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밝히는, 고독한, 무한한,
늘 그 자리에 있는, 비밀스러운, 소중하고
쓸모없으며 썩지 않는 책들로 무장한
도서관의 말들
001
그는 미안한 표정으로 내게 돌아가라고 손짓하며
여성이 도서관에 들어가려면 대학 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소개장을 소지해야 한다고 유감스럽다는 듯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민음사, 2016)
1928년 가을, 강연을 준비하던 버지니아 울프는 필요한 자료를 찾아 근처 도서관에 갔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출입을 제지당한다. 마음속으로 분노와 저주를 퍼부어 보아도 굳게 닫힌 도서관의 문은 여전히 높고 견고하기만 하다. 1789년 프랑스 시민 혁명을 거쳐 19세기 후반부터 제한적으로 시작된 여성 참정권이 영국에 도입된 해는 1918년. 지금처럼 누구나 무상으로 도서관을 이용하기까지는 여성 참정권 투쟁의 역사만큼이나 길고 지난한 시간과 희생이 필요했다.
당시의 환경을 이해하면 “여성이 글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 실로 절실하게 느껴진다. 돈과 방이라면 이십 대부터 내게도 절실히 필요한 두 가지였다. 얇은 문 사이로 가족의 목소리와 텔레비전 소리가 와글와글 들리는 곳에서는 도무지 글을 쓸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자니 기본 오천 원인 음료 한 잔 값을 지불하고 앞으로 뭐가 될지 모를 글을 쓴다는 게 왠지 아깝기만 했다. 그럴 때 찾은 곳이 바로 도서관이었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굳이 마시고 싶지 않은 음료를 비싼 값에 사지 않아도 되고, 귀에 거슬리는 주변 사람이나 배경 음악도 없고, 글을 쓰다 자료가 필요하면 그때그때 서가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도서관은 언제나 사유의 한계를 넘어서게 해 주었고, 내가 방문한다기보다 나를 맞이해 준다는 기분이 드는 유일한 장소였다. 이 환대가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도서관에 갈 때마다 떠올린다.
002
나는 늘 낙원을 도서관으로 생각했어요.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보르헤스의 밤』(마음산책, 2015)
꿈을 꾸면서 나는 생각했다. ‘지금 본 이것들을 글로 쓰면 좋겠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단편소설 하나는 나오겠군.’ 그런 결심이 섰다면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어딘가에 적어야 했는데, 정신을 차렸다고 착각한 나는 계속해서 글감을 따라 꿈속을 거닐었다. 잠에서 깬 후에 남는 거라곤 꿈에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기억뿐, 한 장면도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수가 싶지만 자주 있는 일이다. 일부 강렬한 꿈은 오래도록 남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각성과 함께 산화되어 날아갔다. 걸었던 길, 보았던 풍경이 모래 위에 그린 그림처럼 밀물에 휩쓸려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어떤 작가는 머리맡에 필기도구를 두고 자는 모양이다.
현실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일은 매우 한정적이다.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 중에 내 눈으로 담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두 발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얼마나 될까. 평생을 살아도 어떤 장소는 오직 꿈과 상상으로만 가 볼 수 있다. 시립 도서관 사서로 시작해 국립 도서관 관장이 된 보르헤스는 시력을 잃고 낙원을 그린다. 가 본 적 없는 낙원을 생애 가장 행복했던 공간에 빗대어 상상한다. 도서관. 그가 평생을 읽고 쓰던 곳. 꿈에서조차 글쓰기를 간절히 원했던 작가의 무한한 기록이 그곳, 낙원 혹은 도서관에 있다.
003
어떤 책을 엉뚱한 자리에 꽂아 놓으면
20년 이상 실종되어 버리고 때로는
영구히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야.
― 폴 오스터, 『보이지 않는』(열린책들, 2011)
도서관 서가에 붙일 안내문을 만들던 중이었다. “다 본 책은 제자리에”라는 말이 좀 심심하게 느껴져 살짝 바꿔 보았다. “제자리에 꽂혀 있지 않은 책은 영원히 찾을 수 없어요.” 이를 본 동료가 너무 극단적인 것 아니냐며 웃었다. 그런가?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이용자와 사서를 하루 종일 헤매게 한 책은 언제나 원래 자리에서 불과 몇 칸 떨어진 곳에 있었다. 도서관 서가는 엄격한 규칙과 순서가 존재하는 곳이다. 순간의 실수로 잘못 꽂은 책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미로 같은 곳에서 헛된 시간을 보내고 결국에는 책 찾기를 포기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은 1967년 베트남전 징병을 앞둔 대학생이자 작가 지망생 애덤 워커의 이야기를 다多시점으로 쓴 장편소설이다. 회고록의 형식을 띤 일인칭, ‘나’를 ‘너’로 상정하고 쓴 이인칭, 사십 년이 지나 과거를 바라보며 쓴 삼인칭 소설을 읽는 독자는 어느 순간부터 주인공이 실제로 겪은 일과 그가 쓴 가상의 이야기를 헷갈리게 된다. 이 매력적인 책에서 내게 유독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주인공 워커가 실수로 책을 잘못 꽂아 도서관 관리자로부터 주의를 받는 부분이다. 가볍게 지나갈 수도 있을 일화였지만 희한하게 두고두고 떠올랐고, 나는 이 부분이 이 모호한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동안 실무에 영향을 준 것도 바로 이 장면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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