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왜 의료윤리는 흥미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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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윤리의 특수성에 관하여
의료법, 정치운동, 의료 관련 사회과학 같은 활동으로부터 의료윤리를 구분하려면 논증이 하는 역할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논증은 의료법과 의료윤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논증의 기초와 결론의 역할이 다르다. 법의 경우 논증의 기초는 법령에 함축적·명시적으로 기술된 원칙으로, 이전의 판결에서 출발한다. 반면에 윤리의 경우 이런 원칙이 주어져 있지 않다. 실제로 윤리 논증의 대부분은 해당 맥락에서 적절한 윤리 원칙은 무엇인지와 그 이유에 관한 것이다. 물론 법과 윤리라는 두 영역 모두 논증이 원칙을 특정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따지지만, 법은 비슷한 상황에서 내려진 이전 판결에 제한을 받는다. 윤리는 이전 사례가 지침이 될 수는 있어도 법과 달리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회의적인 목소리는 있기 마련이다. 어떤 때는 큰 소리로, 어떤 때는 웅얼거림으로 들려온다.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과연 옳았던 것일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은 국회또는 유사한 입법기관와 법원의 결정에 의해 정해진다. 국회와 법원은 당연히 윤리적으로 옳은 결정을 내리길 원한다. 따라서 윤리가 우선시된다. 윤리적으로 옳은 것이 의료법을 뒷받침하지만, 법적 사례가 윤리를 뒷받침하진 않는다. 이런 점은 특히 의료법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의료행위와 관련한 여러 법령과 법원 판결은 이전의 윤리적 분석에 기초한다. 위대한 그리스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는 사회 지도층에 질문을 던지면서 그들 자신의 결정과 믿음이 타당한지를 논증을 통해 제시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는 스스로 잔소리꾼이라고 생각했고, 현 상태를 흔들고 추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야말로 사회의 윤리적 기반을 다지는 일이라고 보았다. 의료윤리는 의료법에 대해 잔소리꾼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 이런 질문이 항상 우리 주위를 맴돈다. 이 법은 (윤리적으로) 옳은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법을 개정할 합당한 이유가 된다.
의료윤리가 토대가 된다는 것에는 다른 의미도 있다. 의료윤리는 법의 타당성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의료 환경이 어떻게 법으로 관리, 규제되어야 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도 다룬다. 때로는 해당 문제가 법이 아닌 개별 임상가의 전문가적 판단이나 전문가 단체의 규제 사안인지를 윤리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하기도 한다.
법의 역할은 윤리와 아주 다르다. 사회 구성원이 처벌이나 보상을 통해 법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건의료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보건의료 전문가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법을 따라야 하지만, 전문가에게는 윤리적 질문이 남는다. 이 상황에서 법을 지켜야 할까? 대부분의 상황에서 답은 예일 것이다. 법이 윤리적으로 그르다고 해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한 개인으로서 법을 준수할 윤리적 의무가 따른다. 그러나 개인이나 집단이 부당한 법에 대해서는 그것을 어길 권리가 있다고 판단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의 발전을 가져온 예는 많이 있다. 법적 판단은 법원에서 내리지만, 윤리적 판단은 우리 스스로 내린다. 이런 차원에서 윤리는 개인의 문제다.
의료윤리는 정치적이며 특정한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보수적 의료윤리’나 ‘진보적 의료윤리’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정치적 접근이 의료윤리 자체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본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 때문에, 또는 현대 정치 담론에서의 주도적인 위치 때문에 어떤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릇된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 태도가 위험한 까닭은 토론을 막거나, 특정 맥락에서 요구되는 타당한 이유를 따져보는 행위를 생략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윤리는 철학의 세부 분야로 자리잡아왔다. 그러기에 윤리의 일부인 의료윤리도 본질적으로 철학의 한 분과라고 상정할 수 있다. 의료윤리의 여러 선구자는 이런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많은 의사,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의료윤리를 철학의 일부로 보기를 거부한다. 철학자는 특정한 의료 사례나 상황을 출발점으로 삼아 철학적 분석을 수행하고 윤리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보건의료 전문가는 제시된 답에서 좌절감을 느낄 수 있다. 철학적 분석은 사례 속 사실들의 복잡성을 다루지 못하기에 도출된 결론은 너무 단순하며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다. 경험적 사실들을 세부적으로 보려는 관심 덕분에 지난 수십 년 동안 의료윤리와 관련된 경험적 이슈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가능했다. 누군가는 이를 의료윤리의 경험적 전환이라고 부르며, 사회과학자들도 이 흐름에 동참해왔다.
의료사회학자, 인류학자의 연구는 의료윤리의 주제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들의 연구와 분석을 통해 환자, 특히 소외되거나 힘없는 사람들 혹은 집단이 겪는 부당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생생한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밝혀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특정 상황에서의 핵심 윤리 쟁점은 ‘의사가 환자한테 충분한 설명을 하고 동의를 얻었는가’인데, 위와 같은 연구를 통해 그 상황에 그런 윤리 쟁점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밝혀낼 수 있다. 환자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자유롭지 않은 상황도 있으며, 다양한 이유 때문에 환자가 의사의 조언을 따르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을 할 여력이 없는 상황도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윤리 이슈에는 의료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 대다수가 보건의료 전문가에게 아예 접근할 수조차 없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의료행위를 알리는 데 초점을 둔 윤리적 분석에서는, 보건의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보건의료 전문가의 경험, 그리고 돌봄의 사회적·문화적·정치적 맥락이 상당히 중요하다. 사회과학의 중요성은 윤리적 분석이 반드시 실제 의료행위와 밀접하게 연관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나 각각의 상황이나 맥락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사실을 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얼 해야 하는지를 분석하고 결론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철학적 분석과 정연한 논증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사회과학자는 분석과 논증은 특정한 문학적·역사적 맥락에 기초하고 있으며 윤리 원칙 또한 그런 맥락과 연관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사형 집행에 관여하는 미국 의사의 행위나, 부모의 요청에 따라 여아 할례를 하는 소말리아 의사의 행위에 대해 유럽인이 판단을 내리는 것은 문제될 소지가 있다. 이런 관점은 윤리적 논증이 쓸모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를 초월한 윤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 셈이다.
우리는 이 관점에 반대한다. 자신이 속한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보건의료 행위를 비판하는 것은 옳다고 본다. 예컨대, 사형이나 여아 할례를 관여하는 의사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근거가 되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맥락을 초월하는 가치가 있으며, 그렇게 생각하는 누군가의 행동을 바꾸도록 개입할 동기가 될 수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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