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혐오란 무엇인가
경제 보복 조치 이후 한일 관계는 최악의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2019년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수출물자 관리 방안의 일환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가공에 쓰이는 소재부품인 고순도 불화수소·포토 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종을 특별 관리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사태는 시작되었다. 한국의 핵심 수출품인 반도체를 겨냥한 이런 갑작스러운 조치에 전 국민이 영문도 모른 채 당황했으며 이어지는 언론 보도를 통해 그 맥락이 밝혀졌다. 일본의 보복 조치는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일본 기업의 산업 노역에 동원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이 시발점이 됐다. 일본 정부는 이에 강력히 반발했으며 대법원의 판결이 1965년 한일 국가조약의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2015년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도 어겼으며, 전략물자 관리를 허술하게 한다는 등 한국이 국가 간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신뢰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삼권분립이 철저히 지켜지는 한국의 경우 대법원 판결에 대해 정부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고, 배상 책임이 있는 일본 기업이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이행하기를 거부하자 그들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배상을 실현하겠다고 공표했다. 이어 양국의 외교 라인에서 물밑 협상이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한국은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이 공동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일본은 이를 거부했다. 그런 뒤 한국 내 일본 기업 자산을 매각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수위 높은 발언을 한 뒤 정부 각 부처에서 한국에 타격을 입힐 방안을 모색한 후 7월의 경제 보복이 표출된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일본 정부의 생각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소재부품 수출 제한이라는 급소 타격 방식에 이어 한국을 수출우대국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우리 정부 또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연장하지 않고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강공법으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소재부품산업의 탈일본화와 일본 여행을 가지 않고 일본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자발적 불매운동, 혐한 이슈 등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그간 사회문화적 영역에 머물러 있던 혐한은 이제 우익 정부의 명백한 정치적 수단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상황이다. 먼저 매스미디어가 ‘혐한’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이 과거와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혐한 방송으로 국내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DHC 텔레비전을 비롯해 공중파 텔레비전을 비롯해 공중파 방송에서도 패널들을 동원해 한국을 폄하하고 한국인을 조롱하는 발언을 수시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혐한 방송’이 공중파 아침 토크 프로그램에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시청률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어디를 들어도 한국을 왜곡하는 혐한 방송이 나오니 시청자들도 이에 세뇌당할 수밖에 없다. “친한파, 지한파들도 ‘질렸다’며 ‘한국 졸업’을 선언”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최근에는 ‘혐한 비즈니스’라는 말도 등장했다. 방송의 시청률 경쟁이 이뤄지는 한편에서는 우익 잡지들이 ‘한국 특집’을 마련해 본격적인 혐한론을 펼치고 있다. 일본의 시사주간지 『주간 포스트』는 2019년 9월 13일자에서 ‘한국은 필요 없어’라는 특집을 마련했다. 재일 언론인 유재순이 “인지도도 없고 판매 부수 10만 부가 채 넘지 못하던 삼류 신문 『산케이』가 한국 때리기, 즉 혐한 기사로 일약 전국구 신문사로 업그레이드되고, 『주간 신초』 『주간 포스트』 같은 시사주간지는 혐한 기사만 실으면 5만~10만 부까지 판매 부수가 늘어났습니다”라고 최근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듯이 출판물의 혐한은 명백히 자본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서점에 가면 혐한 도서 코너가 있으며, 혐한 내용의 단행본도 저자에게 인지도가 있으면 그 내용과 상관없이 1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매스미디어는 사회의 우경화를 부추긴다. 외부의 적을 상정해 국민의 관심을 돌림으로써 내부의 사안에 대해선 문제를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현재 일본은 언론 자유지수에서 세계적으로 순위가 많이 떨어져 있다. 그만큼 언론이 정부의 입맛에 맞는 뉴스를 보도하며, 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를 통한 사태 악화가 덧칠해진다. 즉 일본의 극우 세력은 한국 내의 새로운 친일 세력을 활용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독도 등 한일 간 역사 이슈 전반에 대한 왜곡·선동의 주장을 담은 『반일 종족주의』가 일본어로 번역돼 아마존재팬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이다. 제목부터 한국을 조롱하고 거부하는 여타의 책과는 달리 이런 유의 책은 마치 한국인에게 내재된 어떤 민족 성향이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한국을 알고자 하거나 비판적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읽힐 수 있다. 교묘한 논리와 선택적 논거 제시로 일관한 이 책의 역사 인식에 휘둘려 과연 얼마나 많은 일본인이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갖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면 두려울 정도다. 오늘날 거세진 혐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이 문제를 짚어봐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혐오라는 감정이 발생하는 보편적, 특수적 맥락을 분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혐오’가 시대정신인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보통 시대정신은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가치와 어울리게 마련이지만, 지금은 부정적인 감정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정치 혐오, 여성 혐오, 외국인 혐오, 계층적 혐오, 노인층 혐오, 또래 집단이나 직장 내부의 혐오 등 끝도 없는 혐오 대열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왜 부정적 감정이 해소되지 못하고 혐오라는 칼끝으로 버려지는 것일까. 이것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이며 가까운 일본과 타이완만 해도 혐한 정서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혐오 감정은 현대사회가 풀어야 할 난제 중의 난제로 자리 잡고 있다.
보편적 본능에서
사회구조적 문제로
‘혐오’라는 것은 무엇이고 왜 발생하는 것일까. 혐오嫌惡란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즉 혐오는 일단 감정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어떠한 것에 대한 공포, 불결함 따위 때문에 기피하는 감정으로, 그 기피하는 정도가 단순히 가까이하기 싫어하는 정도를 넘은 감정”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즉 혐오는 강렬한 싫음과 강렬한 기피가 결합된 정서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나와 닮은 것에는 호감을 느끼는 반면, 다른 것에는 낯설어하고 불안함을 느낀다는 점으로 미루어 혐오의 대상은 나와 다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인종, 다른 성별이 그러하다. 그렇게 보면 혐오는 어떤 것이 나에게 해로움을 끼칠 것이라 판단하여 그것을 배척하는 감정이며, 사회적 행위로도 연결될 수 있는 감정이다
이런 혐오는 인간 본성에 기반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역겨움에 의한 혐오를 인간의 사회적 적응의 한 종류로 파악한다. 신체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패하고 상한 식품을 보면 혐오의 감정이 돋는 것은 그것을 먹으면 배탈이 나거나 식중독에 걸리기 때문에 장기간 이를 학습해온 인간의 유전자가 당연한 반응으로 혐오를 이끌어낸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학자들에 따라 혐오는 다양하게 살펴지고 있다. 철학자 윤지영은 혐오와 분노를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혐오는 보수적인 파토스로 “주류적 도덕 규칙과 가치체계 및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습성과 통념적 행동 패턴들을 재생산”한다. 이러한 혐오의 파토스는 명확한 대상도 없는 공포를 해소해줄 가시적인 대상을 찾아 이를 모든 위기의 원흉으로 규정한다. 그 후 이러한 공포의 대상을 적출해냄으로써 자신의 유쾌함과 안정성, 항상성의 보존 논리를 회복하고, 결국 이러한 혐오 대상의 규정을 통해 현실을 교착 상태로 되돌려놓고자 한다.
반면 분노는 혐오와 다르다. 분노는 “시대적, 문화적 습성들과 상식, 통념들에 대한 내면화 방식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의 추동력”으로서 혁명적 파토스에 가깝다. 가령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분노는 남성들의 자연화된 집단 에토스를 떠받치는 이항대립을 해체하려는 혁명적 파토스다. 따라서 분노는 혐오가 구축한 교착 상태를 해체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정의는 혐오 감정과 분노 감정이 갖는 본질적 차이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분노와 혐오의 방정식이 이렇게 이항대립으로만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혐오가 온라인 공간에서 모이고 쌓여 공적 담론으로 진화하고 이것이 분노의 형태로 다시 표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 혐오 단계에서는 아직 자기 확신이 없고, 또한 상대를 제압하거나 핍박할 힘도 없지만 동조자들이 모여 하나의 집단을 이루면 혐오 감정은 분노로 돌변한다. 이들은 뚜렷한 근거도 없는 감정의 조각들을 모아 공론의 장을 형성하고 혐오를 정당화한다. 공론화를 거쳤다는 것은 혐오의 가해자들에게 큰 무기가 된다. 사적 감정을 집단의 공적 감정인 것처럼 행세하기 위한 근거를 확보”해주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감정과 개인의 테두리 안에 머무를 때의 혐오와 그것을 벗어날 때의 혐오의 질적 진화를 새삼 곱씹게 된다.
(…)
혐오 감정과
일본이라는 특수성
국가 간의 혐오 역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국경을 맞대고 영토 전쟁을 벌일 때도, 정치적으로 거래할 때도 이웃 국가들은 서로를 혐오했다. 실제로 국가 간 대립의 상당 부분은 이웃 나라 간에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독일/영국과 프랑스, 인도와 파키스탄, 일본과 중국 등 그 예는 셀 수 없이 많다. 지도상에서 사이좋게 붙어 있는 나라는 국경, 민족, 자원 및 그 밖의 이유로 다투는 ‘경쟁국’인 경우가 많다. 멀리 떨어진 ‘나라’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면서도 이웃 나라 간, 특히 영토 문제나 역사 인식 등이 관련되면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었다. 정치 및 조세제도는 물론이고 문화적으로 아시아 모든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아 왕조를 유지했다. 아편전쟁에서 중국의 패배는 일본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 에도 막부 말기 페리호의 내항으로 강제로 개국한 후, 동아시아의 중국, 한국, 베트남, 일본 중에서 일본은 제일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침략을 당한 한국이나 중국 입장에서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굴욕이었다.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1910년에는 조선을 합병하고, 1932년에는 만주국을 세웠다. 1937년부터는 중일전쟁, 1941년부터는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패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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