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포노 사피엔스, 신인류의 탄생
신권력
정보 선택권을 쥔 인류의 등장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 화두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역시 4차 산업혁명이 가장 핫한 이슈이죠. 4차 산업혁명은 ‘혁명’이 시작되었다고 할 만큼 세상의 변화가 엄청나다는 뜻입니다.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빅 데이터, 토론, 자율주행차, 3D프린터 등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기술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다만 하도 많이 듣는 말들이라 이 기술들이 중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산업화된 건 없다 보니 막연하게 ‘앞으로 개발해야 할 미래 기술이구나.’ 정도로만 여겨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을 두루뭉술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잘 관찰해보면, 이 생소한 것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일상이 이미 혁명이다
먼저, 요즘 은행에 가는 일이 줄었습니다. 대부분의 은행 업무는 스마트폰으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은행 거래 건수의 80퍼센트 이상이 자동화기기와 인터넷으로 이뤄지고, 지점 거래 건수는 10퍼센트 이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점이 많이 필요가 없죠. 실제로 한국씨티은행은 2017년 127개 지점 중 무려 90개를 폐쇄하고, 광역별로 통합센터를 만들어 80퍼센트의 지점 폐쇄를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1년 만에 영업이익 7퍼센트 개선을 달성했다고 발표합니다. 이들뿐 아니라 많은 은행들이 10년 안에 지점 폐쇄를 할 것이라 예고하고 있습니다. 지점은 줄이고 인터넷 뱅킹은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유통산업은 어떤가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매출은 전체적으로 감소했으나 온라인 판매는 그 수도, 매출도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미국에서는 2017년부터 2018년 사이, 대형백화점의 3분의 1이 문을 닫았습니다. 미국 백화점의 상징이자 유통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125년 전통의 시어스Sears 백화점도 2018년 결국 파산하고 말았죠. 미국 경기가 초호황인데도 대형 백화점이 파산한 이유는 아마존Amazon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유통 때문입니다. 유통에도 혁명의 바람이 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2018년부터 온라인 거래가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며 연 매출 100조원을 돌파했습니다. 특히 모바일 쇼핑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방송산업은 더 심각합니다.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사 광고시장은 지난 10년 사이 무려 50퍼센트가 줄었습니다. 매년 매출이 5퍼센트씩 증가할 거라고 예상하며 5개년 운영 계획을 세웠는데, 5년 동안 시장 자체가 계속 줄어버리면? 회사가 망할 수밖에요. 우리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미국은 이미 엄청난 M&A와 파산, 매각이 방송계를 한바탕 쓸고 지나갔습니다. 이름 있는 지상파 방송국과 신문사는 거의 주인이 바뀌었고, 100년 전통의 〈타임Time〉도 결국 파산 후 인수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도 달라졌습니다. 여러분은 KBS를 많이 보시나요, 유튜브를 더 많이 보시나요? 그렇다면 앞으로 시청료는 어디다 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생소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혁명이라는 것은,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시장경제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은 아직 이 혁명에 조금도 개입하고 있지 않은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시장 혁명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시장 혁명의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엄청난 변화를 대비해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생존 전략을 짤 수 있고 개인은 미래 계획을 세울 수 있죠.
생물학적 한계가 무너지다
사실 원인은 아주 명확합니다. 바로 스마트폰 때문이죠. 직접적인 원인은 스마트폰 사용 후 소비 행동이 바뀐 탓입니다. 은행에 가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으니 지점 폐쇄가 가능합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물건을 살 수 있으니 백화점 판매는 줄어들고 결국 문을 닫게 되는 것입니다. 방송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송은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이라 굳게 믿던 인류는, 이제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프로그램만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류의 소비방식이 바뀐 것이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그런데 무서운 사실은, 이토록 빠르게 일어나는 변화가 모두 자발적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전 세계 36억 명의 인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2018년부터 ‘1인 1 스마트폰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2007년, 아이폰이 탄생한 후 불과 10년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어떤 교육기관에서도, 방송사에서도, 스마트폰을 사용하라고 교육하거나 계몽하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인구가 스스로 선택해 그 어려운 걸 굳이 배우고 익혔습니다. 이런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변화는, 다른 용어로 ‘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화가 무서운 것은 절대 역변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2022년에는 전 인류의 80퍼센트가 스마트폰을 쓰게 될 거라고 하니 앞으로 스마트폰 문명은 무조건 더욱 거센 속도로 확산될 것입니다. 결국 미래사회는 답이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로 나아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문명사회로 발전할 것은 명백해 보입니다. 그래서 스마트폰 기반의 디지털 소비 문명에 대해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특징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확산되는지에 대해 말이죠. 특히 이 문명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는 더욱 잘 알아야 합니다.
스마트폰이 만든 가장 큰 변화는 인류의 생각을 바꾼 것입니다. 생물학적 한계를 가진 인간이 생각을 만드는 방법은 정해져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생각을 만드는지는 이미 많은 학자들이 이론적으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 대표적인 학습 이론이 바로 복제 이론Meme Theory입니다. 정보를 보고 그것을 뇌에 복제해서 생각을 만든다는 이론입니다. 카피copy가 학습의 기본이라는 거죠. 아기들은 태어나서부터 부모가 하는 모든 것을 보고 따라 하며 학습을 시작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보를 보고 뇌에 복제해 생각을 만들어갑니다. 따라서 보는 정보가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뒤 사람들이 보는 정보는 달라졌고, 그래서 36억 인구의 생각이 달라져버렸습니다. 이 정보 전달의 변화가 개인과 사회가 바뀐 가장 큰 이유입니다.
사회의 정보 전달 체계 역시 달라졌습니다. 지난 30년간 현대사회 정보 전달의 중심축을 담당하던 신문과 방송은 이제 그 힘이 현저히 줄어들었죠. 대한민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전체 가구 중 유료 종이신문 구독률은 무려 73퍼센트였습니다. 아침에 신문이 배달되면 73퍼센트의 국민이 같은 시간대에 모두 같은 걸 보고 복제하는 나라, 그래서 매일같이 유사한 생각을 함께 만들던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였죠. 그래서 언론의 힘도 막강했고 사회 전체가 갖는 대중의식도 매우 견고한 사회였습니다. 길을 걷다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방송이 갖고 있는 계몽의 힘도 사회 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대중의식의 복제는 우리나라 사회 유지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9년 11월 애플의 아이폰이 대한민국에 상륙하고 10년 만에, 우리 사회의 정보 전달 체계는 엄청난 속도로 변해버렸습니다. 종이신문 구독률은 20퍼센트까지 추락했습니다. 피부로 느끼는 변화는 훨씬 더 거대합니다. 2018년 대기업의 신임 과장 교육을 맡게 되었을 때, 30대 중반인 교육생들 3,500명에게 종이신문을 보냐는 질문을 해보았는데요. 본다고 답한 사람은 단 9명뿐이었습니다. 이보다 어린 대학생들은 이미 거의 종이신문을 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신문 기사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기사와 정보를 봅니다. 통신사 통계에 따르면, 1인당 모바일 데이터 사용량은 지난 10년간 100배 이상 늘었고 LTE 시대에 진입하면서 콘텐츠의 전달 속도는 더 빨리지고 있습니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5G 시대가 본격화되면 이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폰을 열어 정보를 봅니다. 뇌는 의식하든 안 하든 그걸 복제하고, 복제된 정보는 생각으로 저장됩니다.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뜻이죠. 그럼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뉴 노멀, 역변 없는 진화
일단, 매일같이 반복되던 대중의식의 형성 과정이 사라졌습니다. 아침에 신문이 배달되어도 생각의 동시 복제는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대중의식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정보를 보는 패턴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스마트폰을 손에 든 인류는 정보의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알아버렸고, 그에 따라 정보를 보는 방식도 진화한 것입니다. 뇌는 자기에게 즐거움을 주는 정보를 끊임없이 원합니다. 이것이 진화의 방향이죠. 그래서 스마트폰을 통해 자기가 좋아하는 정보만을 보고 복제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생각은 모두 개인화되었습니다. 언론은 여전히 중요하긴 하지만 과거와 같은 절대적 권력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되었고 그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정보 선택권을 가진 인류가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하면서 ‘선택받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새로운 기준이 등장한 탓입니다.
이렇게 정보 전달 체계와 권력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우리 사회는 큰 혼란에 직면하게 됩니다. 달라진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이 사회에 새로운 기준을 요구하면서 일어나는 혼란입니다. 과거에는 관행이라고 생각되던 일들이 이제는 받아줄 수 없는 범죄행위가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개인화된 대중들은 더 이상 개인의 행복과 권익을 침해하는 어떤 불합리한 권력도 용인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 사회는 조직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의 불합리한 폭력적 행위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과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회의 발전과 개인화가 맞물리면서, 이 모든 불합리한 행위가 더는 용인될 수 없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스마트폰으로 이런 행위를 언제 어디서든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 지탄받아야 할 행동들이 드러나게 되었고,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묻어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도덕의 새로운 기준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겁니다. 이런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사회가 진화하는 과정인 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미 상식이 된 미투 운동이나 젠더간의 갈등 문제 등이 대표적 현상입니다. 이런 변화는 사회 구성원의 의식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변화는 계속될 겁니다. 사회 기준의 변화에 따른 많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새로운 인류가 새로운 사회의 기준, 새로운 도덕의 기준, 새로운 상식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에게는 힘든 일일 수 있겠지만 적응해야 하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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