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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불러온 재앙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인데요. 저녁 때 엄마가 완전히 흥분해서 전화를 하더니, 할아버지가 텔레비전에 나온다는 거예요. 그때 할아버지는 얼핏 보기에 아주 점잖아 보이는 아저씨와 자본주의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었는데, 두 분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하는 법이 없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두 분의 논쟁이 어떤 내용인지 거의 이해하지 못했죠. 그래도 할아버지가 상당히 화가 난 것 같다는 감은 잡겠더라고요. 왜 그러셨던 거예요?
잘 봤구나, 조라Zohra야. 이 할아버지는 그때 무척 화가 나 있었단다. 나와 마주보고 앉아 있던 그자는 페터 브라베크 레트마테Peter Brabeck-Letmathe라고, 네슬레 사의 회장이지. 네슬레 사는 말이다. 전 세계에서 제일 큰 식품 관련 다국적 기업이야. 약 150년 전에 스위스에서 설립되었는데, 오늘날엔 지구상에서 27번째로 큰 기업으로 성장했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네슬레에서 나온 초콜릿은 맛만 좋은데! 그리고, 우리 스위스가 전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잘하는 기업을 키워낼 역량이 있다는데. 그게 왜 할아버지를 화나게 한 거죠?
그건 말이지, 브라베크 레트마테가 자기 친구인 네덜란드 출신의 유명한 역사학자,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의 이론을 자꾸 들먹였기 때문이야. 이 할아버지는 브레흐만이 역사와 경제를 보는 관점에 반대하는 사람이거든. 그 사람의 생각은 “세계 역사의 거의 99퍼센트에 해당되는 기간 동안 인류의 99퍼센트는 가난해서 배를 곯았으며 불결했고 두려움에 떨었으며, 야만스럽고 추한 데다 질병에 시달렸다. (…) 그러다가 지난 200년 사이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 우리 가운데 수십억 명은 부자가 되었고, 잘 먹고 청결하며 안전하게 살게 되었다. 심지어 얼굴마저 매우 멀끔해졌다. 우리가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조차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풍족함을 누리고 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거야.
브라베크 레트마테는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는 인류의 자유와 복지를 보장하며, 지구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경제 형태”라고 주장한단다.
그런데 그 주장은 사실이 아닌가요?
전혀 아니지! 오히려 그와 정반대가 사실이라고 해야 할 정도야!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생산 방식은 무수히 많은 범죄를 낳았단다. 또한 날마다 수만 명의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와 굶주림으로 인한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의학이 벌써 오래전에 정복한 전염병들이 돌아오는 바람에 이들이 대량으로 목숨을 잃는 현실에도 책임이 있어. 이것뿐만 아니라 환경 파괴, 토양과 해양 오염, 숲의 파괴 등도 모두 자본주의 생산 방식이 가져온 재앙이란다.
현재 우리의 허약한 지구엔 76억 명이 살고 있는데2017년 12월 기준-옮긴이, 그중에서 약 48억 명은 소위 ‘남반구’로 상징되는 가난한 나라들에 거주하고 있고, 그들 가운데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만도 수억 명에 이른단다.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내일 하루 또 어떻게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지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아 끝없는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버지들은 아버지들대로 수모를 당하지. 일자리가 없어서 식구들 식비조차 벌지 못하니 가족들에게 멸시당하기도 하고 말이야. 행정 당국에서는 이들을 이른바 ‘항구적인 실업자’라는 용어로 분류한단다.
사정이 이러니 어린아이들은 비참한 궁핍과 불안 속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니 빈번한 가정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단다. 요컨대 아름다워야 할 어린 시절이 너무도 자주 풍비박산이 나는 게지. 세계에서 10억 명 가량은세계은행은 이들을 ‘극빈자extrêmement pauvre’라고 부른단다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산다고 봐야 해.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관심사란다.
즉 이들이 저개발로 인한 배고픔과 목마름, 전염병, 전쟁 같은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거야. 이 문제로 해마다 목숨을 잃는 남녀노소의 수가 6년에 걸친 제2차 세계대전이 야기한 사망자 수보다도 많단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제3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라고 말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지.
할아버지 말씀을 제가 잘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듣고 보니 브라베크 회장과 할아버지는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이로군요. 아무튼 자본주의의 좋은 점에 대해서도, 나쁜 점에 대해서도 두 분은 의견이 일치할 때가 없더라니까요.
우리 손녀 말이 맞아. 내가 보기엔, 그리고 나와 입장을 같이 하는 모든 사람들이 보기엔 말이지, 자본주의는 지구상에 일종의 ‘식인 풍습’을 만들어냈단다. 극히 적은 소수를 위한 풍요와 대다수를 위한 살인적인 궁핍이 식인 풍습 아니면 뭐겠니. 나는 그러므로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진영에 속하지. 그래서 그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싸우는 거고.
그렇다면 이것저것 재볼 것 없이, 그저 자본주의를 완전히 무너뜨리면 되는 건가요?
잘 듣거라, 내가 정말 아끼는 손녀 조라야. 그 질문에 대한 이 할아버지의 대답은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구나. 소수의 인간들, 특히 북반구에 살거나 남반구 국가의 지도자급에 속하는 인사들은 19~20세기에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산업혁명, 과학혁명, 기술혁명 등의 멋진 혁명 덕분에 이제껏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경제적 복지를 달성했단다.
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특징은 놀라울 정도의 활력과 창의성이지. 가장 강력한 자본소유주들은 엄청난 금융 수단을 한곳으로 집중시키고 인재를 최대한 끌어모음으로써, 또한 투지와 경쟁을 조장함으로써 전자와 정보, 약학과 의학, 에너지, 항공학, 천문학, 재료공학경제학자들이 “문젯거리를 만드는 지식”이라고 부르는 것들 등 최대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과학적, 기술적 연구를 통제하고 관리한단다.
그자들은 자기들이 후원하는 연구소와 대학들 덕분에 눈부신 성과를 얻어내고 있지. 특히 생명공학과 유전학, 물리학 분야에서의 성과가 주목할 만하단다. 노바르티스Novartis나 호프만-라로슈Hoffmann-La Roche, 신젠타Syngenta 같은 스위스 제약회사의 실험실에서는 새로운 분자, 다시 말해서 신약이 매달 만들어지고 있어. 미국의 월스트리트에서는 새로운 금융 상품이 거의 매 분기 출시되고 있고, 농업 분야의 다국적 기업들은 쉬지 않고 생산을 늘려가며, 종자를 다양화하고, 나날이 수익성이 높아지는 비료를 생산해서 수확량을 증가시키며, 이를 방해하는 해충들로부터 농산물을 보호하는 데 효과적인 제초제를 만들어내지. 천체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사는 별과는 다른 우주, 자기들 나름대로 태양 주변을 도는 천체를 관찰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태양계 밖 별들을 찾아내고, 자동차 업계에서는 해마다 한층 더 견고하고 빠른 자동차를 생산해내며,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은 나날이 성능이 좋아지는 위성들을 우주로 쏘아올리고 있어. 이처럼 인간의 삶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수천 가지 새로운 발명품들이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지. 이 발명품들은 해마다 세계 지적재산권기구Organisation Mondiale de la Propriété Intellectuelle, OMPI에 제출되어 재산권을 보호받는단다.
말씀대로라면, 할아버지는 자본주의 생산 방식과 부의 축적 방식의 독창성과 창의력에 놀라신다는 건데….
그렇지, 조라야. 잘 생각해봐. 1992년부터 2002년까지 고작 10년 동안 세계 총생산은 2배 증가했고, 세계 무역량은 3배 증가했어. 한편 에너지 소비는 평균적으로 4년마다 2배씩 증가하지. 새천년이 시작된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는 물자의 풍족함을 누리고 있어. 지구엔 부가 넘친다고. 사용 가능한 물자의 양이 인류에게 꼭 필요한 만큼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자본주의는 좋은 거로군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세계의 식인 풍습은 뿌리 뽑혀야 하지. 그런데 과학과 기술이 이루어낸 눈부신 성과는 보존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강화되어야 하기도 한단다. 인간의 노동과 재능, 천재성은 공동의 선, 즉 우리 모두의 공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마땅하지. 소수의 안락과 호사, 권력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선 안 된다는 말이야.
나중에 할아버지가 새로운 세상, 우리가 꿈꾸는 그 세상은 어떤 조건을 충족하면서 실현되어야 하는지 말해주마. 그러니 지금은 우선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부터 설명하기로 하자.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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