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상상력은 어디서 올까
피카소의 〈두 자매〉가 던지는 질문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가 뛰어난 예술가가 된 이유를 알 수 있는 그림이 있다. 〈두 자매〉는 피카소가 스물한 살에 그린 작품이다. 그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또 잘 그렸던 청년은 1901년 여름, 파리의 생라자르Saint-Lazare 병원을 방문해 두 자매의 만남을 목격한다. 두 자매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흩어져 살았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각기 다른 인생을 산 그들은 수녀와 창녀가 되었다.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뜻밖에 병원의 매춘부 수용 병동에서 만났지만 기쁨은 잠시, 서로의 처지가 너무나 달랐다. 피카소는 두 자매의 기막힌 사연을 잊을 수 없었다.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피카소는 두 자매가 남긴 짙은 인상을 꼬박 일 년에 걸쳐 그려 이듬해 여름에 그림을 완성한다.
그림에서 어느 쪽이 수녀이고 누가 창녀일까.
오른쪽의 여인을 수녀라고 생각하고 왼쪽을 창녀로 보기 쉽다. 그러나 거꾸로 왼쪽이 수녀고 오른쪽이 창녀가 된 자매다. 블라우스를 풀어 젖힌 오른쪽 여인의 왼쪽 팔에 아기의 검은 머리가 조금 보인다.
창녀가 된 여인은 세상에 분노를 품고 살아왔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힘겹게 지내면서 사람들의 학대를 받고 농락을 당해 몸이 더럽혀졌다. 무시와 경멸을 받을수록 세상을 향한 분노가 커졌다. 수치를 느낄수록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했다. 분노는 자기 보호의 모습이다.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부릅떴다. 그 앞에 선 수녀는 머리를 들 수 없다. 친자매의 기구한 운명에 고통스러워하며, 세상 모든 죄의 죄인이 된 심정이다. 슬픔으로 고개를 숙였다.
수녀는 감호 병동에 봉사하러 왔다가 병을 치료하며 아기를 돌보고 있는 자신의 자매를 우연히 만난다. 그림에 흐르는 팽팽한 정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해후한 두 자매는 침묵에 잠겼다. 그럼에도 맨발의 두 자매가 어울린 모습에서 병마와 고독의 고통 너머 슬픔을 위로하는 친밀한 가족적 유대가 느껴진다. 수녀 뒤로 아치가 보인다. 아치가 있는 곳에서 희미한 빛이 나오고 있다.
피카소는 무엇이 남달랐을까
20대 초반에 피카소는 소외되고 학대 받는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 1821~1881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처럼 걸인, 장님, 행상, 유랑인, 노숙자가 그림의 주인공이다. 그들을 파란 색조가 감싼다. 아기를 품에 안은 여인 옆으로 섬뜩한 느낌을 주는 배가 다가오는 〈바닷가 여자와 아기〉1902, 고통으로 웅크린 인물들을 배경으로 아무 표정 없는 두 남녀가 벌거벗은 채 서로 의지하고 있는 〈인생〉1903, 바닷가에서 추위에 떠는 바짝 야윈 세 가족을 그린 〈비극〉1903, 한 손에 빵 조각을 들고 다른 손으로 물병을 더듬는 〈장님의 식사〉1903, 인생의 우수가 푸르게 물들어 있다. 청색 시대라고 불리는 이 시기를 지나 피카소는 사람의 내면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는 외형을 해체해서 그 외면을 만든 내면을 그려 입체파cubism라고 불리는 표현법을 열었다.
도발과 파격으로 창의적 상상력을 발휘한 피카소. 특정 양식에 얽매이거나 안주하지 않아 화풍의 연속성이 없는 화가. 신인상주의, 원시주의, 미래주의, 신고전주의, 초현실주의 등 여러 사조를 넘나들었고 입체파를 열었으며, 드로잉, 유화, 판화, 도예, 조각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다. 연극의 의상을 고안하고 무대 장치를 만들고 문학작품의 삽화를 그리고 직접 시를 쓰고 두 편의 희곡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새롭고 대담한 표현으로 때로는 질시 섞인 험담을 들었지만, 통념에 젖어 뒷소리나 하는 못난 사람들을 개의치 않고 카리스마 넘치는 자세로 생명 본능과 삶의 희열을 맹렬하게 드러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예르미타시미술관Gosudarstvenny Ermitazh 4층, ‘피카소의 방’이라 불리는 431홀은 〈두 자매〉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이 그림은 관람자에게 꼭 질문을 던진다. 누가 수녀고 누가 창녀인가. 〈두 자매〉는 편협한 통념에 젖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기교가 뛰어나다고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림을 잘 그린다고 화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늘 도발적인 예술가, 창의성의 화가 피카소. 그는 인간의 아픔과 슬픔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혁명의 정의마저 바꾸는 시대
엄청나게 변하는 시대다.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이 시대는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 시대의 변화를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포럼을 창립해 회장을 맡고 있는 크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가 세상이 제4차 산업혁명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주창한 이후 많은 이들이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2011년부터 독일 정부가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던 ‘산업 4.0’industrie4.0이라는 명칭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변화를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라는 옛 용어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 용어는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의 증기기관을 비롯한 기술 혁신이 18세기 후반부터 약 100년 동안 산업혁명을 이끌었다는 경제사학자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 1852~1883의 강의를 묶은 책 《영국의 산업혁명 강의》1884를 바탕으로 널리 사용됐다. 약 200년 전 공장의 굴뚝은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는 사실을 알렸다. 수공업에서 벗어나 물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제조업은 당시 산업의 혁신 형태였다. 이제 이 개념은 낡아버려 지금의 변혁을 설명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차례를 매겨 4차라고 한다면 그다음은 5차로, 현대의 변화를 산업의 틀에 가둬 미래를 만들 상상력을 묵살하는 일일 것이다.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데 실질적으로 중요한 경제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세 단계를 거쳤다.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다음에는 자본제로, 그것은 경제의 바탕이 되는 힘을 가리킨다. 지금 그 힘이 바뀌고 있다. 자본 다음의 경제 원동력은 무엇일까? 상상력과 창의성이 될 것이다. 인류 문명사에서 경제의 근간이 세 단계를 지나 다음 관계로 진입하고 있다. 창의성이 굴뚝 산업의 종말을 고하며 의식이 바뀌는 시대다. 지금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옛 단어가 있다면 혁명뿐이다.
기존의 규범이 붕괴하고 새 질서가 등장해 세상을 바꾼다는 혁명. 혁명은 업그레이드나 개선을 뜻하지 않는다. 혁명은 ‘바꾸다’, 즉 전환을 말한다. 음악의 곡조에서 조성이 달라지는 변조나 그림의 형상에서 패턴이 바뀌는 모습과 같다. 혁명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는 일이다.
본래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는 회전revolūtiō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나왔다.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가 그동안 사람들이 믿어왔던 천동설을 뒤집고 지동설을 밝힌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1543라는 저서를 낸 후, 회전이 혁명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과학혁명을 이끈 자연과학의 언어가 정치경제로, 일상으로 들어온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전회Copernican revolution는 회전이라는 뜻 그대로 지구가 돈다는 의미지만, 오랫동안 태양이 도는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어 이전의 가치관이 바뀌는 혁명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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