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장
오후 두 시쯤 ‘경일 703’ 밴드에 새 글이 올라왔다. 닉네임 ‘여행자’의 글이었다. 반창회 밴드인 만큼 대부분 실명을 썼고, 어쩌다 닉네임으로 가입하더라도 곧 누군지 알게 됐다. 여행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닉네임이었다.
초대장
벗들에게
나는 이제 이곳에서의 여행을 끝내려 하네.
그대들이 이 초대장을 보게 될 때엔 이미 떠난 뒤일 걸세.
하지만 너무 놀라거나 서운해하지는 말게나.
내 삶은 또 다른 곳에서 계속될 테니.
벗들은 조의금 대신 우리가 함께했던 그 시절 추억 한 줌씩들
가지고 와 놀다 가게나.
빈소: ○○대 의대 부속병원 장례식장 201호실
발인: 4월 26일 금요일 오전 7시
초대장이란 첫 글귀를 보았을 때 대부분은 개업 초대장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회사를 그만두고 치킨 가게라도 열었나 보군. 월급쟁이 마흔아홉 살은 승진이거나 퇴직이라는 갈림길 앞에 서있기 쉬운 나이였다. 그동안 소식 한번 없다 개업 초대장을 보내려고 밴드에 가입했으면 실명으로 하는 매너쯤은 있어야지. 각자 처한 상황에 걸맞은 감정을 느끼며 읽던 사람들은 곧 어리둥절해졌다. 개업 초대장이 아니라 죽음을 알리는 부고장인 까닭이었다. 발인은 다음 날이었고, 조문할 시간은 그날 저녁뿐이었다.
또 나이를 들먹이자면, 마흔아홉은 친구의 부고를 받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 부양해야 하는 처자식과 아직 살아 계신 부모님이 있기에 결코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없다. 설사 죽더라도 남은 가족에게 힘이 될 조의금 대신 추억 따윌 가져오라고 여유를 부릴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어찌 죽은 자가 자기 부고를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익명의 초대장을 장난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연수 같은 데 가서 중, 고딩 때처럼 유서나 묘비명 쓰기 따윌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며칠째 계속되고 있는 미세먼지 탓에 낮인지 밤인지 모를 날씨 따라 맛이 살짝 갔거나.
- ㅋㅋㅋㅋㅋ 미친… 여행자가 누구여?
- ㅋㅋㅋㅋ 지 부고장 올린 놈이 누구냐?
- 장난칠 여유도 있고 팔자 좋네
- 그래도 이런 장난은 아니지
- 장난 아니고… 허구임.
- 죽을래? 너 누구야?
- 여행자, 실명 밝혀라
- 나 상만이야.
- 지상만?
- 허구가 뻥쟁이 허구야?
- 그래. 허구가 어젯밤 운명했어. 고인이 미리 써 놓은 글을 올린 거야. 아이디는 허구 거고. 부디 허구의 마지막 길을 함께해 주기 바란다.
잠시 댓글 창이 잠잠해졌다. 허구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죽음을 대신 전하고 있는 지상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반 친구들의 기억 속에 상만은 허구의 똘마니로 저장돼 있었다. 여전히 뒤치다꺼리라니. 그 순간 친구들은 허구의 죽음이 아니라 30년의 세월도 바꿔 놓지 못한 상만의 처지에 애도를 표할 뻔했다.
- 갑자기 왜? 사고야?
- 저 글 허구가 써 놓았다니 사고는 아닌 모양인데. 지병이 있었나?
- 유가족은?
- 지상만 대답해라
- 그동안 뭐 하고 지냈냐?
지상만은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초대장을 다시 읽은 사람들은 끼리끼리의 단톡방으로 옮겨 가 대화를 이어 갔다. 누군지 알고 보니 부고 내용도, 죽음을 대하는 방식도 참으로 허구다웠다. 그들이 같은 교실에서 지냈던 시절 허구는 이름 대신 뻥쟁이로 불렸다.
그들의 모교 경일고는 비평준화 지역인 제천에 있었다. 명문대 합격률이 학교 명성을 좌우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신설 사립학교였던 경일고는 가난한 수재들을 공략하기 위해 성적이 전교 10등 안에 드는 학생에게 수업료는 물론 기숙사와 독서실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기숙사 정원은 학년당 30명이었지만 10등 밖 아이들은 기숙사비를 따로 내야 했다. 학교는 학생들의 경쟁심과 학구열을 부추기기 위해 학기마다 성적순으로 기숙사를 재배정했다.
밴드 이름 ‘경일 703’은 7회로 졸업한 3반이란 뜻이다. 2학년 때 문과 3반에서 만난 그들은 3학년까지 그대로 올라갔다. 허구가 전학 온 건 2학년이 시작된 이튿날이었다. 키가 크고 얼굴이 흰 아이가 담임과 함께 교실로 들어왔다. 교복 자율화 조치가 학교장 재량으로 바뀌자 경일고는 교복을 부활시켰다. 교복을 입은 전학생을 본 아이들은 자기 학교 교복이 저렇게 멋진 것이었나 하는 얼굴로 새삼스레 자신과 옆의 아이를 살폈다. 그러다 후줄근한 교복과 검게 타고 여드름이 울긋불긋 돋은 서로의 얼굴을 보곤 시선을 돌렸다.
“난 허, 구라고 해. 외자 이름이야. 앞으로 잘 부탁한다.”
허구가 ‘표준어’로 말했다. 강원도와 경북 접경에 있어 투박한 말씨를 쓰는 아이들은 간지러움과 선망을 동시에 느꼈다. 그 탓에 특이한 이름을 듣고도 웃을 때를 놓쳤다. 아쉬움을 느끼고 있을 때 뒷자리 누군가가 말했다.
“허구? 뻥이란 말여?”
그 자리에서 허구의 별명은 뻥쟁이가 됐다. 아이들의 선망을 받았던 흰 얼굴, 큰 키, 나긋한 말씨는 순식간에 만만해 보이는 요소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무엇보다 허구의 전학 사유를 궁금해했다. 경일고 학생들은 시외에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학교에 다니기 위해 시내에 있는 친척 집에 얹혀 지내거나 자취를 했다. 서울은 제천역에서 기차로 세 시간 이내 거리였지만 대학 갈 때나 꿈꿔 볼 수 있는 동경의 도시였다. 성적이 안 돼도, 집에서 보내 줄 능력이 없어도 아이들은 하나같이 서울을 열망했다. 그런 마당에 허구가 왜 서울에서 제천으로 전학 왔는지 궁금해하는 건 당연했다.
“별거 없어. 부모님이 공기 맑고 경치 좋은 곳에서 살고 싶어 하셔서 이사 온 거야.”
허구의 대답에 아이들은 ‘그게 말이 돼?’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고인 웅덩이 같은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 남는 것은 실패나 다름없다고 여겼다. 아이들은 허구가 학교를 옮길 수밖에 없는 사고를 쳤을 거라고 추측했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왔을 정도면 큰 사고일 터이다.
“맞아. 실은 그래서 전학 온 거야.”
허구는 순순히 실토했고 점심시간이면 전학 사유와 얽힌 이야기를 펼쳐 놓곤 했다. 말초신경을 흥분시키는 로맨스와 폭력이 뒤섞인 내용이었다. 로맨스는 몰라도 폭력은 허구와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됐다. 어제와 오늘이, 그리고 오늘과 내일이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아이들은 서울이라는 꿈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무협소설 같은 이야기에 열광했다. 서울에 가면 자신들에게도 그와 같은 일이 펼쳐질 것 같았다. 어쩌다 이야기의 개연성을 따져 가며 진위 여부를 캐는 아이가 있으면 허구는 한발 슬쩍 물러섰다.
“재밌자고 하는 이야기에 깐깐하게 굴기는. 얘들아, 뭐 먹으러나 가자.”
그러곤 아이들을 매점으로 몰고 가 빵이나 과자 등을 안겼다.
월요일이면 휴일에 허구와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놀거나 여자애들과 미팅한 이야기가 교실 안을 맴돌았다. 물주는 언제나 허구였다. 은밀하게 불리는 그의 또 다른 별명은 ‘호구’였다.
한 달이 돼 가도록 허구와 한 번도 어울리지 않은 유일한 아이는 지상만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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