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사를 다시 보는 움직임은 시대의 요청
우치다
시라이 씨의 저서 《영속패전론》은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인 2013년 3월에 나왔습니다. 이런 책을 젊은 세대가 썼다는 사실이 대단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전후 체제’의 내용연한耐用年限이 다했음을 절감했습니다. 전후 체제 안에서 오갔던 언설은 이미 현실을 설명할 만한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전후에 일본인이 눈을 돌리고 ‘없었던 일’이라며 계속 은폐해온 것이 차폐물이 부패하고 떨어져나가면서 차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라이 씨가 속한 세대는 그렇게 드러난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세대에게 ‘은폐 공작’은 다소나마 아직 유효합니다. 하지만 ‘벌거벗은 임금님’과 마찬가지로 젊은 세대의 눈에는 “일본은 주권국가가 아니잖아!”라는 인식이 당연해 보이는 듯합니다. 따라서 그 세대에서 전후사를 다시 보려는 움직임이 나오는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전쟁을 알고 있는 제1세대, 그러니까 전중파戰中派는 패전 경험의 본질을 은폐해왔습니다. 확신범처럼 그래 왔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너무나도 비참한 패전이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말이 안 되는 패배’였지요. 여타의 패전과 규모도 깊이도 다른 철저한 패배였습니다. 총괄하려 해도, 반성하려 해도 그럴 만한 체력이나 정신력이 없을 정도로 지고 말았습니다. 둘째는 전중파에게는 전쟁에 져서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기분이 흘러넘치고 있었습니다. 내 아버지 세대가 그렇습니다만 ‘져서 다행’이라는 기분이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바보 같은 놈들이 설쳐대지 않게 되었고, 평화와 민주주의의 나라가 되었고, 가난하긴 해도 꽤 밝은 사회가 되었으니 그걸로 좋다고 했습니다.
‘왜 패배했는가’라는 물음은 어딘가에서 ‘다음에는 이기겠다’는 마인드와 만납니다. ‘다음에는 미국을 이기겠노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왜 미국에 졌는가’라는 물음은 전경화前景化하지 않습니다. 전중파에게 ‘다음에는 이기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내셔널리스트조차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익의 우두머리들이 잇달아 CIA 요원으로 채용되고 말았으니까요. ‘져서 다행’이라는 낙천적 마인드가 만연해 있고, ‘왜 졌는가’를 추구하는 주체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의 귀결이라는 입장에서 패전 경험을 냉정하고도 리얼하게 정면으로 총괄하고자 하는 사업은 70년 동안 줄곧 무시되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전쟁 이야기는 이제 됐어. 다 끝난 일이잖아”라면서 당사자들이 꺼리는 바람에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렇게 지고 말았는지, 일본인은 패전으로 무엇을 잃었는지 등등의 물음을 제기하지도 못한 채 방치해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없었던 일’로 하려 해도 실제로 ‘무언가’는 그곳에 계속 남아 있습니다. 일본은 패전의 경험을 정면을 받아들이는 일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미국의 종속국이면서도 주권국가처럼 행동하고 있는 자기기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두고 시라이 씨와 같은 젊고 예리한 지성이 “이건 뭔가 이상하다”고 지적하기에 이르렀지요. ‘집안의 수치’를 당사자들은 보통 꺼내 보이려 하지 않습니다. 입을 연다 해도 딱지가 앉은 상처 부위를 열고 소금을 밀어 넣을 정도까지 나아가지는 않지요.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세대는 “이건 뭔가 이상하군요”라며 단호하게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도, 프랑스도, 이탈리아도 역시 패전 직후에는 패전을 전면적으로 총괄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이야기는 없었던 일로 해주지 않겠나”라고 말하는 세대가 퇴장한 후에야 “패배를 이런 식으로 정리하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고 말하는 세대가 등장했습니다. ‘전승국’ 프랑스도 독일에 협력한 비시 정부에 관한 역사 연구가 시작되기까지는 전후 4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일본은 전후 70년이 지나서야 겨우 “저 전쟁에서 일본은 무엇을 잃었는가. 잃은 것을 어떻게 은폐해왔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보면 집단이 갖고 있는 예지의 총량은 시대에 따라 바뀌지 않는 모양입니다. 다만 시라이 씨 같은 사람이 등장했음에도 아베 정권이 탄생한 지 2년 남짓 지나도록 전쟁 책임이나 패전 책임을 둘러싼 정치적 언설의 질이 더욱 저열해지고 있어 아쉽습니다.
시라이
과분한 평가를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영속패전론》을 쓰게 된 계기는 동일본 대지진, 특히 원전 사고였습니다. 전부터 이 나라에는 대단히 이상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이토록 빈틈이 많은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큰 충격이었습니다. 충격이라기보다 공포라고 말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조금만 운이 나빴다면 이른바 동일본괴멸 ― 그건 일본은 끝장이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 에 이르렀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요. 우연히 운이 좋아 피할 수 있었던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지요. 왜 이런 사회가 되고 말았을까 생각해보면 엘리트층의 열화 문제로 귀착합니다. 일본의 부르주아지는 전혀 존경할 수 없으며, 존경할 만한 부르주아지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더 깊이 생각해보면 ‘무책임한 패전 처리’와 마주하게 됩니다. 태평양 전쟁과 패전을 정말이지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같은 패턴으로 잘못을 되풀이합니다. 동일본 대지진 재해 후에 마루야마 마사오의 〈초국가 주의〉를 비롯한 논문을 읽고 전율을 느꼈습니다. 마루야마 세대를 대량으로 죽였을 때와 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고, 우리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나 할까요. 살해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본인은 진정한 의미에서 전쟁을 총괄하지 못했다는 말은 적잖이 들어왔습니다. 저의 역사 해석은 ‘패전’을 ‘종전’으로 바꿔 부르고 결국 패전을 속여온 점에서 문제의 핵심을 발견한 데에 특징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치다 선생은 《거리의 아메리카론》 후기에서 타이완 이야기를 하셨지요. 장제스의 동상이 중국 본토를 쏘아보고 있다고. 타이완과 중국은 전쟁을 하지 않기로 정해져 있는 데다 다행스럽게도 전쟁을 일으킬 마음도 없는 상태이지만, 다른 한편 오기라도 부리듯 계속 쏘아보고 있어서 큰일이라고 우치다 선생은 말하셨습니다. 공감합니다. 이것이 바로 일본에 결여된 태도이며, 현대 일본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큰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외교 전문가도 아니고 일본 전후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 테마로 글을 쓸 때 조금 망설이기도 했습니다만,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나라도 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하고 한판 붙어보기로 했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을까요? 누구도 말하지 않는 동안 사태는 점점 나빠지고 말았습니다.
우치다
그만큼 억압이 만만치 않습니다. “친미 노선과 미일동생 기축基軸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이외의 선택에 관하여 생각하는 것 자체를 억압합니다. 그들은 우리 같은 아마추어와 달리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보량이 많다는 이점을 과시하면서 “미일동맹 이외에 외교 전략의 선택지는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선택지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미일동맹 기축 이외의 선택지를 가능성으로조차 고려한 적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전쟁이 끝난 직후 소련이 홋카이도에 침입하여 일본의 동쪽 일부가 소련 통치 아래 놓일 가능성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 경우 동서로 분단된 일본은 어떤 전후사를 거쳐 왔을까요? 이러한 SF물 같은 상상은 한 번쯤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한국전쟁 때 북한군과 중국군이 한반도 전역을 제압하여 미군이 한반도라는 발판을 잃고 일본 열도가 국제 공산주의 세력과 싸우는 전선이 되었을 경우 일본은 어떤 정체政體가 되었을까요? 이런 상황 역시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사건의 사소한 입력 차이에 따라 일본의 정체는 현재와 비슷하게 되었을 수도, 전혀 다른 형태로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세계가 병행한다는 상상 또는 다원우주적인 상상을 할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현대 일본이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추는 데 어떠한 역사적 조건이 관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현대 일본이 왜 독특한지 아니면 왜 ‘이상한지’ 눈앞에 펼쳐지게 됩니다.
거꾸로 말해 미래도 사소한 요소의 변화에 따라 크게 바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라의 앞날을 안정시키고 싶다거나 장기적인 국가 전략을 세우고 싶다면 일본이 조우할지도 모르는 모든 위험 요소의 목록을 작성해두어야 합니다. 어느 곳의 부품이 약하고 어디에 구멍이 뚫렸는지, 또 어디에 금이 갔는지 등등을 잘 살펴야만 합니다. 시스템은 반드시 그런 곳에서부터 무너지니까요. 바꿔 말하자면 어떠한 허위나 기만을 무언가로 은폐함으로써 현재 겉으로 나타나는 안정 상태가 성립되었는지 살펴봐야만 합니다. 그것을 꿰뚫어 보는 일이 사회 지도층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의 지도층은 자신이 무슨 거짓말을 내뱉고 있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요. 내가 학생이었을 때에는 ‘나쁜 아버지’가 흔했습니다. 입으로 말하는 것과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전혀 다른 거짓말쟁이 아버지들 말입니다.
시라이
너구리 같은 아버지들 말씀이군요.
우치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는 어른의 교지狡智가 있었습니다. 다나카 가쿠에이1972~1974년 일본 총리 ― 옮긴이는 과격파 학생이 찾아오면 “요즘 같은 세상에 혁명을 하려고 하다니 상당히 장래성이 있다”면서 취직을 알선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은 청년들은 감격하여 그대로 에쓰잔카이다나카가 이끈 정치 단체 ― 옮긴이 청년부의 활동가가 되었지요. 그렇게 그는 배포가 크고 생각도 깊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본 열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일억 일본인 동포는 일종의 운명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돕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 아직 뿌리 깊게 남아 있었지요. 물론 너구리 같은 아버지들은 거짓말도 곧잘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뭔가 강령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기보다 어떻게든 모두 굶지 않고 평화로이 살면서 주머니 사정도 나아진다면 좋지 않으냐, 사소한 일로 쓸데없이 떠들지 말거라, 그렇게 하기 위해 사람도 배신하고 거짓말도 한다고 운운할 때의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런 나쁜 아버지들이 70년대까지 일본 사회를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세대는 그런 아버지들에게 형편없이 당하고 살았습니다. 도저히 맞설 수가 없었고 이길 수도 없었죠. 그래도 나중에는 이렇게 나쁘고 교활한 아버지라면 일본을 말도 안 되는 곳으로 이끌어 가지는 않으리란 의미로 “적이지만 훌륭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정치나 경제와 관련된 일은 몽땅 나쁜 아저씨들에게 맡기고 나는 대학에 가서 공부라도 해야지’라고 마음먹을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러한 아버지들이 미국이나 소련, 중국을 상대할 때에도 같은 교지를 구사하여 국익을 지켜주리라고 전망한 데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전공투* 운동이 완전히 파산한 후 대거 탈정치화하여 문학이나 록, 비즈니스로 향했는데 정치·경제의 일은 나쁜 아버지들에게 맡기자는, 체념과 안도가 뒤섞인 감정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아버지 세대가 정신을 차리는가 싶더니 일본의 공식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사라진 후 왠지 얼굴이 반질반질한 사람이 나타나 잔뜩 허세를 부리더군요. 처음 얼마 동안은 승진의 지름길을 달려온 사람들이라 얼굴은 반질반질해도 뱃속은 확실히 시커멓고 생각과 말이 매우 다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이야기를 해보고서는 얼굴만이 아니라 뱃속까지 반질반질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두 개의 혀를 활용하는 고등 기술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언제부터인지 혀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더군요. 세대교체란 천천히 진행되는지라 잘 알아챌 수 없긴 하지만, 표층은 변하지 않아 보여도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도층의 상판대기가 확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말의 두께나 두께를 담보하는 현실 경험이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깊이가 없습니다. 자신이 입에 담는 말이 어떤 역사적 문맥 속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어떠한 효과를 발휘할지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한 대로 기분에 따라 내뱉습니다. 아베 신조가 그 전형이지요.
*1960년대 말 대학을 중심으로 시작한 학생운동을 말하며 전공투는 전학공투회의 약칭이다.
시라이
그런 의미에서 아베는 결코 불성실한 인간이 아닙니다.
우치다
어떻게 보면 정직한 인간이지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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