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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학교 가기 전에 떼야 한다?
일곱 살 조카가 내 얼굴을 그리고 나서 날짜와 자기 이름을 써서 내민다. 특징을 쏙 잡아낸 아이 특유의 그림도 맘에 들거니와 힘주어 쓴 글씨를 보니 저절로 칭찬이 나왔다. 칭찬이 듣기 좋았는지 조카는 보란 듯이 내 앞에서 제 이름을 읽어내렸다.
대략 일곱 살이 되면 많은 아이들이 한글을 읽고 쓸 줄 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한글을 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읽기와 쓰기를 다져놔야 학교 공부가 수월할 테니 말이다. 한글 떼기는 가장 중요한 입학 준비인 셈이다. 심지어 네 살부터 한글을 가르치는 부모가 있다. 전집으로 된 한글 교재나 학습지를 판매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네 살이 되면 한글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일찍 한글을 배워야 그만큼 빨리 읽기를 시작할 수 있고, 그래야 아이의 어휘력이 풍부해져 책을 많이 읽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같이 아이의 읽기를 강조한다.
아이가 글을 배우기 전에는 부모가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는 부모 품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무궁무진하게 들을 수 있었다. 책은 아이에게 즐거운 놀이였다. 그런데 이렇듯 아이의 읽기를 강조하며 한글을 가르치고 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부모는 아이에게 혼자 읽으라고 하거나 그림책 말고 동화책을 권한다. 이제 아이에게 읽기는 혼자 해야 하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다. 막 한글을 뗀 아이는 제대로 읽는 연습을 시작해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빠르게 독서이탈이 시작된다.
조급한 읽기독립은 독서이탈의 완벽한 조건
국내에 출간되어 많은 독서교육 관련자들에게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준 책이 있다. 미국 터프츠대 교수 매리언 울프가 뇌과학 그리고 독서의 역사에 관한 방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쓴 《책 읽는 뇌》다. 매리언 울프 교수는 이 책에서 읽기가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 애써 만들어진 능력이며 서서히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아이가 글을 익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적정한 시기가 있다. 특히 만 5세 이전에는 신경세포 간의 연결이 충분하지 않아 스스로 책을 읽을 만큼 뇌가 발달하지 못한다. 일곱 살 이전에 글을 가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인간은 듣고 보는 능력을 타고난다.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아이들마다 편차는 있지만 두 돌이 지나면 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는 우리 유전자 속에 이런 능력이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읽기는 본능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능력이다.
인간의 뇌, 특히 아이들의 뇌는 가소성可塑性이 높다. 여기서 ‘소塑’자는 ‘흙을 빚는다’는 뜻이다. 인간의 뇌는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점차 필요한 능력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는 전략을 취한다. 마치 진흙 반죽 같다. 처음에는 말랑말랑한 진흙을 빚어 얼마든지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딱딱해진 진흙 모형을 수정할 수 없듯 뇌도 굳어버린다.
인간은 완성된 뇌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자라며 많은 상호작용과 반복을 통해 뇌가 완성된다. 아이가 글을 읽을 줄 안다고 단번에 ‘읽는 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을 만큼 ‘읽는 뇌’가 성장하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부모가 원하는 독서독립에 이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 책을 읽고 충분히 정보를 받아들이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진정한 독서에 이르려면 12세 무렵은 되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책보다 스마트폰이 더 친숙하고 유튜브로 모든 걸 즐길 수 있는 세대다. 가뜩이나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데다 영상을 보는 것에 길들여지니 점점 더 읽는 일이 낯설고 힘들다. 당장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어려움이 시작된다. 엄마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이가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한다며 한숨을 쉰다. 연산 실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스토리텥링 수학 때문이다. 문장으로 제시된 수학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 문제를 풀지 못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문해력이 부족해 제시문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자발성 없는 반복독서의 위험
최근 인기를 끈 어떤 책에서 독서력이 낮은 아이에게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책을 반복해서 읽히는 법을 제시한 적이 있다. 사실 반복독서는 아주 오래된 독서방법론이다. 우리 선조들은 한 권의 책을 소리 내어 수십 수백 번씩 읽었다. 반복해서 읽는 동안 처음에는 몰랐던 깊은 의미를 스스로 깨우칠 수 있다. 주변에도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고전을 일생 동안 반복해서 읽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젊을 때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알아가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자발성 없는 반복독서는 아이를 책과 더 멀어지게 하거나 사춘기 아이와 부모 사이에 골을 더 깊게 만들 위험도 있다. 사실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부모가 강요하지 않아도 알아서 반복독서를 한다. 좋아하는 책을 여러 번 읽어달라고 조르거나 글을 읽지 못해도 책장을 넘겨가며 그림이라도 반복해서 본다. 반복보다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마음이다. 나는 독서교육이 마치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를 하듯 극약처방이 아니라 즐거운 경험이 되어야 평생을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지속적인 관심이 읽기 능력을 키운다
독서교육에서 부모가 할 일이 있다면 어릴 때는 물론이고 독서독립에 이르기까지 아이의 읽기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는 것이다. 그리고 책 읽기가 아이에게 즐거운 추억과 경험으로 남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부모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아이가 이제 혼자 읽을 줄 아니까 알아서 읽겠지.’ 하고 뒤로 물러서는 일이다. 아이는 그저 한글을 읽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결코 아이의 읽기에서 손을 떼서는 안 된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부모가 아이가 글자를 익히고 나면 읽기에 수수방관한다. 그사이 아이들은 읽기를 배우자마자 읽기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과거처럼 독서 외에는 별다른 취미가 없는 시대가 아니다. 어릴 때 부모와 아이가 책으로 맺어온 관계는 아이의 읽기가 능숙해지고 스스로 책 읽기의 즐거움을 발견할 때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7~8세 시기는 독서독립을 준비하는 원년이다. 이때부터 10대 초중반까지 아이가 어떤 방식으로 책을 만났고, 책과 어떤 경험을 쌓았는지는 아이의 독서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평생 책 읽는 사람이 될 것이냐, 평생 책과 담을 쌓을 것이냐가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가 한글을 언제 배워야 할까를 두고 고심했던 때를 떠올려보자.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애썼던 순간을 기억해보자. 아이가 제 이름을 읽고 썼을 때 얼마나 기뻐했던가.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듯 아이의 읽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비슷한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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