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겠습니다
회사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돌리기 전에 예상했던 어려움은 이런 거였다. ‘이걸 왜 나한테 줘?’ 하는 눈빛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래서 최대한 보수적으로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만 청첩장을 주기로 했고, 줄까 말까 싶으면 안 주는 쪽으로 하객 명단을 만들었다.
‘왜 나는 안 줘?’ 때문에 곤란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물며 그렇게 묻는 사람이 빛나 언니일 줄이야. 빛나 언니라니. 지난 몇 년간 머릿속에 떠올려본 적조차 없는 이름이었다.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언니는 꽤 오래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빛나 언니가 메시지를 보내온 건 지난주 수요일 퇴근 무렵이었다. ‘구재랑 결혼한다며?’로 시작된 메시지는 ‘동기 커플 1호 탄생!’이라는 호들갑에 이어 ‘왜 나한테는 이야기 안 했어’ ‘서운하다’ ‘빨리 청첩장을 달라’는 투정 조의 요청으로 줄줄이 이어졌다. 이 언니랑 나랑 이렇게 친했나 싶어 대화창을 올려보니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무려 삼년 전이었다. 삼년 동안 아무 교류가 없었는데 이제 와서 왜?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재와 내가 하객 명단을 만들 때 세운 기준은 ‘이 사람이 결혼한다면 내가 기꺼이 결혼식에 갈 것인가?’였고 그 기준에 빛나 언니는 전혀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첩장을 줄지 말지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먼저 달라는 사람한테 안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구태여 이 언니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기는 싫고 해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언니, 안 그래도 이번 주 금요일에 동기들 몇몇 모여서 술 마시기로 했어요. 그때 나눠줄 테니까 와요. 오랜만에 다 같이 얼굴도 볼 겸.
속뜻은, 너랑 나랑은 단둘이 볼 사이는 아니고 동기 그룹으로 묶어서 퉁 치겠다는 말이었다. 사실 동기 모임에도 부를 생각이 없었지만 어쩌다 이야기가 나오게 됐으니 오라고 한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언니는 눈치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금요일? 내가 금요일엔 선약이 있는데.
내가 ‘그럼 안 되겠네요’ ‘아쉽네요’라고 채팅창에 입력하고 엔터키를 누르려던 순간, 언니의 메시지가 또다시 도착했다.
우리 둘은 따로 봐야지. 다음 주 화요일이나 수요일 점심 어때?
이 언니는 친하지도 않은 내 청첩장이 왜 그렇게 받고 싶은 걸까. 그렇다고 구재랑 친한 건 더더욱 아닌데. 주말에 결혼식 다니는 거 귀찮지도 않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화요일과 수요일 둘 다 안 된다고 하자, 언니는 다시 목요일과 금요일 중에 고르라고 했다. 금요일은 결혼식 이틀 전이었으므로 얼떨결에 목요일을 골랐다. 이로써 나는 결혼식 사흘 전까지 청첩장 약속을 잡은 사람이 되었고, 하객 한명을 추가로 얻었으며, 청첩장 한 장과 점심시간 한 시간, 그리고 밥값 만오천원가량을 소비하게 될 예정이었다.
나와 구재는 사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결혼준비의 막바지 단계로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예식 당일 식사를 뷔페로 할지 코스로 할지, 꽃장식 옵션을 A로 할지 B로 할지, 웨딩사진의 원본과 보정본을 몇장이나 받을지 등등. 결혼준비는 매일매일 선택해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고 그 와중에 전셋집도 구하러 다니고 신혼여행도 준비해야 했다. 이토록 정신없는 사개월을 보낸 끝에 가장 정신없는 청첩장 배포 단계에 와 있었다. 매일 점심 저녁으로 사람들을 만나 인사하고 밥을 사야 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남은 세부사항들, 이를테면 축가 MR 음원이라든지 답례떡 픽업 시간 같은 것들을 계속 체크해야 했다. 언니는 결혼식 일주일 전의 예비부부가 얼마나 경황없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럴 때는 말로 축하해주고 눈치껏 신혼여행에 다녀와서 보자고 하는 센스도 필요하다. 빛나 언니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일본식 덮밥집에서 빛나 언니를 만났다. 거의 삼년 만이었다. 같은 회사여도 규모가 제법 큰데다 다른 층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일로 엮이지 않는 한 마주치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메뉴판을 골똘히 들여다보던 언니는 에비동을, 나는 사케동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자 언니가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면서 말했다.
“우와, 여기 새우 진짜 많이 준다.”
나는 언니 앞에 놓인 그릇을 건너다봤다. 아래 깔린 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우튀김이 빼곡했다. 하나, 둘, 셋…… 보이는 것만 해도 여섯 개였다. 언니는 활짝 웃더니 손뼉까지 짝짝 소리가 나게 쳤다.
“이렇게 새우 많이 주는 데는 처음 봤어. 여기 너무 좋다. 그치?”
나는 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언니가 특 에비동 시켜서 그런 거잖아요.”
“응?”
스페셜 메뉴판에 있는 특 사이즈를 언니가 콕 집어서 시킨 것이었다. 그걸 보고 나도 특 사케동이 먹고 싶어졌지만, 지난 주말 본식 드레스 가봉 때 앞으로는 살이 찌거나 빠져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들어서 일반 사케동으로 시킨 거였다.
“특으로 시킨 거 아니었어요? 원래 많이 나오는 거.”
“아 참, 그렇지.”
언니는 긴 생머리를 양손으로 한데 모아 잡더니 한쪽 방향으로 다시 늘어트리면서 말했다.
“너무 많아서 다 먹을 수 있으려나 몰라.”
그러더니 날 한번 바라보고 무구하게 웃었다.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졌다. 언니랑 마주 앉아 있을 때면 곧잘 느끼게 되는 감정이었다. 잊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갑갑증이 나기 시작했다.
(중략)
키보드 밑에 깔려 있던 흰 봉투를 발견한 건 빛나 언니와 한정식을 먹고 두달쯤 지난 시점이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책상을 닦으려고 키보드를 들지 않았으면 아마 계속 모르고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손바닥만 한 봉투를 열자 “우리 결혼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카드가 나왔다. 빛나 언니의 청첩장이었다. 이게 뭐야. 밥도 안 사고 그냥 이렇게 던져놓고 간 거야? 청첩장이 무슨 피자집 전단이야? 나는 원래 빛나 언니의 결혼식에도 참석하고 축의금도 오만원 정도 낼 생각이었다. 똑같은 사람이 되기는 싫었으니까. 정식으로 시간 내서 청첩장을 준다면 분명 그렇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쯤 되자 더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라면, 나라면 정말 이렇게는 안 해. 손에 쥐고 있던 텀블러의 뚜껑을 열어 청첩장 위에 세차게 내려놨다. 뚜껑에 묻어 있던 커피가 새하얀 청첩장 위에 동그란 형태로 번졌다. 나는 텀블러에 남은 아이스커피를 얼음째 씹어 마셨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렸다.
25,000(축의금 대신 먹은 밥값) - 13,000(내가 청첩장 주면서 산 밥값) = 12,000
이제는 남편이 된 구재에게 내 계획을 들려줬다. 주말에 함께 들른 백화점의 생활용품 코너에서였다. 나는 언니에게 받은 만큼만, 딱 만이천원짜리 선물을 사서 축의금 대신 줄 거라고 했다. 듣고 있던 구재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응, 난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그냥 내가 내줄게.”
나는 구재를 가만 쳐다봤다. 연애 기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연봉을 모르고 있었다. 여느 회사가 그렇듯 우리 회사도 자신의 연봉을 누설하면 해고할 수 있다는 사규가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준비하면서 어쩔 수 없이 서로가 모아둔 재산과 연봉을 공개해야 했다.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말하는 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가족오락관 찍는 것 같다는 농담을 하면서 웃고 있었다. 셋, 하던 그 순간, 나는 구재와 내가 외치는 숫자의 앞자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천만원, 정확히 천삼십만원 차이였다. 나보다 세전 기준 천삼십만원을 더 받는 구재는 당연히, 모아놓은 돈도 나보다 훨씬 많았다. 구재 역시 당황한 눈치였다. 생각보다 큰 차이가 나자 자기도 민망했는지 이렇게 말했었다.
“네가 이년 동안 백오피스에 있어서 그랬나봐.”
그래, 그게 맞는다고 치자. 그러면 나는 왜 이년 동안 거기에 있었을까. 이력서에 빼곡했던 내 모든 경력이 전략기획팀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내가 일을 못해서 그랬나. 그런데 시켜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까. 무엇보다 지금은 같은 부서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연봉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나야 할까. 구재가 일을 잘해서? 대체 얼마나 잘하길래? 딱 천삼십만원어치만큼?
“지금 뭐라고 했어?”
“축의금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해. 그까짓 오만원 내가 내준다고.”
“내가 지금 돈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
어째서인지 나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빛나 언니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에비동에 새우가 빼곡하게 들어 있는 건 가게 주인이 착해서가 아니라 특 에비동을 주문했기 때문인 거고, 특 에비동은 일반 에비동보다 사천원이 더 비싸다는 거. 월세가 싼 방에는 다 이유가 있고, 칠억짜리 아파트를 받았다면 칠억원어치의 김장, 설거지, 전 부치기, 그밖의 종종거림을 평생 갖다바쳐야 한다는 거. 디즈니 공주님 같은 찰랑찰랑 긴 머리로 대가 없는 호의를 받으면 사람들은 그만큼 맡겨놓은 거라도 있는 빚쟁이들처럼 호시탐탐 노리다가 뭐라도 트집 잡아 깎아내린다는 거. 그걸 빛나 언니한테 알려주려고 이러는 거라고, 나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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