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어떻게 성매매를 하게 되었나요?”
(중략)
담임 교사를 만난 나는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했다. 담임 교사는 부모님과 이야기해보자고 하며 나를 따라 집으로 왔다. 아버지와 담임 교사는 한동안 마주본 채 말이 없었다. 긴 침묵을 끝내고 담임 교사는 이제 1년 남았는데 학교는 졸업시켜야 하지 않겠냐고 말을 건넸다.
아버지는 자신이 장애가 있다고 하며 “장애 등록을 하고 학교에 보낼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럴 형편이 아닙니다.”라며 무안할 정도로 단칼에 거절했다. 담임 교사는 더 이상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했고 내 의사를 물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학교를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훗날 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아버지는 “너도 학교 안 다니겠다고 하지 않았냐.”며 내게 책임을 돌렸다.
(…)
20여 년을 업소에서 일하면서, 그리고 탈성매매 후에도 한동안은 내 발로 업소를 찾아갔다는 사실이 죄책감이 되었다. 맞아도 내 잘못, 강간을 당해도 내 잘못, 남자에게 버려져도 내 잘못, 성매매를 해도 내 잘못. 모든 것을 내가 감당해야 했다.
(…)
룸살롱에서 일할 때 업주는 내가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늘 너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업주는 “너니까 이렇게 신경 쓰는 거야. 내 말 들으면 돈도 벌고 빚도 얼른 깔 수 있어.”라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손님에게 잘 보이는 게 돈 버는 길이라며 옷, 화장품, 머리스타일까지 신경 써주며 관심을 보였다. 단골 만들어서 편하게 일하라고 하면서 2주에 한 번씩 외교를 다니도록 했다. 단골이 자주 찾아오면 업소 아가씨들 앞에서 일을 잘한다고 칭찬하며 나를 본받으라고 했다. 마치 업소에서의 권력을 주듯이 대우했다. 그러나 너밖에 없다는 말은 나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아가씨면 누구든지 너밖에 없다는 말을 해서 신뢰하게 만들었다. 아가씨들을 길들이고 복종시켜 다른 아가씨들과 견제하게 만들고 관리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각비, 결근비, 생리 체크 등 자신들이 멋대로 만든 규칙에 따라 벌금을 물렸고, 2차를 갔다가 실수가 생기거나 구매자가 업소로 찾아오면 업주는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듯이 내게 욕을 하고 구매자의 술값과 2차비를 내 빚으로 올렸다. 2차를 거부하면 사창가로 팔아버린다거나 섬으로 보내서 평생 그곳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을 스스럼없이 했고, 선불금을 계산하지 못하면 부모에게 알리겠다면서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받아낼 것이라며 죽어도 선불금은 갚고 죽으라고 말했다.
선불금이 얼마든 상관없다던 집결지 업주는 통 큰 사람처럼 행세했다. 매상 잘 올리는 아가씨들을 관리하며 맛있는 밥을 사먹으라고 돈을 줬다. 선불금이 많아도 상관하지 않는 이유는 받아낼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조용히 사라지는 아가씨들이 있었다. 업주끼리 아가씨들을 교환하기도 했으며, 아가씨가 팔려가는 그곳이 어느 곳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외출을 할 때도 목욕탕을 갈 때도 아가씨들이 도망칠까 봐 나까이들과 함께 다니도록 하면서 감시했다.
친구와 나에게 선심 쓰듯 금목걸이를 선물했던 업주는 생리를 하면 솜을 넣고 찬물로 씻고 일하라고 했다. 아무리 솜을 넣어도 생리가 묻어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남자들에게 들키면 돈을 고스란히 돌려주었고, 심한 경우 솜이 질에서 나오지 않아 산부인과에 가서 빼는 경우도 있었다.
티켓다방 업주는 나에게 두세 시간 봐줄 테니 목욕을 다녀오라고 하며 다른 아가씨들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했다. 시간을 많이 하고 들어온 날에는 다른 아가씨가 먹고 있는 반찬을 내 앞에 당겨놓고 많이 먹으라며 엉덩이를 두들겼다. 그러나 아파서 병원에 가도 시간비를 내야 했고, 팔을 흔들어서라도 매상을 올리라고 했다. “그 몸으로 밥이 넘어가냐?”, “저렇게 뚱뚱한 줄 몰랐어.”라고 외모를 지적하며 다이어트 약을 잘 짓는다는 병원에 데리고 가 약을 먹이고 주사도 맞게 했다. 다이어트 약의 부작용으로 손이 떨리고 얼굴이 까매져도 상관하지 않고 강제로 다이어트를 시켰다. 업주는 차용증에 성매매로 인한 잘못은 내가 다 책임진다는 내용을 자필로 쓰게 만들었다.
업주들은 나에게 잠깐만 눈 딱 감으면 집도 사고 차도 산다고 회유했다. 밤에 일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면서 시집만 잘 가면 아무 문제 안 된다고, 이 정도 고생은 누구나 한다고 했다. 집도 사고 차도 산다던 그 말에 나는 잠시 힘들겠지만 조금만 견디면 가족들과 잘살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안고 살았다. 하지만 아무리 일을 해도 빚은 계속 늘어났고 몸은 망가졌다. 그리고 그들은 책임지지 않았다. 업주는 자기 말만 잘 들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지만, 어떻게 하면 집도 차도 살 수 있는지, 돈은 어떻게 하면 버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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