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 신경림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아무도 우리는 너희 맑고 밝은 영혼들이
춥고 어두운 물속에 갇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밤마다 별들이 우릴 찾아와 속삭이지 않느냐
몰랐더냐고 진실로 몰랐더냐고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이토록 허술했다는 걸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이렇게 바르지 못했다는 걸
우리가 꿈꾸어온 세상이 이토록 거짓으로 차 있었다는 걸
밤마다 바람이 창문을 찾아와 말하지 않더냐
슬퍼만 하지 말라고
눈물과 통곡도 힘이 되게 하라고
올해도 사월은 다시 오고
아름다운 너희 눈물로 꽃이 핀다
너희 재잘거림을 흉내 내어 새들도 지저귄다
아무도 우리는 너희가 우리 곁을 떠나
아주 먼 나라로 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바로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뜨거운 열망으로 비는 것을 어찌 모르랴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보다 알차게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을 보다 바르게
우리가 꿈꾸어갈 세상을 보다 참되게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아름다운 영혼들아
별처럼 우리를 이끌어 줄 참된 친구들아
추위와 통곡을 이겨내고 다시 꽃이 피게 한
진정으로 이 땅의 큰 사랑아
공동체
─ 신용목
내가 죽은 자의 이름을 써도 되겠습니까? 그가 죽었으니
내가 그의 이름을 가져도 되겠습니까? 오늘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으니
나의 이름은 갈수록 늘어나서, 머잖아 죽음의 장부를 다 가지고
나는 천국과 지옥으로 불릴 수도 있겠습니까?
저기
공원에서 비를 맞는 여자의 입술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지면, 기도도 길을 잃고
바닥에서 씻기는 꽃잎처럼 그러나 당신의 구두에 붙어 몇 발짝을 옮겨가고……
나는 떨어지는 모든 꽃잎에게 대답하겠습니다.
마침내 죽음의 수집가,
슬픔이
젖은 마을을 다 돌고도 주인을 찾지 못해 누추한 나에게 와 잠을 청하면,
찬물이 담긴 주전자와
마른 수건 하나,
나는 삐걱거리는 몸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목소리로 물을 수 있습니다.
더 필요한 게 있습니까?
그러나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달라고 할까 봐.
꽃 핀 정원에 울려퍼지다 그대로 멈춰버린 합창처럼, 현관의 검은 우산에서
어깨에서…… 빗물처럼
뚝뚝,
낮은 처마와 창문과 내미는 손
위에서
망각의 맥을 짚으며
또,
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울까 봐.
그러면 나는 멀리 불 꺼진 시간을 가리켜 그의 이름을 등불처럼 건네주고,
텅 빈 장부 속에
혼자 남을까 봐. 주인 몰래 내어준 빈방에 물 내리는 소리처럼 떠 있는
구름이라는 물의 영혼, 내 몸속에서 자라는 천둥과 번개를 사실로 만들며
네 이름을 훔치기 위해
아무래도 죽음은 나에게 눈을 심었나 보다, 네 이름을 가져간 돌이 비를 맞는다.
귀를 달았나 보다, 돌 위에서 네 이름을 읽는 비처럼,
내가
천국과 지옥을 섞으며 젖어도 되겠습니까?
저기
공원을 떠나는 여자의 붉은 입술처럼, 죽음을 두드리는 모든 꽃잎이 나에게 기도를 전하는……
여기서도
인생이 가능하다면, 오직 부르는 순간에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사랑이 가능하다면,
죽은 자에게 나의 이름을 주어도 되겠습니까? d=그가 죽었으니 그를 내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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