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덴마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작가 아너슨, 실존주의 철학자 키어케고어, 또 국제적으로는 그보다 조금 덜 알려진 시인이자 역사가인 그룬트비를 배출했다. 이 스칸디나비아 반도 끄트머리에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인물이 또 한 사람 있다. 바로 크리스튼 콜이다. 콜은 19세기 후반 덴마크 교육의 정신적 근간과 형성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 어느 곳의 교육 현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여전히 의미가 크다.
콜은 구두 제조공의 아들로 태어나 훗날 교사가 된 인물이다. 그는 덴마크 자유학교와 평민대학시민대학으로도 번역할 수 있으나, 다른 나라의 시민교육과 구별하는 동시에 덴마크 교육 지형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평민대학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임. ― 옮긴이의 원형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870년, 54세로 생을 마감했을 때 그는 존경받는 평민대학의 교장이었고, 덴마크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평민대학 운동의 흐름을 이끌어 낸 지도자였으며, 수많은 자유학교와 평민대학 교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있었다.
이 책은 바로 이 콜이 어떤 사람이며 또 그의 어린이 교육 사상과 실천은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주고 있다. 콜이 주창한 초등학교 교육 모형은 덴마크 근현대 교육사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는 ‘자유학교운동’의 영감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덴마크의 자유학교란 무엇인가? 그 세계적 독자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덴마크의 자유학교는 국가의 전폭적인 자금 지원을 받으면서도 교육 과정에 있어서는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유학교라 불린다. 자유학교에는 세 가지 핵심적인 특징이 있다. 첫째는 부모에 의해 운영된다는 점이고, 둘째는 이야기와 노래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이며, 셋째는 비분파주의적 기독교 전통비분파주의적 기독교란 특정 그룹에 국한된 소종파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통 가능하고 널리 설득력을 가지는 종교라는 점을 뜻함. ― 옮긴이에 고취되어 있다는 점이다.
콜은 저술가라기보다는 실천가였다. 책이라고는 자신의 사상을 기록한 『초등학교에 관한 나의 생각 Thoughts on the Primary School』 단 한 권만을 남겼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읽게 될 이 책이다. 어린이 교육에 관해 콜이 지닌 ‘진보적’ 입장에 대해서는, 그것이 이미 20세기 존 듀이J. Dewey에 의거한 ‘진보주의 교육’ 운동 훨씬 이전에 형성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그 진가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 문화의 획일화와 세계화, 국가 단위의 통제, 교육의 상업화와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문화와 교육이 또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 앞에서, 진실하고 참된 교육에 대한 믿음을 근간으로 하는 콜의 사상이 주는 시사점은 매우 크다.
이 책은 전 세계 독자들에게 콜의 사상을 소개하기 위해 출간된 영역본과 더불어 콜의 생애와 그의 교육 사상과 실천을 다룬 탁월한 글 두 편을 함께 묶어 실었다.
번역 작업을 통해 우리 시대에 특히 그 중요성이 부각되어 있는 콜의 자유교육 사상을 여러 독자들과 나누게 되어 참 기쁘다. 모쪼록 이 책이 어린이 교육에 대한 생각과 토론을 위한 화두를 던지며, 전 세계 곳곳의 교사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인드라 쿨리히Jindra Kulich)
1장
평민의 아이에서 평민의 교육자로
‘참 특이한 사람’, ‘덴마크의 소크라테스’, ‘평민을 위한 교육자’, ‘마음을 울리는 탁월한 연설가’ 등 콜과 동시대 사람들이 그를 평가한 말들은 그가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실제로 그에게는 남다른 면이 있었다. 그는 교육과 양육에 대한 덴마크의 기본 입지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동안 교육당국의 권한 아래 있던 학교의 선택, 교육 과정, 평가 등의 문제를 부모의 손으로 넘겨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의 이런 생각들은 합리주의 교육 철학에 의거하여 덴마크 교육에 결정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던 교육당국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힌다. 당시 교육 과정과 그 유용성, 학습의 성과를 평가하는 독점적 권력은 바로 정부 교육당국이 쥐고 있었다. 평가 역시 당연히 합리주의 교육 철학의 입장을 견지했던 교육당국이 정해 놓은 교과서를 학생들이 얼마나 달달 외우느냐를 기준으로 삼았다. 자주적 의사 표현, 명랑함, 삶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용기 등과 같은 덕목들은 합리주의적 교육의 틀에는 걸맞지 않는 가치들이었다.
그렇다면 콜 당대의 합리주의적 교육과 양육upbringing, 양육이란 문화의 세계로 이끌어 들이기 전, 유기체 자체의 성장 리듬에 맞추어 도움을 제공하는 행위를 일컫는 개념이다. ― 옮긴이의 대상은 누구였을까? 학생의 90퍼센트 이상은 농민이나 장인 출신으로 사회적으로 보아 하위 계층에 속하는, 다름 아닌 평민들이었다. 관료들은 이들을 자기 아이들의 교육과 양육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몸 하나 책임질 능력도 없는 사람들로 여겼다. 그들의 기준에서 볼 때, 이 무지한 평민의 교육을 전문가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결론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국가가 그 강력한 통제력으로 인간을 억누를 수만은 없음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는 언제나 집단적 ‘진리’라는 허상에 맞서는 개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튼 콜은 이같이 합리주의가 부흥하던 시대에 나타난 인물이다.
덴마크 학교 전통의 근간을 이루는 자유라는 덕목의 관점에서 볼 때, 콜이 그토록 핵심적이고 중요한 위상을 차지했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바로 그가 종교와 교육 부문에서 자유를 위한 투쟁에 열렬히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그는 평민을 정신적, 영적 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킬 방법이 있음을 확신했다. 그는 당시의 종교와 교육이 지배 권력의 하수인으로 평민의 정신적 자유를 억압한다고 보았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되기까지 콜은 오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콜의 삶은 그의 청소년기의 환경, 그 당시의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배경뿐만 아니라,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그의 인간적 소양의 총체적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덴마크 학교에 자유의 가치가 뿌리내리도록 하는 데 핵심적인 공헌을 한 평민의 교육자가 되기까지 그의 세계관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용기를 불어넣으며 추동했던 인물들과의 만남을 중심으로 연대기적으로 이야기를 풀어 본다.
콜의 어린 시절: 그가 사랑했던 ‘특이한’ 어머니
크리스튼 콜은 여섯 형제 중 장남이었다. 그의 부모는 작은 마을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티스테드Thisted에서 솜씨가 뛰어나다고 알려진, 존경 받는 구두공이었다고 전해진다. 콜은 어머니에 대해 열심히 일하고 머리가 좋으며 자기 방식대로 삶을 이끌어가는 ‘특이한 분’으로 회상했다. 그의 어머니는 이웃이나 친지들과의 잦은 교류나 여타 사회 활동에 참여할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면서도, 이웃이나 친지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언제든지 나서서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1866년, 콜은 ‘베네뫼데드Vennemødet’ 즉‘그룬트비의 친구들 모임’에서 자신이 평민 교육자로 성장하는 초기 단계에 어머니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었다. 아이들끼리 서로 다투거나 괴롭힐 때면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들을 다시 쾌활하고 기쁘게 해 주었던 것이다.
콜이 어머니를 “특이한 분”이라고 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의미에서다. 그녀는 무리에 섞여 지내지 않으면서도,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즐거움과 활력을 회복시켜 주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룬트비의 친구들 모임’에서 콜은 어머니가 신앙적 물음에 몰두한 분이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그 지역에서 시무하던 합리주의 신학을 추종하던 성직자보다 교구 목사인 한스 에어베크Hans Agerbek를 더 좋아했는데, 그의 설교는 따뜻하며 사람의 마음을 향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점에서 역시 그녀는 마을 대다수 사람들과 입장을 달리했고, 에어베크에 대한 특별한 호의를 서슴없이 표현했다. 훗날 콜이 다니던 초등학교에 에어베크 목사가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콜은 그때 그의 설교를 통해 큰 행복을 느꼈고, 그래서 에어베크 목사를 찾아갔다. 에어베크 목사를 만나러 갔을 때 이웃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자리를 함께했는데, 이들은 어린 콜에게 옛날이야기와 전설, 유령 이야기 등을 해준다. 이 경험을 통해 콜은 상대에게 열린 마음과 따뜻함 그리고 집과 같은 편안함이 사람 사이 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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