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쓰레기 섬
그레타가 겪은 일은 단순히 의학 전문용어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레타가 다른 아이들과 달라서 일어난 일로만 간주할 수도 없다. 그레타는 환경오염과 관련된 사태를 다른 아이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레타네 반 수업 시간에 해양오염 문제를 다룬 영화를 보여 준 적이 있었다. 태평양 남쪽에 멕시코보다 더 큰 크기의 쓰레기더미가 섬을 이룬 채 떠다니는 장면이 영화에 나왔다. 그레타는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반 아이들도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수업이 끝날 때쯤 선생님은 이번 주말에 결혼식 참석차 미국 뉴욕 근방으로 가야 해서 월요일 수업은 다른 분이 대신할 거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와! 좋으시겠네요!”라고 탄성을 질렀다.
쉬는 시간 복도로 나온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칠레 해안의 쓰레기 섬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은 저마다 오리털 재킷에서 아이폰을 꺼내들기 바빴다. 뉴욕에 가 봤던 아이들은 근사한 가게가 얼마나 많은지 늘어놓았다. 한 아이가 쇼핑하기에는 바르셀로나가 최고라고 하자 다른 아이 하나가 물건값은 태국이 정말 싸다고 말했다. 어떤 아이는 부활절 방학 때 엄마랑 베트남에 간다고 자랑했다. 그레타는 이 모든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영화를 본 날 급식 메뉴는 햄버거였다. 그레타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학교 급식실 안은 비좁고 후끈후끈한데다가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시끄러웠다. 접시에 놓인 기름진 고깃덩어리는 그레타에게 더 이상 음식이 아니었다. 감정을 느끼고 의식과 영혼을 가진 어느 생명체의 짓이겨진 근육이었다. 그레타의 망막에 쓰레기 섬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레타는 울기 시작했다. 집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 가는 대신 학교 식당에 앉아 죽은 동물을 먹어야 하고 유명 상표 옷과 화장품, 최신 핸드폰에 대해 떠들어야만 했다. 접시 가득 담긴 음식 맛이 끔찍하다고 투덜거리면서 조금 뒤적이는 시늉을 하다가 쓰레기통에 몽땅 버려야만 했다. 자폐증이나 식욕부진, 아니면 뭔가 다른 불편한 기색을 조금도 내비치지 않은 채 그렇게 해야 했다.
그레타가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레타의 생각은 틀렸고 우리가 옳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아주 쉬운 방정식, 즉 일상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해 주는 입장권 같은 방정식이 그레타에게는 아주 어려운 문제였다. 그레타가 아무리 애를 써도 방정식은 풀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외면하려는 것들이 그레타의 눈에는 보이기 때문이다.
그레타는 맨눈으로 이산화탄소를 알아차릴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이다. 그레타는 우리의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실가스땅에서 복사되는 에너지를 일부 흡수함으로써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기체. 화석연료 사용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전체 온실 가스의 약 6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음.가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오염층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쩌면 그레타는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 속 어린아이고, 우리는 임금님일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벌거벗고 있다.
우리 아이의 삶이 달린
문제에 대한 시선
세상 모든 부모가 내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질주하는 기차 앞에 몸을 던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본능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실상 아이를 위험에 빠뜨릴 기차가 다가온다고 치면 단 한 대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두 팔을 뻗어 아이를 낚아채는 겨우 10분의 1초 정도도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뭔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본 구출 장면처럼 단숨에 아이를 구해낼 수는 없다.
그레타가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고, 왕따를 당하는 것과 더불어 우리가 모르는 좀 더 중대한 일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일이 너무나 서서히 진행되어서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조차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실 그다지 어렵지 않았으나 우리가 인정하기에 너무나 불편한 진실이었다.
결국 우리가 보다 큰 문제로 시선을 돌리자 더 이상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일로 얻게 된 깨달음이 우리의 시야를 모두 차지하고,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그 일을 외면하라고 소리쳤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의 삶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이 중대한 일을 제대로 파악하기까지는 4년이나 걸렸다. 4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중대한 사태그레타가 거식증을 앓기 시작했던 2014년으로부터 4년 후인 2018년 8월에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를 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여기서 중대한 사태는 시후 위기와 지속 가능성 위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를 이해하게 되었다.
인류를 위협하는
지속 가능성 위기
내가 유명해진 것은 서른여덟 살 때였다. 물론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스웨덴 대표로 출전하기 전에도 어느 정도 알려지긴 했었다. 하지만 유명하다는 건 이름이 알려졌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선 그 차이를 설명하기 힘들다.
2009년 1월 중순, 스반테와 함께 한숨을 쉬며 달력에서 일정을 확인하고 있는데, 당시 에이전트가 이렇게 물었다.
“말레나가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스반테가 웃으며 대답했다.
“말레나는 오페라 가수입니다. 설마 말레나가 우승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죠?”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스웨덴 지역 예선 바로 다음 날에 스반테와 나, 그리고 〈아프톤블라뎃〉과 〈엑스프레센〉 소속 기자 네 명은 함께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갔다. 〈라 세네렌톨라로시니가 동화 신데렐라 이야기를 토대로 1817년경 완성한 오페라〉 공연 준비를 위해서였다. 초연이 닷새 뒤로 잡혀 있었다. 한마디로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일정이었다.
내 에이전트는 내게 며칠간이라도 개인 시간을 확보해 주려고 오페라 극단 쪽에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사정을 했다. 전혀 예상도 못했는데 내가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스웨덴 예선에 나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우승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프랑크푸르트와 빈, 스톡홀름 공연의 주연으로 노래하는 일정을 소화하면서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본선에도 참가해야 했다.
“할 수 있겠어요?”
“전부 다 할 수 있어요.”
에이전트의 물음에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스반테와 나는 그때까지 초연 축하 파티에 간 적이 없었다. 유명 인사가 모이는 파티에도, 다른 그 어떤 파티에도 참석한 적이 없었다. 사교생활을 꺼리는 사람들은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법이고, 나는 콘서트나 공연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갔다. 스톡홀름에서 공연할 때면 나는 관객들보다도 먼저 극장을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자전거 위에서 무대화장을 지웠다. 내가 주연인 공연이라 반드시 참석해야만 하는 경우를 빼고는 초연 축하 파티에도 가지 않았다. 아이들과 일. 스반테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은 그 두 가지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모두 그다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을 해 왔고, 또 이 책도 그렇게 쓰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더 중요한 일들에 대한 생각을 밝히려고 한다. 지구의 환경문제와 기후 문제는 세계의 무질서가 초래한 결과인 동시에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것을 무엇보다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지구온난화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서아프리카의 토양이 침식되고, 중동 지방은 메말라 가고 있으며, 태평양의 섬나라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서구 유럽에 스트레스성 질병이 만연하고 인종차별적인 분리가 일어나며 아동·청소년 신경정신과 환자가 날로 늘어나는 것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지구는 우리가 접하는 그래프와 도표를 통해 메시지를 던져준다. 북극의 빙하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지구는 지금 열병을 앓고 있고, 이 열은 세계도처에서 볼 수 있는,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 위기를 드러내는 지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사실 그 위기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이 미래의 생존을 위협하는 데서 발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게 지속 가능성 위기로 압축된다. 지속 가능성 위기는 대기오염과 생태계뿐만 아니라 경제체제와 정치 체계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를 인류 건강 상태의 핵심이 되는 문제로 이끌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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