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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와 인간
최재천
(중략)
코로나바이러스, 원인은 결국 인간
― 그럼 바이러스의 주기가 짧아지는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앞으로 점점 더 짧아질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전례 없이 야생동물들을 건드려대기 때문입니다. 박쥐가 우리한테 일부러 바이러스를 배달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박쥐를 잘못 건드린 거예요. 우리나라는 처마를 없애서 이제 박쥐가 숲에만 있지만 일본만 가도 저녁에 웬만한 소도시 강둑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트남 야외 식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날아다닌다고 해서 박쥐가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뿌릴 확률은 극히 낮아요. 예전에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박쥐 동굴에 가볼 기회가 드물었죠. 박쥐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자꾸 숲으로 길을 내고 목재를 실어 오는 와중에 사람들이 동물의 서식지에 들어가서 들쑤시게 된 거죠. 그러면서 야생동물 몸에 있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묻는 겁니다. 박쥐가 훨씬 자주 만나는 어떤 동물에게 옮겼고, 그 동물이 인간을 자주 만나는 바람에 제2, 제3의 숙주를 통해 바이러스가 건너온 거죠.
이번 코로나19의 경우 천산갑이 중간 숙주가 맞다면, 중국인들이 천산갑 비늘을 한약재로 먹으니까 가공하는 과정에서 옮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박쥐를 직접 접촉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작은 박쥐가 아니라 열대지방의 큰 박쥐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먹죠. 바이러스는 우리와 같이 살아갑니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우리한테 별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만, 가끔 궁합이 딱 맞는 녀석이 나타나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죠.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가면 야생동물을 요리하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코뿔소, 고릴라 등 다양한 동물들이 메뉴로 나와 있어요.
― 코뿔소도 먹는다고요?
코뿔소, 원숭이, 박쥐 등등 다양합니다. “이번에는 이거 한 번 먹어보자.” 하면서 유럽인들이 방문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고기를 대려니까 인간들이 계속해서 야생동물 서식지에 들어가게 되는 거죠. 런던이나 파리 시내 한복판에도 이런 레스토랑들이 생겼습니다.
― 정말요?
네. 그러니 아프리카에서는 동물을 잡아서 그쪽으로 계속 공급을 하는 거죠.
― 말씀하신 동물들은 모두 멸종위기종 아닌가요? 보호 대상일 텐데 그걸 먹는 게 법적으로 허용이 되나요?
그러게 말입니다. 별짓을 다 하고 있죠. 그 고객들을 먹이기 위해 정글에 들어가서 야생동물을 잡아오고, 그 과정에서 동물들에 붙어살던 기생생물들이 인간에게 들러붙는 겁니다.
― 결국 인간이 자꾸 자연에 침범해 들어가 생태계를 파괴하니, 자연 속 동물들 세계에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와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건가요?
그렇죠. 얼마 전에 재미있는 논문이 하나 나왔습니다. 많은 동물들이 왜 야행성으로 변했는지 추적한 논문인데요. 여기에 따르면 동물들이 원래 밤에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인간이 낮에 돌아다니니까 인간을 피해 할 수 없이 밤에 돌아다닌다는 거죠. 지금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안 다니니까 야생동물들이 도시로 와서 활보하는 일이 보도되지 않습니까.
― 네, 퓨마가 도심에 나타나고요.
이런 일이 정확하게 우리 인간이 그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보여주는 거죠.
― 한마디로 사람, 인간이라는 게 얼마나 동물들의 행동 반경을 제약해왔는가, 그거군요. 그러다 보니 동물들 틈 속에 있어야 할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왔고요. 그런데 이런 전염병 유행 간격이 앞으로 더 좁아질 거다, 1년 후에 또 뭐가 올지 모른다, 이런 말이 있는데요.
앞으로 5년으로 줄고, 3년으로 줄고… 한참 있으면 거의 연례행사처럼 벌어지지 않을까요?
― 게다가 전파력은 더 강하면서 치명률은 30퍼센트, 40퍼센트까지 올라가는 일도 벌어질 수 있겠네요?
그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파력과 독성은 함께 가기 어려워요. 질병의 독성과 전염성은 대체로 역의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독성이 너무 강해 자기가 감염시킨 숙주를 돌아다니지도 못하게 하는 병원체는 증식과 전파에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 병원체는 숙주의 이동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버젓이 피를 빠는 모기를 때려잡을 기력조차 없도록 만들어야 더욱 안전하고 쉽게 다음 숙주로 옮아갈 수 있죠. 말라리아는 간접 감염에 의해 전파되지만, 감기나 독감처럼 직접 감염으로 전파되는 경우에는 독성이 강하면 전염이 잘 안 됩니다. 걸린 사람이 다니면서 퍼뜨리지를 못하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독특한 게 전파력도 강하면서 후반전에 가면 독한 속내를 확 드러냅니다. 그러니까 아주 힘들어요.
― 결국은 생태계 파괴, 인간의 자연 침범이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겠군요. 기후 변화도 영향이 클까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 어떻게요?
포유동물의 종수만 비교하면 열대와 온대에 차이가 없습니다. 열대에도 온대에도 비슷한 수의 포유동물종이 사는데요. 차이는 박쥐입니다. 열대에 가면 박쥐 종류가 엄청나게 많은데요. 계산을 해보면 열대의 종 다양성이 훨씬 높습니다.
하지만 기후 변화 때문에 그 박쥐들이 지금 계속 온대 지방으로 슬금슬금 옮겨 오고 있어요. 사람들이 이걸 또 건드려대니까 앞으로 이런 일이 점점 잦아질 겁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온대지방에 전염성 질병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바이러스와 세균을 옮기는 매개동물들의 분포 범위가 넓어지고 있죠.
예를 들어 뎅기열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가 대만까지 북상했습니다.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건 이제 시간 문제입니다. 시베리아 같은 극지방에서 동토가 녹으면서 예전에 탄저병으로 죽은 순록 사체가 드러나며 다시금 탄저균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이런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대안은 생태백신과 행동백신
―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코로나19, 완전히 근절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냥 같이 살아야 합니까, 앞으로?
애당초 근절이라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 그렇습니까?
우리가 농사를 지으면서 해충 구제할 때 이미 쓰던 용어들이 있어요. 박멸, 퇴치 등등. 지난 겨울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을 때 멧돼지를 쫓으면서도 퇴치나 박멸이라는 똑같은 용어를 썼죠. 이게 다 군사용어거든요. 하지만 경찰이 하는 일과 군대가 하는 일은 달라요. 군대는 쳐들어가서 박멸하는 게 목표고 경찰은 질서를 유지하는 게 목표잖아요. 사실 우리가 바이러스 같은 병원균들을 대할 때는 경찰 행동을 해야 하는 겁니다.
― 질서를 잡아야 하는군요.
그렇습니다. 군사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요. 완전히 한 명도 확진자가 없고 아무도 아프지 않은 상태를 목표로 삼으면 굉장히 오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감기나 독감의 경우처럼 질서를 잡는 수준으로 목표를 잡으면 훨씬 합리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죠.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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