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베개에 깃털이 떨어져 있어요.
베개는 깃털로 만든 거잖니, 가서 자렴.
커다랗고 시커먼 깃털인데.
그럼 아빠 침대로 와서 자렴.
아빠 베개에도 깃털이 떨어져 있네요.
그럼 깃털은 그냥 거기 두고 바닥에서 자자.
아빠
그녀가 세상을 뜬 지 사오일 정도 지났을 때, 나는 거실에 홀로 앉아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서성이며 충격이 가시길, 체계적으로 조작된 나의 일상 속에서 모종의 구조화된 감정이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리고 있었다. 불쾌한 공허감이 들었다. 아이들은 잠들어 있었다. 나는 술을 마셨다. 창가에서 담배 몇 개비를 말아 피웠다. 그녀가 떠남으로써 빚어진 가장 주요한 결과는 아마 내가 영영 이렇게 뒷바라지를 하는 사람, 상투적인 감사의 말을 주고받으며 이렇게 목록을 작성하는 상인 같은 사람, 엄마 없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기계처럼 일상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라고 느꼈다. 슬픔이 사차원적으로, 추상적으로, 어렴풋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추웠다.
나의 곁에 머무르며 친절을 베풀던 친구들과 가족들은 다들 집으로,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자 이 아파트는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했다. 움직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초인종이 울렸고 나는 또다른 친절함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또 라자냐거나, 몇 권의 책, 포옹, 작은 냄비에 담긴 아이들용 인스턴트 음식 같은 것이겠지. 당연하게도, 나는 줄줄이 찾아오는 애도객들을 대처하는 데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건의 중심에 있다보면, 기이하게도 다른 모든 이들에 대한 인류학적 지각을 얻게 된다. 슬픔에 압도된 사람들, 애도를 가장하는 사람들, 지금껏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사람들, 너무 오래 머무는 사람들, 아내가, 내가, 그리고 아이들이 새로 사귄 친한 친구들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대체 누구였는지 알아처먹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지구가 두꺼운 띠를 이룬 우주 쓰레기에 둘러싸인 그 놀라운 사진, 바로 그 사진 속 지구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죽은 아내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애도 행위, 뒤엉킨 끈과도 같은 그 꿈이 옅어져서 내가 다시 검은 우주 공간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으려면 수년은 걸릴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고, 당연하게도 이런 생각은 ― 두말할 것도 없이 ― 내게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난, 나 자신을 옹호하며, 모든 게 변했고 그녀도 세상을 떠났으니 내가 무엇을 생각하든 그건 내 자유라고 생각했다. 그녀도 동의할 것이다. 우린 늘 과도하게 분석적이었고, 냉소적이었으며, 어쩌면 불성실하고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선의를 지닌 채 사후死後 디너파티에 참석한 년들. 위선자들. 친구들.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카펫이 깔린 계단을 내려가 차가운 복도를 지나 현관문을 열었다.
바깥에는 가로등 불빛도, 쓰레기통이나 포석鋪石도 없었다. 어떤 형체나 빛도, 그 어떤 형상도 없이, 오직 악취만 진동할 뿐.
쿵 하고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숨이 턱 막힌 채로 현관 계단에 나자빠졌다. 복도는 칠흑같이 어두웠고 지독하게 추웠고 나는 생각했다. ‘오늘밤 내가 내 집에서 강도를 당한다면, 대체 이건 어떻게 돼먹은 세상인 거지?’ 그리고 또 생각하길, ‘하지만 솔직히 무슨 상관이람?’ 그리고 생각하길, ‘제발 아이들만 깨우지 마, 걔들은 좀 자야 하니까. 아이들만 깨우지 않는다면 내가 가진 돈이란 돈은 마지막 동전 하나까지 모두 털어 드리지.’
눈을 뜨니 여전히 어두웠고 온통 탁탁 치는 소리와 바스락바스락하는 소리뿐이었다.
깃털들.
부패의 냄새, 이제 막 상하기 시작한 음식, 이끼, 가죽, 이스트에서 나는 달콤한 모피 냄새 같은 악취가 진동했다.
내 손가락 사이에, 눈에, 입에도 깃털이 있었고, 내 몸 아래에서는 깃털로 된 해먹이 나를 타일 바닥 위로 1피트 정도 들어올렸다.
내 얼굴만큼이나 크고 새까맣게 빛나는 눈알 하나가, 가죽처럼 주름진 안와眼窩 속에서, 축구공 크기만한 고환처럼 불룩하게 부풀어오른 채 천천히 깜빡이고 있었다.
쉬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쉬이이이이이.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더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나는 떠나지 않을 거야.
날 내려줘, 나는 말했다.
안녕이라고 말해주기 전까진 안 돼.
날. 내려. 줘, 나는 까악거리며 말했고, 내 오줌은 그의
날개로 된 요람을 따뜻하게 적셨다.
겁먹었구나. 그냥 안녕이라고만 해.
안녕.
제대로 말하라고.
나는 체념한 채 드러누워 아내가 죽지 않았더라면 하고 바랐다. 내 집 복도에서 거대한 새의 품안에 드러누워 겁에 질려 있지 않았더라면 하고 바랐다. 하필이면 내 생애 가장 큰 비극이 일어났을 때 내가 이것에 사로잡힌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하고 바랐다. 그것은 진심을 담은 간절한 바람이었다. 그것은 쓰라릴 만큼 훌륭했다. 정신이 좀 맑아졌다.
안녕, 까마귀야, 나는 말했다. 드디어 만나게 되어 반갑구나.
*
그리고 까마귀는 사라졌다.
나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잠이 들었다. 숲속에서 보내는 오후에 대한 꿈을 꿨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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