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는 개를 데려온 여자가 카페를 떠난 뒤에도 한동안 야외 테라스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비는 30분 전에 그쳤고, 사람들은 접은 우산을 흔들며 인도를 지나갔다.
여자가 놓고 간 플라스틱 케이지에서 닥스훈트가 하품을 했다. 개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닥스훈트가 까불거리는 견종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케이지 철망 안쪽에 녹아내릴 듯 늘어져 있는 흑갈색 네발 생물은 지나치게 차분해서 마치 뒤늦게 철이 든 삼촌 같았다.
납치 아니에요. 여자는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중학생 딸이 영어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개가 먼저 다가왔다는 것이었다. 딸은 가방에 비상식량으로 챙겨뒀던 간식용 소시지를 먹이고 개를 안아서 집으로 데려갔다. 지금은 학원도 빠지고 침대에 엎드려 계속 울고만 있다고 했다.
여자는 우리가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이 아이, 카일리와 계속 같이 지낼 생각이었다고 했다. 솔직히 둘만 사는 집에 개 한 마리 있으면 위로가 되니까요. 통하는 데도 많고. 좋은 데서 잘 자란 아이라고 내심 짐작은 했어요. 털 관리된 걸 봐도 그렇고. 자존심도 있고.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됐으니까요. 좋은 건 원래 오래 머물지 않잖아요. 여자가 거칠고 통통한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안녕. 가서도 잘 지내.
개는 고개를 처박은 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노아는 의뢰인 측 대리인과 전화로 협상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전직 고등법원 판사인 늙은 변호사로, 전관답게 고압적이고 늙은이답게 꼬장꼬장했다. 사무실에서 노아와 상담하는 동안 이 건은 비밀이라며 한참 윽박을 지르다가 선대 회장님과의 인연이 아무리 깊다 한들 이 나이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에 휘말리는 마음을 누가 이해하겠냐고 탄식했는데, 지금은 협상은 무슨 얼어죽을 협상이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중이었다. 노아가 전화기에서 귀를 슬쩍 떼고 내게 쓴웃음을 지었다. 휴대폰 내장 스피커에서 고함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빌딩 사이로 저무는 해에서 번져나온 불그스름한 빛이 노아의 둥글고 매끈한 정수리와 깡마른 손등에 내려앉았다.
“천천히 출발하죠.”
노아가 전화를 끊고 말했다.
“저희 조건이 이행되면 연락을 주겠답니다. 견주께서도 진정제 약효가 덜 빠지신 모양이고요. 멀쩡한 정신으로 카일리를 마중하고 싶으신가 네요.”
노아가 커피를 홀짝였다. 닥스훈트가 하품을 하고 앞발로 귀를 긁었다. 당시 나는 그의 ‘파트너’로 막 일을 시작한 참이었고, 노아가 개를 어떻게 찾았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잃어버린 개를 찾기란 어렵다. 인식표도 달려 있지 않은 조그만 흑갈색 개가 한밤중에 사람 눈을 피해 밖으로 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적어도 예닐곱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아차리게 된다면 더 그렇다. 그쯤 되면 필요한 건 기적과 요행이다. 개장수의 손아귀에 떨어지거나 강아지 공장에 갇혀 있지만 않길 바라게 된다. 하지만 노아는 자기 책상서랍에서 연필을 꺼내듯 손쉽게 개를 찾아냈고, 우리는 전날 밤 모녀가 사는 비좁은 반지하방을 방문하여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물론 요령을 배우기는 했다. 노아의 설명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것들을 끌어들이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공중에 펼친 천에 묵직한 쇠공을 올려놓은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노아는 말했다. 쇠공이 놓인 부분이 아래로 내려앉으면서 공을 중심으로 하는 경사가 생기고, 쇠공 주변의 다른 작은 공들이 경사를 따라 중심을 향해 굴러가는 광경을 떠올려보라고도 했다. 그게 중력의 원리죠. 노아가 설명했다. 우주는 넓은 천이고, 별들은 중력에 의해 움직입니다. 우리는 우주의 일부이고요. 그러니 우주의 법칙을 따르면 됩니다. 경사를 따라가면 돼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문제의 핵심에 다다를 수 있죠.
배우고 나니 더 혼란스러워지는 요령이었다.
30분쯤 뒤 노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가 문자를 확인하고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잘 처리됐습니다. 슬슬 가보죠. 일 끝나고 저녁 같이 먹을까요? 인도 카레가 기막힌 데가 있어요. 저번에 갔을 때…….”
“싫어.”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케이지를 쳐다보았다. 흰 양말에 슬리퍼를 신고 테라스 옆을 지나가던 여중생들이 까르르 웃었다.
“방금 뭐라고 했나요, 카일리?”
노아가 부드럽게 말했다. 케이지에서 다시 목소리가 나왔다.
“안 가. 싫어.”
“그러면 약속은 없던 일이 됩니다. 그래도 괜찮은가요?”
“싫어.”
“연희 학생이 불행해지는 거죠. 카일리에게 소시지도 줬는데.”
케이지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전날 밤에도 개는 이렇게 고집스러웠다. 대화 내내.
엄밀히 따지면 케이지 속 생물이 정말로 사람처럼 말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보다는 헉헉대는 숨소리와 껑껑거리는 신음 소리, 낮은 으르렁댐 중간에 짧은 단어를 불쑥불쑥 내뱉는 쪽에 더 가까웠다. 발음도 불분명했고 첫소리도 섞여서 신경 써서 듣지 않으면 못 알아챌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 소리는 정확한 타이밍과 올바른 맥락에서 나왔고, 변호사가 보여준 동영상 속에서 견주는 개가 질문에 대답을 할 때마다 손뻑을 치면서 광적으로 기뻐했으며, 개가 달아나자 모든 회의와 일정을 취소하고 식음을 전폐하여 드러누웠다. 낙하산처럼 내려와 로켓처럼 승진한 재벌가의 딸다웠다. 규모가 있는 기업인 만큼 대표가 없다고 회사 운영에 당장 차질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계속 그런 상태로 놓아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약속은 카일리가 돌아가야 전부 지켜집니다. 잊으면 안 돼요.” 노아가 부드럽게, 동시에 단호하고 엄격하게 확인했다. 개에게 응당 그래야 하듯.
개는 대꾸하지 않았다.
우리는 노아의 은색 세단을 타고 견주의 저택으로 향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케이지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러시아워가 시작된 탓에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라디오 뉴스에서 25년 동안 도피 생활을 하던 강도가 임종 직전에 죄를 고백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수감 생활을 했던 사람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노아가 라디오 채널을 돌렸다. 3587님의 신청곡입니다.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9번 〈님로드〉.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입니다. DJ의 멘트가 끝나자 층층이 쌓인 현악이 짙고 달콤한 선율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안 가. 싫어.”
카일리가 말했다.
“압니다.”
노아가 대답했다.
“말 시켜. 잠 못 자. ‘산채’ 못 나가. 사람들이 많이 봐.”
“‘산책’을 못 나가면 힘들겠지요.”
“싫어. 말. 개, 아니야. 개, 말 아니야.”
케이지가 들썩였다. 잠시 뒤 카일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개, 말하면 안 돼 ‘운제’야.”
“네. ‘문제’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확실히 문제지요.”
수수께끼 변주곡이 끝났다. 양화대교를 건너자 정체가 조금 풀렸다.
“안 가. 싫어.”
카일리가 또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연희 학생은 좋지요.”
“소시지.”
“연희 학생에게는 멀리 따로 사는 아버지가 있고요. 술만 마시면 찾아와서 어머니를 때리고 연희 학생을 괴롭히죠. 카일리가 제게 그렇게 말해줬지요.”
“죽어.”
“카일리가 집으로 돌아가면, 카일리의 소원대로 아무도 연희 학생을 괴롭히지 않을 겁니다. 그게 어제 우리가 한 약속이었죠?”
개의 입에서 ‘켕보’처럼 들리는 소리가 났다. 노아가 빙긋 웃었다.
“그래요. 연희 학생이 행복해집니다.”
“소시지.”
카일리의 목소리가 아련해졌다.
“돈도 지불됐습니다. 방금 확인했어요. 카일리를 보호해줘서 고맙다고 카일리의 주인이 돈을 줬어요. 그 돈으로 연희 학생이 공부를 할 수 있고, 소시지를 많이 살 수 있어요.”
“같이 못 먹어.”
“다른 사람들이 카일리에게 소시지를 잔뜩 갖다줄 거예요.”
“안 먹어.”
개가 철망에 코를 바짝 대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린 양. 젖은 눈이 냇가의 자갈처럼 반짝였다.
“말, 개, 행복, 아니야.”
카일리가 결론을 내렸다.
“다시, 말 안 해.”
그러고는 가는 내내 입을 꾹 다물었다. 세단이 엔간한 중형차를 리어카처럼 보이게 만드는 조용한 주택가로 들어섰다. 견주의 저택은 주변에 비해서는 검소한 편으로, 헬기 착륙장이나 수영장이 들어설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 철조망 사이로 CCTV가 튀어나온 담장에 말라붙은 덩굴손이 매달려 있었다.
노아가 초인종을 누르는 동안 나는 케이지를 들고 뒤에 섰다. 잠시 후 두꺼운 철문이 열리면서 갈색 남방을 입은 덩치 큰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의 뒤에는 깡마른 중년 여자가 잔디에 깐 디딤돌을 밟고 서서 맛있는 걸 눈앞에 둔 아이처럼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여자의 퀭한 얼굴에 경련에 가까운 미소가 넘실거렸다.
덩치 큰 남자가 말없이 케이지를 건네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기쁨과 히스테리가 뒤섞인 목소리가 닫히는 문틈으로 새어나왔다.
“카일리! 엄마한테 인사해야지! 인사! 인사아아!”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은 건 개가 죽을힘을 다해 짖어대는 소리였다. 착각이나 오해의 여지가 전혀 없는, 순수한 동물의 절규.
돌아가는 동안 노아는 라디오를 틀지 않았다. 해는 완전히 저물었다. 비가 마르지 않은 고가도로 아래서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가 빛으로 만든 카펫처럼 반짝였다.
모녀가 살던 반지하방은 화장실과 부엌이 붙어 있었다. 중학생 소녀는 개를 껴안은 채 적의에 찬 눈길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개도 소녀에게 꼭 달라붙어 있었다. 어머니는 하룻밤만 여유를 줬으면 좋겠다고, 카일리와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부탁했다.
노아가 소녀에게 말했다. 네가 오늘 밤에 카일리를 놓아줄 수 있다는 걸 안단다. 도망치게 해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건 알아두렴. 네가 그렇게 하면 카일리는 살아남을 수 없어. 다른 사람들은 카일리를 그냥 놔두지 않을 테니까. 널 만난 건 카일리에게는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 하지만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이 카일리를 위해서는 가장 좋은 일이야. 널 믿겠다. 너도 날 믿어줬으면 좋겠고.
소녀는 여전히 화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노아가 계속 말했다. 세상에는 여기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가 있어. 하지만 있게 된 이상 함부로 없앨 수는 없지. 그렇다면 그 존재를 가장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는 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을 수 있단다.
카일리는 그냥 개일 뿐이에요. 소녀가 입을 열었다. 봐요. 이렇게 조그만데.
폭탄도 그래. 조그맣지. 노아가 말했다.
“카일리 말인데요.”
내가 말문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되다니요?”
“그러게요, 왜 이런 걸 묻는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신경 쓰이십니까?”
“아닙니다. 일은 일이죠.”
“신경이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노아가 운전대를 꺾었다.
“많이들 그러죠. 일은 일이라고. 협회원 중에도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있고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일은 그저 일이 아니죠. 우리는 인간의 일도 아니고 유령의 일도 아닌 것을 다룹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가능한 한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내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겁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지금쯤 늙은 변호사는 이를 갈고 있을 것이다. 견주도 진정제 약효가 떨어지면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연희 학생의 아버지도 이를 갈 것이다. 노아가 카페에서 받은 문자에는 두려움에 질려 울먹이는 얼굴로 무릎을 꿇은 채 각서를 들고 있는 연회 학생 아버지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다시는 아내와 딸에게 접근하지 않겠다는 각서. 전문가들이 어련히 알아서 처리했을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이건 엄연한 범죄였고, 따라서 의뢰인 입장에서는 그런 일까지 해야 하는 게 내키지 않았을 것이며, 의뢰비 외에 추가 비용을 지출하는 것도 무척이나 짜증이 났겠지만, 노아는 자신이 제시한 조건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카일리의 숨통을 끊어버리겠다고 했다.
특유의 느긋한 말투로, 카일리가 듣는 앞에서.
그게 진심이었을지 궁금했다. 노아가 해구에 가라앉은 잠수함처럼 종적을 감추고 난 후, 조그만 주먹이 사무실을 노크할 때까지, 가끔.
(본문 중 일부)
#문학나눔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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