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사람이 모이는 곳
(서략)
사회과학자와 정책 입안자, 지역사회 지도자가 사회적 자본과 그 확충 방안을 논할 때 도서관과 같은 종류의 기관을 언급하는 일은 드물었다. 토크빌 이래 사회생활 및 시민 생활 분야에서 가장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냈던 사상가들은 볼링 게임이나 정원 가꾸기 동호회 등 자발적 결사체의 가치를 극찬하면서도 어떠한 물리적·물질적 여건이 갖추어졌을 때 사람들이 서로 어울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또 낮아지는지를 자세히 연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적 인프라는 우리가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데 배경과 맥락을 제공하며, 도서관은 우리가 가진 가장 필수적인 사회적 인프라 중 하나다.
도서관은 또한 가장 저평가된 사회적 인프라이기도 하다. 최근 수년간 몇몇 지역에서 양장본 도서 대출 건수가 다소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한편에서는 이를 두고 역사적으로 공공 교육 및 사회 고양을 뒷받침하는 장소였던 도서관이 이제는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다른 분야에 우선순위를 두는, 선거를 통해 뽑힌 몇몇 공무원들 또한 인터넷에 수많은 자료가 무상으로 널려 있는 마당에 21세기의 도서관에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지원을 이어가기는 어렵다고 논한다. 새로운 지식의 전당을 세우고자 하는 건축가들은 상당한 비중의 도서가 디지털화하고 또 상당한 비중의 대중문화가 온라인을 무대로 하는 시대에 발맞춰 도서관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공공 도서관, 특히 동네 단위의 소형 공공 도서관 다수가 보수와 개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사실 도서관이 마주한 진짜 문제는 사람들이 더 이상 도서관을 찾지 않는다든가 책을 빌려가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다양한 목적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탓에 공공 도서관 시스템과 직원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퓨 리서치센터가 2016년에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16세 이상 미국인 중 절반이 지난 한 해 동안 공공 도서관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동네 도서관이 문을 닫는다면 “지역사회가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도 전체의 3분의 2에 달했다. 실제로 많은 지역에서 도서관이 폐관 위기에 놓여 있는데, 도서관 건물 및 시스템이 자금 부족과 과사용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뉴욕에서는 도서관 도서 대출, 도서관 프로그램 참여 및 수업 횟수, 1인당 평균 도서관 이용 시간 등이 모두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뉴욕의 도서관 문화가 그다지 유별나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미국에서 손꼽힐 만한 수준도 아니다. 오히려 다른 여러 지역에서 두드러지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시애틀이 1인당 연간 도서 대출 건수에서 미국 내 1위를 달리고 있으며, 그 뒤를 콜럼버스, 인디애나폴리스, 산호세, 샌프란시스코, 잭슨빌, 피닉스가 따르고 있다. 콜럼버스에서는 프로그램 참여 또한 최고 수준으로 매년 주민 만 명당 다섯 명이 지역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샌프란시스코와 필라델피아가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고 보스턴과 디트로이트, 샬럿 또한 뒤를 따르고 있다. 뉴욕은 이 모든 항목에서 한참 뒤쳐져 있다.
뉴욕은 도서관 시스템에 지방정부가 주민 1인당 지출하는 예산에서도 낮은 순위를 기록한다. 뉴욕 공공 도서관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수에 따라 주민 1인당 32달러를 지원받는데, 이는 오스틴이나 시카고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주민 1인당 101달러를 지원받는 샌프란시스코 공공 도서관과 비교하면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미국의 시립 도서관 시스템은 오래 전부터 민관 파트너십을 통해 운영되었으며, 시 당국이 자선가들에게 의존해 도서관 업무 대부분에 자금을 조달한 지도 오래다. 그러나 왜 거의 모든 도시들이 지역 도서관에 공공 지원을 그토록 아끼는지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퓨 리서치센터에서 최근에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미국인들 중 90퍼센트는 도서관이 지역사회에 ‘매우’ 혹은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이 설문 보고서는 지난 10년간 “정부·교회·은행·기업 등 주요 기관들에 대한 대중의 평판이 낮아졌으나 도서관·군대·구급 대원 등은 예외”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중이 보내는 지지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년간 미국 전역 지자체들은 도서관에 책정한 예산을 삭감하거나 아예 도서관을 폐관했는데, 이는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이 도서관을 필수가 아닌 사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힘든 시기가 찾아오면 사치품에 책정한 예산을 가장 먼저 삭감하기 마련이다.
(중략)
그렇다면 왜 수많은 공무원들과 시민사회 지도자들은 도서관의 가치와 사회적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아마 도서관의 설립 이념, 즉 모든 사람들이 공동의 문화와 유산을 각자 필요한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념이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시장 논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일 테다. (사실 도서관이 옛날부터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사회 지도자들이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개발했을 리 만무하다) 또는 도서관이 현대의 지역공동체에서 이미 어떤 소임을 맡고 있음을, 혹은 충분한 지원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구실을 했을지를 이해하는 지도층 인사들이 아마 너무도 적기 때문일 테다.
미국 그리고 전 세계의 다른 많은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뉴욕에서도 동네 도서관과 그곳에 근무하는 사서는 놀라울 만큼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온갖 것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이 맡은 핵심 임무는 사람들의 정신을 고양하고 그들이 자신이 처한 삶의 여건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이다. 도서관은 주로 모든 연령, 모든 민족, 모든 집단에게 최대한 폭넓은 문화 자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그 맡은 바를 수행한다.
고령자, 특히 남편이나 아내와 사별하는 등의 이유로 홀로 사는 고령자들에게 도서관이란 북클럽·영화 상영·미술 및 음악 수업·시사 토론·컴퓨터 수업 등과 함께하는 문화센터이자 친목 도모의 장이다. 도서관 배 볼링 경기가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간다면 뉴욕의 다섯 개 자치구에 거주하는 고령자 누구라도 더 이상 홀로 볼링을 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고령자들은 노인복지센터에서 제공하는 여러 활동에 참여할 수도 있지만, 노인복지센터에서는 대개 연배가 비슷한 고령자들만 만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고령자들이 자기 자신을 그저 나이 많은 것밖에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기 쉽다. 반면 도서관은 많은 고령자들이 다른 세대와 교류할 수 있는 주요한 장소다. 또한 고령자는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자존감을 높일 수도 있으며, 늙어감을 두려워하는 엇비슷한 이들로만 구성된 공동체가 아니라 다채롭고 활발한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도 있다.
도서관은 영·유아 및 청소년에게 또 다른 도움을 준다. 영·유아들에게는 도서관에 오지 않았다면 읽지 못했을 책이나 이야기를 선물한다. 아이들에게는 도서관 회원증을 발급해주고 카드를 어떻게 사용할지 스스로 선택하게 해 조금씩 독립성을 기르도록 돕는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놀기보다는 공부를 하거나 조용히 친목을 다지기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안식처이자 보호소가 되어준다. 사서들은 학생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미술과 과학·음악·언어·수학 등을 가르치는 방과 후 수업을 진행한다. 무언가 색다른 걸 찾고 있지만 아직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책이나 작가 혹은 처음 접해보는 장르를 소개해주기도 한다. 도서관은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공공물을 빌리거나 조심히 사용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다른 사람들도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제자리에 돌려놓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가르침으로써 그들이 책임감을 기르도록 돕는다.
더불어 도서관은 가족과 양육자에게도 도움을 준다. 도서관은 갓난아기나 어린아이를 홀로 돌보는 데 지쳤거나 외롭고 단절된 기분을 느끼는 초보 부모, 조부모, 돌보미 들에게 사회적 공간 그리고 다른 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활동 프로그램들을 제공한다. 도서관은 사람들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돕고, 도서관 수업이 아니었더라면 서로 모르고 살았을 이웃들 간에 지지망을 형성하는 데 일조한다. 도서관은 배우고자 하는 부모나 배워야 하는 부모들에게 양육법을 가르쳐준다. 도서관은 밤늦게까지 혹은 주말에도 일하는 부모들, 어린이집에 보낼 돈이 없는 부모들을 위해 어린아이들을 보살핀다. 도서관은 아이들이 제대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족에게 심어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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