 않고 신고조차 받지 않았다. 경찰의 행태에 분노한다”고 외쳤다. 이 외침은 계속 커져, 2차 시위에는 약 4만 5,000명, 3차 시위는 6만 명, 4차 시위는 7만 명주최 쪽 추산이 모였다. 100년 만에 찾아왔다는 폭염도 막지 못한 외침이었다.
경찰이 “성별에 의한 편파수사가 아니다. 사건의 특수성 때문에 빨리 체포한 것이다”라고 해명하는 와중에, 어떤 이들은 ‘남자가 피해자면 범인을 잡지 말라는 거냐’는 등 불편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세상 돌아가는 본새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일부 있을 수도 있겠다고 넘겨버리기에는 소리가 너무 크다. 저들은 마치 남자들만의 이어도에서 살아온 사람들만 같다. 국내 최대의 ‘음란물’ 사이트이자 온라인 성범죄의 온상으로 악명 높던 소라넷이 폐쇄되는 데 17년이 걸리고, 피해자가 죽어도 피해자의 얼굴이 나오는 불법 디지털 성범죄 영상은 여전히 웹상을 떠돌며 소비되고 있는 세상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화장실에서 바지조차 내리기 꺼려지고, 내 집에서조차 옷을 여며야 하는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나(너)의 어머니, 누이, 아내, 애인이 살아가고 있다. 그녀들은 남의 상갓집에 와서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집 초상에서, 바로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다.
영상 속 얼굴이 일으킨 슬픔
헤어진 남자친구가 인터넷에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한 피해자의 사건을 맡아 변론한 적이 있다. 그녀는 어느날 직장 동료로부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영상이 있는데 너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를 알고 지내는 다른 지인들로부터도 연락을 받았다. 문제의 영상도 전송받았다. 영상을 보자마자 누가 유포한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해 범인이 체포되고 구속됐지만, 정작 그녀의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그녀를 변론하기 위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영상을 봐야 했다. 내가 보는 것은 슬픈 내용의 영화가 아닌데 그 영상을 보며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영상에서 얼굴이 보이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다.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을 애무하는, 너무도 분명한 그녀. 유포범인 그놈은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그놈은 촬영한 영상 중 자신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 영상만 골랐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던 그녀의 얼굴만큼 내게 큰 슬픔을 준 얼굴은 없었다.
그녀는 매일매일 인터넷을 뒤져 자신의 영상을 삭제하면서 점점 절망해갔다. 매일 다른 이름의 파일로 다시 올라오는 영상, 지워도 지워도 좀비처럼 되살아나 그녀를 산 채로 먹어치우는 영상. 그놈이 영상을 올린 이유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놈은 그녀와 헤어진 뒤에도 심심하면 영상을 꺼내보며 낄낄거리고, 다른 사람과 같이 보기까지 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자신의 여자친구와 싸우고 홧김에 예전 여자친구인 그녀의 영상을 올렸다는 것이다. 한 사람을 파괴하는 일이,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파괴하는 일이 이렇게 이루어진다. 아무 이유 없이, 술김에, 홧김에, 심심해서 등등.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자신이 등장하는 영상을 찾아 지우는 일은 육체적으로 힘듦은 물론 영혼을 파괴하는 일이다. 디지털 장의사를 찾아 맡기려고 해도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냥 자포자기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디지털 세상 속 그녀는 매일 ‘무슨무슨 부인’으로 바뀌어 있다.
그녀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 사람은 그놈의 누나였다. 그놈은 누나가 건사하던 자였는데, 누나는 같은 여자로서 용서를 빌기조차 미안하다면서도 자기 동생을 한 번만 살려달라면서 울며불며 매달렸다. 성범죄 사건을 맡을 때마다, 가해자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비는 사람은 꼭 그들의 어머니이거나 누이였다. 막상 일이 터지면 뒷수습을 하는 것은 그 남자의 혈육인 여자들부친이 나서거나, 형이 나서는 경우는 또 별로 보지 못했다이거나 애인이나 아내 들이다. 불법촬영을 하다 발각된 초등학교 교사의 경우 그 어머니가, 딸과 동반한 단체여행에서 성폭행을 저지른 아버지를 위해서는 그의 딸이 무릎을 꿇었다. 안희정 사건에서도 부인이 안희정 쪽 증인으로 나오지 않았던가. 여자의 도움 없이 살지도 못하면서, 남자만의 이어도에서 살 수도 없으면서, 그들은 끊임없이 여자를 몰래 지켜보고, 돌려 보고, 소비한다.
그녀는 영상 삭제에 드는 비용 등의 현실적인 이유와 피해자 또래이던 그놈 누나의 호소 때문에 결국 얼마간의 합의금을 받고 합의했다. 변호사인 나로서도 실리를 선택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실형을 받는다해도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처벌에 불과할 것이고,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금을 인정받는다 해도 가진 재산 한 푼 없는 그놈에게서 받아낼 길은 멀기만 했기에 합의금으로 들고 온 돈을 받는 선택을 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언제까지 디지털 세상에서 ‘무슨무슨 부인’으로 살아야 할지 기약할 수 없는 그녀에게, 이제는 더 이상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된 그녀에게, 영혼이 파괴된 그녀에게 차마 받으라고 하기에는 미약한 그 합의금을 받으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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