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어떻게 읽을까
─ 책에 접근하는 방식들
1
책읽기의 출발점, ‘주제 정하기’
필요한 지식을 얻고자 책을 읽는다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것은 자신의 필요에 가장 잘 들어맞는 책을 고르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책을 고를 때는, 책을 많이 읽은 주변 사람에게 추천을 받거나 인터넷을 검색해 보거나, 그도 아니면 베스트셀러 목록을 참고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나에게 적합한 책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베스트셀러는 그것을 읽는 한 명 한 명을 고려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검색을 통해 판단하는 일은 많은 경험을 통해 일종의 ‘감’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묻지 않고,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의존하지 않고, 혼자서 책을 고를 경우 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관련된 주제를 파악하여 그 주제에 따라 해당 영역의 책들을 찾은 후 세부적인 것을 따져 가며 믿을 만한 책들을 고르는 것이다. 이때 내가 알고자 하는 지식과 관련된 주제가 막연할수록 그것에 해당하는 책은 수없이 많아진다. 이를테면 기독교라는 주제가 있다고 해 보자. 기독교라는 주제에는 구약 성경, 신약 성경, 교회, 신학, 이단 등이 세부 주제로 딸려 있다. 그러니까 어떤 주제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면 그것의 세부 주제를 다시 생각해 보고 그 세부 주제들 중에서 자신이 가장 관심 있는, 또는 가장 호기심이 생겨나는 분야의 책을 고르는 것이 좋다. 세부 주제에 관한 책은 그 주제를 다룬 표준적인 개론서부터 읽고 그에 이어서 해당 주제의 역사를 읽는 것이 적절한 순서이다. 기독교라는 주제의 경우, ‘기독교는 무엇인가’라는 것을 잘 다루고 있는, 얇지만 단단한 책을 읽고 그에 이어서 기독교의 역사를 서술한, 역시 얇지만 단단한 책을 읽으면서 이 주제에서 무엇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지, 어떤 것들이 관련 분야에서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한 후 독서를 이어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성경 읽는 법: 신자와 비신자 모두를 위한 짧고 쉬운 성경 안내서》
오누키 다카시(지음), 최연희(옮김), 따비, 2014.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뜨거운 주제다. 끝을 알 수 없는 비아냥과 헤아릴 수 없는 몰입을 동시에 가져 온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로 여겨지거나 엄숙하고 경건한, 심지어 삶을 온통 바꾸는 일로 여겨진다. 이도저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태도와 진지한 학문적 탐구를 위한 방법론적 회의주의가 개입될 여지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 텍스트이다. 그래도 성경은 읽어 볼만한 책이다. 또는 그렇다고들 한다. 곤란함은 여기서 생겨난다. 어떻게 읽어야 하나? 읽는 방법을 알려 주는 이가 없다. 가까운 교회를 찾아가면 될까. 그리 탁월한 대책은 아닌 듯하다. 성경 읽기는 고사하고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 배울 곳도 마땅치 않다.
나는 서양 근대 철학을 공부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기독교라는 종교와 성경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만 했다. 이런저런 책을 읽거나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가면서 그것들을 공부해 왔고 더러는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공부하고 가르치면서도 성경 읽는 방법을 잘 정리해 놓은 가장 기초적인 안내서가 늘 아쉬웠다. 그간 알아내고 터득한 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늘어놓을 수는 있어도, 구획을 짓고 각 부분들을 고리로 꿰는 것은 또 다른 능력이기 때문이다. 《성경 읽는 법》이라는 책은 나의 이러한 아쉬움을 깔끔하게 해결해 준다. 어떤 분야에 대해 궁금할 때 그 분야를 공부하는 출발점은 가장 기초적인 안내서를 읽는 것이다. 기초를 익히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성경 읽기는 당연히 어렵다”라는 첫 문장부터 문제를 잘 짚고 있다. 성경만이 아니라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책들을 읽고자 할 때 부딪히는 문제들이 그 문제의 원인들과 함께 적시되어 있다. “요약본만 읽고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 이른바 다이제스트 판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에는 지루함을 이겨 내면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사람이 바보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어디서부터 읽든 미로를 헤맨다” ― 잘 알지 못하는 지명과 발음하기도 어려운 사람 이름에 걸려 넘어지고, 왜 이런 식으로 말하는지 모르면 미로에 빠져드는 게 당연하다. “이질적인 고대의 세계상” ― 이것은 정말 고전을 읽을 때 부딪히는 가장 큰 벽이다.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른 사유태도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런 문제들에 부딪히면서 책을 읽다 보면 결국 우리는 절망에 빠진다. 즉 “읽다 보면 지쳐 버리는 성경”에 먼지가 착실히 쌓이는 세월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경이나 고전 읽기가 어려운 건 믿음이 모자라서도 독서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그 텍스트가 만들어진 방식, 읽는 방식을 모르기 때문이다.
읽기 어려운 까닭을 알았으니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방법이 나올 차례다. 마음을 다잡고 읽기 시작하면서 지켜야 할 원칙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목차를 무시하고 문서별로 읽기” ― 성경은 전체가 하나의 논지를 가진 저작이 아니라 여러 문서들을 묶어 놓은 것이니 이렇게 읽는 게 당연하다. “문서마다의 개성을 존중하기” ― 여러 문서들인 만큼 저자도 여럿이요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도 그만큼 다를 터이니 문서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개성을 지닌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답을 구하지 않기” ― 믿음에 가득차서 또는 믿음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경전을 읽을 때 저지르기 쉬운 잘못이 바로 즉흥적으로 답을 내리는 것이다. 각 문서가 가진 논지와 관계없이 구절 하나하나에 속된 말로 ‘꽂히기’ 쉽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거듭 말하지만 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이다.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사도신경’에 집약되어 있다. 여기서는 ‘사도신경’ 내용 전체를 옮겨 적지는 않겠다. 다만 그 핵심 내용만 한번 정리해 보자. 처음에 나오는 것은 신, 즉 하느님 아버지가 전능한 존재이며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가 믿는 신에 관한 규정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에 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언급하고 있다. 기독교는 이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신약 성경의 각 문서와 기독교의 교파들은 이 기본 사항들 중에서 강조점을 달리함으로써 차별성을 갖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것을 강조할 것인가에 들어가기에 앞서 성경을 읽으면서 기본을 먼저 터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성경의 문서들 각각은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완결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도 유념해 두면 좋다. 이를테면 신약 성경의 시대 복음서들은 저자가 강조하는 바에 따라 작품이 구조적으로 짜여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분석하면서 읽는다면 성경은 신앙을 갖지 않은 자들에게도 적절한 고전 읽기 연습 독본이 된다. 그렇지만 이 책은 단순한 성경 독법을 넘어서 기독교가, 종교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우리가 종교를 받아들이는 방식까지도 알려 준다.
나는 이른바 ‘천주교 신자’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의 신앙을 객관화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돈독한 신앙인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이것이 ‘더 많은 믿음’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 많은 믿음에 대한 갈구는 믿음이 부족한 나를 일깨워서 광신으로 밀고 갈 가능성을 품고 있다. 오히려 더 깊은 이해와 더욱 겸손한 믿음, 이 둘이 잘 결합될 때에야 돈독함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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