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리언, 한국정치를 통매하다
: 『광장』에서 『화두』까지의 최인훈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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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의 마술 항아리
최인훈崔仁勳, 1936.4.13.~2018.7.23. 문학은 지성의 마술 항아리나 사상의 도깨비 방망이인지라 웬만한 비평가의 해부도로는 분해되지 않는 관념과 상상의 철옹성으로 아스라이 솟아 있는 데다 접근하기 어렵도록 상상의 늪지대로 이뤄진 해자가 둘러싸고 있다. 소설, 드라마, 희곡, 수필, 비평이라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한껏 심미주의적인 외도를 즐길 만큼 문학적 팔방미인인 데다 문사철文史哲의 광역에 걸친 현란한 지적 곡예, 여기에다 한국문단에서는 흔치 않는 남북한 동시 체험자라는 경력까지 가세하여 자칫하면 코끼리 앞에 선 장님이 되기 십상이다.
그의 문학은 민족적, 역사적, 사회적인 우리 시대의 모든 과제들을 분산시켜 암매장하고 있어 어떤 비평가의 입맛도 한껏 돋궈줄 수 있는 미각적 백화점의 진열장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최인훈에 대한 연구는 이런 당대적 현실보다는 관념론과 상상, 미학적 실험성과 철학적 난삽함에 초점을 맞춰 접근하는 게 관례나 유행처럼 굳어져버렸다.
『두만강』, 『광장』, 『회색인』, 『태풍』, 「총독의 소리」, 『화두』 등 일련의 작품에 드러난 너무나 선명한 최인훈의 민족과 역사의식, 정치 이데올로기와의 정면대결 문제는, 이와 다른 한 계열인 『가면고』, 『구운몽』을 비롯한 상당량의 심리주의적 환상기법의 작품에 밀려나 관념소설로 다뤄지기 일쑤다. 예리한 해부도라면 고도의 관념적인 심리주의 소설 속에서도 이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했던 것은 이 시대의 이 나라,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실체와 고뇌, 그리고 지향할 바가 무엇이냐를 고뇌하는 작가적 자세임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중반기 이후 이 작가는 정통적인 창작기법에서 너무나 이탈해 버렸기에 그 기교의 전위적인 혼란 속에서 방황하느라 작가가 제기한 문제를 포착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조갈증이 들곤 한다.
1960년대 후반기 때부터 그에게 붙여진 헤겔리언이란 사상사적인 상표는 관념의 고가판매용으로 지식인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최인훈의 당대의 어느 작가에 뒤지지 않게 민족현실 문제에 골몰했었다. 헤겔리언이란 모호한 사상사적인 약방감초의 위력을 빌려 한창 뻗어가려던 당대의 현실참여문학을 잠재우려 했다는 견해도 있지만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비평적 성찰력이 탁월했던 일부 평평론가들은 그에게 헤겔리언이란 딱지를 달아서는 좌파냐 우파냐라고 각본에 짠 듯한 질문을 함으로써 당대의 비판적 지식인이나 청년 학생들에게 좌경화를 신사적으로 은근히 방역망을 치려는 의도를 십분 달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체 헤겔주의자란 무엇인가. 우파주로 기독교 신봉자와 국가주의자에 좌파혁명가, 거기에다 중도파까지 나누노라면 ‘나는 헤겔리언이다’는 명제는 곧 ‘나는 철학에 관심을 가진 인간이다’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 변증법이란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고 헤겔주의자라 할 수 있을까? 김현은 최인훈을 “좌파의 윤리와 우파의 인식론을 지양할 수는 없는 것일까?”라고 자문하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좌우를 결합시키려는 태도는 기독교적인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비동양적이다. 한국은 기독교적인 이념을 육화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그렇다면? 최인훈은 항상 주저한다. 그가 가설로서 조심스럽게 내세우는 것은 불교적 이념을 통한 좌우의 지양인데, 그것 역시 뚜렷한 것은 아니다. (…중략…) 불교적 이념은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 낡은 인연의 끈을 푼다’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불교에서 이 정도의 정치학밖에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그가 본질적으로 변증법에 심취해 있는 헤겔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좌파인가, 우파인가? 불교적 이념의 정치학이 불가능하다면, 좌우를 밝히는 것이 그의 앞날의 과제가 아닐까? (김현, 「헤겔주의자의 고백」, 김병익·김현 편, 『최인훈』, 도서출판 은애, 1979)
좌우를 결합시키려는 태도를 기독교에서 찾는다든가, 한국이 기독교를 육화할 수 없다는 명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데, 여기에다 최인훈이 뚜렷하지는 않으나 “불교적 이념을 통한 좌우의 지양”을 가설로 삼았다는 구절 역시 탁견이면서도 더 많은 유추를 갖도록 유도한다. 그럼에도 김현의 지적 중 “불교적 이념의 정치학이 불가능하다면, 좌우를 밝히는 것이 그의 앞날의 과제가 아닐까?”라는 대목 역시 김현의 탁견이면서도 행여나 분단 시대의 지성적 판 가르기 식 타성의 속내 드러내기로 최인훈을 우파로 편입시키려는 의도로 읽히기도 한다.
이렇게 이념적인 분수령 만들기에 열중하기보다는 차라리 민족 수난사를 대입하면 최인훈의 또 다른 한 단면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일어난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선입견을 가진 심판의 자리에서 내려와 역사 앞에 겸허하게 최인훈이 민족 현실문제를 어떻게 보았으며 그게 오히려 좌우파의 선 긋기가 아닌 인류 보편사로서의 인문주의적인 작가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최인훈은 철학자가 아니라 문학인이다. 아무리 현란한 지적 상상력으로 사상적 주택을 지었어도 그 실체는 철학의 영역이 아니라 문학이며, 그래서 차라리 훨씬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그 현실은 민족사적 실체와 대응하는 것이지 이를 굳이 철학적 관념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을까.
최인훈을 역사의 ‘구경꾼’적인 헤겔리언으로 몰아가는 입장은 묘하게도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전개하는 논리적 구조가 마치 조봉암의 판결문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판결은 사형이면서 그 논지에서는 뚜렷한 죄상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아서 방청객들로 하여금 실었구나란 착각을 일으킨 글로 알려진 조봉암의 판결문처럼, 최인훈에 대한 너무나 진지하고 심도 있는 철학적 위상 논구는 혼미의 연속으로 보인다. 우리 시대 최고의 한 문학인의 사상적 궤적을 해명해 주기보다는 미로의 속을 헤매는 듯하다.
이렇게 쓰고 있는 저자 역시 분단 시대라는 지성적 대기권 안에 갇힌 채 객관적이라는 마취제를 동원하여 왜소한 소 지식인임을 부인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을 버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꼭 써야겠다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데는 작가 최인훈에 대한 경의의 염과 감사를 드려야 할 인연 때문이다. 20대 중반에 평론가로 등단했던 초라한 내 지성적 자화상의 이력서에서 그의 영향은 가히 스승의 위치를 넘어서는 사상적 사부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이 글은 「GREY 구락부 전말기」(1959)를 읽고 홀딱 반했던 고교 3학년 때부터 1973년 최인훈이 제1차로 도미하기 전후까지 저자가 그를 선망하면서 얽혀들었던 인연을 중심삼아 본격적인 평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에세이 식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본문 중 일부)
#문학나눔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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