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녀가
되는 곳
그는, 아니, 그녀는 살림의원의 진료실에 올 때마다 뭔가 조그만 선물을 가지고 왔다. 붕어빵이나 땅콩 같은 것들을 들고 왔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직원들과 나눠 먹곤 했다.
사실 시작은 술이었다. 살림의원을 세 번째 찾았을 땐가,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지난번에 원장님이 술 끊으라고 하셨잖아요. 여자가 되더라도 건강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술 이제 끊으려고요. 집에 있는 술 가지고 왔어요. 원장님이 받아주세요.”
“네? 술 끊기로 하신 건 정말 잘하셨어요. 하지만 이 술은 받을 수 없어요.”
“아니에요. 이거 받아주세요. 원장님이 받아주셔야, 뭔가 술을 압수당한 것 같기도 하고(웃음), 그래야 꼭 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술 마시고 싶을 때마다 원장님 생각하면서 끊으려고요.”
검은 비닐봉지 안에 든 것은 초록색 소주 두병과 고량주 한 병이었다. 정말로 집에 있었음직한 술들. 술 끊으시는 데 도움이 된다면야… 나는 마시지도 않는 술을 선물로 받았다.(사실 나는 맥주파다.)
그 뒤로도 간간이 간식 같은 걸 사와서, 애당초 술부터 받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예쁘게 포장된 작은 선물을 하나 가지고 왔다.
“어, 오늘 아직 호르몬 주사 맞을 날 아닌데요? 며칠 일찍 오신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오늘 일부러 일찍 왔어요. 이거 받아주세요”
그녀는 선물을 진료실 책상에 내려놓았고, 나는 크게 손사래를 쳤다.
“아휴, 이런 거 주시면 안 된다니깐요.”
“원장님, 오늘 제 돌이에요. 돌잔치 하는 거예요.”
돌이라는 말을 듣고 어, 싶어서 얼른 차트를 보았다. 딱 1년 전, 그녀가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던 날이다.
“이제 저 여자로 산 지 1년이에요. 그러니까 1년 전에 다시 태어난 셈이죠. 돌인데 누구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스스로 선물하려고 샀어요. 여자 향수예요. 제 거 사면서 원장님 것도 하나 더 샀어요. 원장님도 여자잖아요.”
그렇게 우리 둘 다 여자라고 얘기하면서 수줍게 웃었다. 호르몬 치료를 위해 처음으로 그녀를 만나던 날이 떠올랐다.
그녀는 60대 트랜스여성이었다. 남성의 몸을 가지고 있으나 스스로는 여성이라고 정체화하고 있는 트랜스젠더, 트랜스 여성 그녀는 에스트라디올, 이른바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고 싶다며 찾아왔다.
외국에서는 성별 정체성의 혼란을 주로 겪는 10대 중후반부터 성전환을 위한 상담과 치료가 이뤄지곤 한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는 10대에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는 이들이 극히 드물다. 대부분이 20대,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독립을 하고 난 이후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20~30대에 다소 늦게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는 이들이 많은 한국의 조건을 고려하더라도 60대는 너무 많은 나이였다. 60대에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대개 60대는 이미 호르몬 치료를 하던 트랜스젠더들도 치료를 종결하는 시기이다. 특히 에스트라디올 투여는 혈전증이라는, 피가 혈관 안에서 굳는 위험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는데, 이것이 나이가 들수록 위험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설득하려고 했다. 고령자에 대한 호르몬 치료 가이드라인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런 케이스가 없다, 위험할 수 있다, 남들은 오히려 끝내는 시기다, 나도 솔직히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강고했다. 젊었을 때는 호르몬 치료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남들과 내가 다르다는 걸 알았지만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 모른 채 평생을 남들처럼 살아왔다고, 이제라도 내 삶을 찾고 싶다고 했다. 아내와는 잘 이혼했고 아이들도 다 시집 장가 갔다고, 부작용으로 죽어도 좋으니까 죽을 때 죽더라도 여자로 죽고 싶다고….
나는 울컥했다. 죽을 때라도 여자로 죽고 싶다는 말에 그 어느 의사가 호르몬 치료를 시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전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의사도 권하지 않을 60대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고야 말았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 1년이 지나 ‘돌잔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호르몬 치료 초반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알려진 혈전증과 같은 위험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녀는 행복하게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정기적으로 살림의원을 방문하고 있다.
나는 돌이라는 말에 거절하지 못하고 향수를 받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진지하게 얘기했다.
“이제 이런 거 사오지 마세요. 저 안 받아요. 이런 거 살 돈 조금씩이라도 모으셔야 해요. 돈을 모아서 수술도 하고 성별 정정도 하고 그러셔야죠. 같이 준비해요.”
그녀는 내 얼굴을 뻔히 들여다보았다.
“원장님 저 수술할 생각 없어요. 이 나이에 무슨 수술이래요. 수술 안 받으면 성별도 안 바꿔주는 거 아니까, 성별 못 바뀌는 것도 알아요. 그런 거에 관심 없어요.”
네? 나는 너무 놀랐다. 물론 모든 트랜스젠더가 수술이나 법적 성별 정정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이들도 있고, 정치적 저항의 의미로 수술을 선택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첫날부터 ‘죽을 때 여자로 죽고 싶다’는 얘기를 했기에, 나는 당연히 수술과 성별 정정까지 고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니….
“저, 그럼 호르몬 치료는 왜 계속…?”
“이 세상에서 저를 여자라고 말하고 그렇게 봐주는 곳은 오로지 여기밖에 없어서요. 그래서 죽기 전까지는 여기 계속 오고 싶어요.”
나는 수많은 트랜스젠더를 만난다. 트랜스젠더는 정신 질환의 세계적인 진단 기준이 되는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및통계편람 최신판에서 이미 삭제되었다. 대신 법적으로 지정된 성별과 자기 스스로가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성별이 다른 데서 오는 ‘위화감’을 줄여,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의학의 역할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정의에 따라, 그(녀)들이 좀 더 건강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죽을 때 여자로 죽고 싶다는 소원도 꼭 들어드리고 싶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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