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관리사
1
앨런은 4층 높이의 맨션 앞에 섰다. 손목에 찬 스마트 링 액정 위로 맨션 주소가 한 줄로 흘러 지나갔다.
“여기 맞지?”
혼잣말로 중얼거린 앨런이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고급 저택이었다. 외벽 하나만 봐도 이 집이 얼마나 비싼 건물인지 알 수 있었다. 건물은 태양광 자동조절 유리창으로 매끄럽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 창은 정확히 말해 ‘유리’가 아니었다. 신소재 투명 금속판으로 만들어진 최신 건축 소재였다. 그러니 ‘유리창’이라는 단어는 맞지 않을 테지만 겉으로 봐서는 그저 고급스러운 통유리창으로 보일 뿐이었다.
금속판은 낮에 비치는 햇빛에서 열에너지를 모으고 전기를 생산했다. 그리고 비축해 놓은 열을 밤에 실내 쪽 면으로 발산함으로써 집 안을 따뜻하게 덥혔다. 여름에는 낮에 생산한 전기를 사용해 냉기를 발생시켜 실내를 시원하게 했다. 거기다 자동 명암 시스템으로 창문의 색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는 기능까지 갖추었다.
앨런은 가로 3미터 세로 2.5미터가 넘는 창을 올려다보며 커다랗게 숨을 들이쉬었다. 금속판 한 장 값이 앨런과 아버지가 세 들어 사는 집 보증금보다 더 비싸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마냥 기죽어 쭈뼛거릴 여유는 없었다.
“휴-.”
앨런은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맨션 출입문 앞으로 다가섰다. 옷매무새를 살피고 얼굴을 한 번 쓰다듬었다. 폐쇄회로카메라 밑에 달린 벨이 딩동 하고 울렸다. 동전만 한 원그림이 새겨진 까만 유리판에 앨런의 초조한 얼굴이 어른거렸다. 곧이어 달칵, 소리와 함께 맨션 출입문 잠금장치가 풀렸다. 벨 소리에 응대하는 목소리 따윈 생략된 채였다. 앨런은 머뭇거리다 스르르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섰다. 마치 마법에 걸린 성 안으로 초대된 기분이었다.
맨션은 외양만큼이나 실내 장식도 고급스러웠다. 하얀 가죽 소파는 열 명이 앉아도 넉넉할 만큼 길고 넓었다. 깔끔하다 못해 찬 기운이 흐르는 거실은 텅 빈 냉동고 속처럼 썰렁했다. 하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여기저기 최첨단 인공지능 시스템이 집 안을 움직이고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홀로그램 화면으로는 여섯 개 채널에서 내보내는 뉴스가 동시에 나왔다. 그 아래로 세계 증시와 각국 화폐의 환율이 쉼 없이 흘렀다. 2059년 하반기 세계 경제 동향과 의학 분야 신기술 정보가 그 뒤를 이어 반복적으로 제공되었다.
앨런이 넋을 놓고 서 있는데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이리 와서 앉아요.”
백색 소파에서 한 여자가 손짓을 했다. 앨런이 면접을 볼 집 주인, 이 팀장이었다. 이 팀장은 균형 잡힌 몸매에 흠잡을 데 없는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더불어 몸가짐 하나하나에 당당함이 배어 있었다. 과연 GG그룹 데이터 관리 총괄 3팀을 이끌고 있는 재원다운 풍모였다.
“조 앨런? 어디서 따온 이름이죠?”
이 팀장이 태블릿 속 소개서를 훑어 내리며 물었다.
앨런은 이 팀장의 물음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거실을 두리번거렸다.
이 팀장이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학생! 집 구경은 그만하고 대답 좀 해주시죠?”
화들짝 놀란 앨런이 얼른 대꾸했다.
“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입니다. 컴퓨터의 창시자로 알려진 앨런 튜닝….”
앨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 팀장이 말허리를 자르며 피식 웃었다.
“아-, 그 앨런. 난 또 뭐라고. 하긴 앨런 군이 태어났을 때 한창 유행했었지. 역사적인 컴퓨터 공학자들의 이름을 따서 아기 이름 짓는 거.”
그 말에 앨런 귓가가 살짝 붉어졌다. 자신의 이름이 한순간에 철 지난 유행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인공지능 시스템, 줄여서 AI의 특이점이 온다던 해는 2045년이었다. 그 해를 전후해서 세상 사람들은 기묘한 흥분에 휩싸였다. 인공지능에게 특이점이 오면 5천 년을 헤아리는 인류 문명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예견이 지구를 뒤덮었다. 인간의 사고 능력을 뛰어넘는 프로그래밍 체계에 도달한 인공지능이 세상을 재편할 것이라고 떠들어 댔다. 사람들은 컴퓨터 공학의 무시무시한 발전에 대해 경계심과 경외심을 동시에 드러내며 우왕좌왕했다. 그리고 2045년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공지능에게 특이점은 오지 않았다. 45년에서 15년이나 더 지난 지금도 특이점은 곧 온다, 곧 온다 소문만 무성할 뿐 현실화되진 않았다. 대신 인공지능 컴퓨터 혹은 로봇 시스템이 인간 사회 곳곳에 빠르고 조용히 스며들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삶의 방식이 인공지능 시스템 위주로 재편되었다. 사람들은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변해 가는 세상에 순응해 갈 뿐이었다. 누구도 인공지능의 도움이나 지시 없이 하루를 보내는 건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이 팀장은 태블릿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앨런 군 혹시 난자 기증이에요? 어머니 소개란이 비어 있네.”
앨런이 대답했다.
“어머니가 없다고 해서 성장환경에 부족한 부분이 있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엄마 역할까지 훌륭히 해 주셨으니까요.”
앨런 대답에 이 팀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 물론 그런 이력이 채용에 불리하게 작용하진 않아요.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인간의 출생 방식을 따져 차별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불법이니까. 게다가 요즘엔 복제인간도 수두룩인데 DNA 기증이면 축복이지.”
“아, 예.”
앨런 얼굴에 어색한 웃음이 번졌다. 아무래도 너무 긴장한 탓인 듯했다. 이 팀장은 그런 앨런이 귀엽다는 듯 싱긋 웃고는 제 말을 이어 갔다.
“참 우습네? 사람은 못 알아봐도 개는 알아본다니. 아니, 안드로이드든 사람이든 절 보살피는 데 무슨 상관이라고.”
이 팀장은 자신의 발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얀 털 뭉치처럼 생긴 강아지가 이 팀장의 손바닥을 할짝할짝 핥았다. 견종이 프랜치 비숑이라고 했다.
‘영리하고 활동적이며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수선쟁이.’
이 팀장이 반려동물 관리사 모집 공고를 내며 적어 놓은 문구다. 앨런은 노동청 아르바이트 게시판을 뒤지다 이 공고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화면에 가득 찬 강아지 얼굴과 분홍빛 혀에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곧바로 이 팀장에게 지원서를 냈던 것이다.
“강아지를 키워 본 적이 없는데 용케 아르바이트 자격증을 땄네?”
이 팀장은 의심스럽다는 듯 앨런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저도 모르는 제 특기를 에이아이가 찾아내 준 셈이죠. 그래도 실습 기간 동안 강아지랑 고양이를 돌본 경력은 있습니다.”
앨런은 차근차근 대답하며 준비해 온 개 껌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자, 이리 와봐.”
강아지는 앨런의 손에 들린 개 껌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살짝 윗몸을 일으켰다. 까맣고 반질반질한 코를 개 껌을 향해 벌름거렸다. 그래도 쉽게 앨런 곁으로 오진 않았다. 경계를 하는 것이다. 대신 자기를 향해 만면에 웃음을 띤 낯선 소년의 얼굴을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물론 그 예의 분홍빛 혀는 주둥이에 살짝 삐져나온 채였다.
앨런은 조바심을 내지 않고 다시 한 번 강아지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강아지는 자세를 편안하게 고쳐 앉아 손을 내미는 앨런을 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이기 시작했다. 앨런은 본능처럼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자, 이리 와 봐. 이거 맛있는 거다.”
앨런은 개 껌을 쥔 손을 최대한 낮추며 이 팀장을 쳐다보았다.
“참! 얘 이름이 뭐죠?”
“RP-961.”
“예? 알…?”
앨런이 우물거리자 이 팀장이 까르르 웃었다.
“그냥 알피라고 불러. 방금 건 등록 번호야.”
“아, 예.”
앨런은 갑자기 말을 놓는 이 팀장 말투가 살짝 거슬렸다. 그렇다고 단박에 싫은 내색을 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일거리를 잡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알피가 쿵쿵거리며 앨런 손에 쥐여진 개 껌으로 다가왔다.
“그래. 이거 네 거야. 마음 놓고 씹어 봐.”
앨런이 개 껌을 양탄자 위에 내려놓았다. 강아지가 개 껌을 할짝 할짝 핥기 시작했다. 앨런은 잠깐 알피가 하는 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다가 왼손으로 알피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이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던 이 팀장이 훗, 하고 웃었다.
“신기하네. 나나 홈봇은 아무리 잘해 줘도 으르렁거리기만 하는데.”
앨런이 칭찬이 부끄럽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이 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면 개는 참 신통해. 생명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건 도대체 어떤 감지 체계일까? 인간에게만 복종하게 진화한 동물이라서 그런가?”
이 팀장은 철학적 물음 앞에 선 사색가처럼 진지해졌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오히려 인간이 안드로이드 로봇과 사람을 구별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말이야.”
이 문장은 이 팀장이 워낙 조용히 말한 탓에 앨런 귀에는 닿지 않았다.
앨런이 알피의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모르겠지만, 덕분에 저처럼 재능 없는 사람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다행입니다.”
이 팀장이 손을 내저었다.
“재능이 없다니! 봐봐.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알피랑 단번에 친해진 건 앨런 군이 첨이야. 내가 관리사 면접을 한두 번 본 줄 알아? 경력 십 년의 베테랑이라고 월급 액수만 따지던 사람도 알피가 곁을 안 주는 바람에 물러갔어. 평생 개를 키웠다는 아주머니, 수의사 자격증이 있는 조련사, 강아지 분양만 전문으로 했다는 애견숍 주인도 우리 알피한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니까.”
이 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동안 까탈스럽게 낯가림을 하던 알피의 행적이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피는 어느새 앨런의 무릎 위로 올라앉아 재롱을 피우고 있었다.
“그 난다 긴다 하는 전문가들을 다 제치고 겨우 열여덟 살 아르바이트생이 알피를 길들이다니, 정말 세상일은 모른다니까.”
‘겨우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앨런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앨런이 아르바이트생 자격증을 따기 위해 직업적성 조사 센터에 들락거린 게 다섯 달이 넘었다. 그사이 성격검사, 직업군 역량 조사, 특성 테스트, 사회성 잠재력 검사 끝에 앨런이 할 수 있는 직종이 선별되었다. 그게 바로 반려동물 관리사였다.
(본문 중 일부)
#문학나눔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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