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연습
내 직업은 의료 배우, 환자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급여는 시간당으로 받는다. 의과대학생들은 내 연기를 보고 질환을 추측한다. 나는 표준화 환자standardized patient라고 불리는데, 말하자면 어떤 질병의 표준 증상들을 연기한다는 뜻이다. 간단하게는 흔히 SP라고 한다. 자간전증, 천식, 충수염 등의 증상쯤은 능숙하게 연기한다. 입술이 파란 아기의 엄마 역할도 한다.
의료 연기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우리에게 대본 하나와 종이 가운 한 벌이 주어진다. 시간당 급여는 13.5달러. 대본 분량은 10쪽에서 12쪽 정도 된다. 대본에는 우리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간단히 설명되어 있다. 어디가 아픈지는 물론이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도. 언제, 얼마만큼 증상을 보여줄지는 대본에 정해져 있다. 우리는 정해진 규정에 따라 답을 펼쳐 보여야 한다. 대본은 우리의 허구적 삶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간다. 우리 아이들의 나이, 부모님의 질병, 남편의 부동산과 그래픽 디자인 회사 이름, 지난해에 줄어든 체중, 우리가 매주 마시는 술의 양까지.
내가 맡은 사례는 스테파니 필립스, 전환장애conversion disorder라는 병에 걸린 스물세 살의 여성이다. 그녀는 죽은 오빠 때문에 슬퍼하는데, 그 슬픔이 발작으로 승화되곤 한다. 나로선 처음 듣는 질병이다. 슬픔 때문에 경련이 일어날 수 있는지 몰랐다. 그녀 역시 그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녀는 그 발작이 자신이 잃어버린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스테파니 필립스
정신과
SP 훈련 자료
사례 개요
당신은 23세의 여성 환자로, 신경학적 원인 미상의 발작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발작을 일으킨 사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입에 거품을 물고 고래고래 욕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대체로 당신은 발작이 일어나기 전 그것이 온다는 걸 느낍니다. 발작은 2년 전 당신 오빠가 베닝턴 애비뉴 브리지 바로 남쪽 강에 빠져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미식축구 뒤풀이 야외 파티에서 술을 마시고 수영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당신과 오빠는 미니 골프장에서 같이 근무했습니다. 요즘 당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별다른 활동도 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사람들 앞에서 발작을 일으킬까 봐 두렵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의사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당신 오빠의 이름은 윌입니다.
복약력
당신은 어떤 약도 복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항우울제를 먹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당신에게 그 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병력
당신은 건강이 문제가 된 적이 없습니다. 최악의 건강 문제는 팔 골절이었습니다. 팔이 부러진지던 현장에 윌이 있었습니다. 의료진을 부르고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당신을 진정시킨 사람이 바로 윌입니다.
우리의 모의시험은 세 개의 맞춤형 병실에서 치러진다. 방마다 진찰대와 관찰 카메라가 있다. 우리는 의대 2, 3학년생을 상대로 소아과, 외과, 정신과를 학과별로 돌아가며 테스트한다. 정해진 시험 날이면 각각의 학생은 서로 다른 사례를 연기하는 서너 명의 배우와 “대면” ― 그들이 쓰는 기술적 용어 ―을 해야 한다.
어느 학생은 통증 단계 10인 한 여성의 복통을 촉진하고, 그런 다음에는 망상증이 있는 젊은 변호사와 마주 앉아 소장에서 벌레들이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 때가 언제인지 물어야 하겠지만, 어쩌면 그 느낌은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다음 그 의대생은 내 방에 들어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내 배에 묶은 베개가 조산이 될 거라고 말하거나, 또는 내가 병든 플라스틱 아기 인형을 보며 “너무 조용해요” 하고 걱정스레 말하는 동안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일단 15분의 대면이 끝나면 의대생은 방을 나가고, 나는 그 학생의 수행평가를 위한 칸을 채워나간다. 첫 번째 부분은 체크리스트다. 학생이 끌어낸 중요한 정보는 무엇입니까? 학생이 밝혀내지 못한 정보는 무엇입니까? 평가의 두 번째 부분은 감정에 관한 것이다. 대체로 체크리스트 항목 31번인 “나의 상황/문제에 대해 말로 표현된 공감”이 가장 중요한 범주로 인정되고 있다. 우리는 말로 표현된이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교육받는다. 동정적인 태도나 다정한 말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생들은 연민이라고 인정받을 만한 적절한 단어를 말해야 한다.
우리 SP들에게는 역할을 준비하고 역할에서 헤어 나오기 위한 우리만의 공간이 주어진다. 꾸깃해진 파란 실내복을 입은 노인들, 우리가 입는 종이 가운에 어울리지 않게 근사한 부츠를 신은 미대 석사들, 병원용 판초와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은 지역 10대들이 모두 한 공간에 모인다. 우리는 서로의 허리에 베개를 묶어준다. 아기 인형들을 건넨다. 어린 폐렴 환자 베이비 더그는 싸구려 면 담요에 꽁꽁 싸인 채 계주 바통처럼 이 여자에게서 저 여자에게로 건네진다. 우리 중에는 지역 극단 배우들과 무대 출연 기회를 찾는 연극 전공 학부생들, 유흥비를 벌려는 고등학생들, 시간이 남아도는 은퇴자들이 많다. 나는 작가다, 말하자면 파산을 면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우리는 인구학적 만물상을 연기한다.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된 젊은 운동광들, 습관적으로 코카인을 복용하는 기업 간부들. 40년을 같이 산 남편을 막 배신해 성병에 걸린 할머니, 그녀에게는 그 배신을 말해주는 임질 증세가 있다. 그녀는 수치심의 베일 뒤에 숨어 있기 때문에 그녀를 맡은 의대생은 그 베일을 젖혀야 한다. 만약 의대생이 제대로 질문하면, 그녀는 대면의 중간쯤에 이르러 울면서 쓰러지는 연기를 하게 된다.
일시적 기억상실을 연기하는 친구는 분장을 한다. 턱의 자상, 멍든 눈, 광대뼈를 따라 녹색 아이섀도로 그린 멍 자국. 그는 자동차 접촉사고를 당했지만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친구는 대면을 하기 전에 향수를 뿌리듯 몸에 술을 뿌린다. 그는 최선을 다해 지켜온 비밀의 일부, 매우 “뜻밖의” 사항들을 통해 알코올 중독의 낌새를 흘려야 한다.
우리 대본에는 반짝이는 순간들이 가득 박혀 있다. 임산부 라일라의 남편은 요트 선장이라 멀리 크로아티아로 항해를 떠났다든가 하는. 충수염 환자 앤절라의 삼촌은 순회공연 버스를 타고 가다 토네이도를 만나 죽은 기타리스트였다. 우리의 친척 중에는 중서부 특유의 폭력적인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많다. 트랙터나 곡물용 승강기 사고로 찢겨 죽거나, 하이비 식료품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죽거나, 악천후에 쓰러지거나, 미식축구 뒤풀이 야외 파티총기 사고에서 죽었다. 또는 내 오빠 윌처럼, 그보다는 조용한 방탕의 여파로 죽었다.
대면 사이사이에 우리에게는 물과 과일, 그래놀라바가 주어지고, 박하사탕은 무제한 공급된다. 우리의 입 냄새와 꼬르륵거리는 배, 실제로 일어나는 우리 신체의 부수작용 때문에 학생들을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
일부 의대생은 대면 도중에 긴장한다. 의대생들 절반이 백금 결혼반지를 끼고 있다는 점만 빼면, 대면은 어색한 데이트와 비슷하다. 나는 그저 용돈을 벌기 위해 발작 연기를 하는 미혼 여성은 아니라고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나도 일을 해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언젠가 이 일을 책으로 쓸지도 모른다고요! 우리는 내 고향으로 설정된 아이오와 시골의 농촌 소도시에 관해 몇 마디를 주고받는다. 우리는 상대가 이 짧은 대화를 지어내고 있다는 걸 서로 알고 있고, 상대가 지어낸 이야기가 그 사람 성격의 진짜 면면을 보여주는 것처럼 반응하기로 동의한다. 우리는 우리 사이의 허구를 줄넘기 줄처럼 잡고 있다.
한번은 한 학생이 우리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잊어버린 채 나의 가짜 고향에 관해 이것저것 자세하게 묻기 시작하는 바람에 ― 우연히도 거기가 그의 진짜 고향이다 ― 그의 질문이 내 대본의 범위,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버린다. 사실 나는 내가 연기하는 인물이나 내 고향으로 설정된 장소에 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는 우리의 계약 사항을 잊어버린다. 나는 더 열심히, 더 진심으로 헛소리를 한다. “머스커틴에 있는 그 공원!” 나는 노인네처럼 무릎을 친다. “어릴 때 거기서 썰매를 타곤 했어요.”
나머지 학생들은 모두 사무적이다. 그들은 마치 식료품점에서 살 물건들의 목록을 읽듯 우울증과 관련된 임상 체크리스트를 딱딱하게 읊어나간다. 수면 장애, 식욕 변화, 집중력 감퇴. 내가 대본에 충실해서, 눈을 맞추지 않으면 더러 짜증을 내는 학생도 있다. 나는 꽁꽁 싸맨 채 멍하니 있도록 되어 있다. 짜증 난 학생들은 시선을 피하는 나의 행위를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멈출 줄 모르고 내 시선을 갈구한다. 나와 씨름하며 눈을 맞추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힘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그들이 마땅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
나는 정형화된 그들의 주장에서 공격성을 느낀다고 평하는 데 점점 익숙해져간다. 정말 힘드시겠어요 [아기가 죽어간다니], 정말 힘드시겠어요 [식료품점 한가운데서 또 발작을 일으킬까 봐 두려워하는 건], 정말 힘드시겠어요 [당신이 바람을 피웠다는 박테리아 증거가 자궁에 있다는 건]. 차라리 그렇게 말하지, 난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다른 학생들은 공감이란 항상 선물과 침해 사이에 위태롭게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이해하는 듯하다. 심지어 그들은 양해를 구하지 않고서는 내 피부에 청진기를 댈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허락을 필요로 한다. 지레짐작하는 걸 싫어한다. 그들이 말을 더듬는 건 알게 모르게 나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행위다. 저기……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 심장 소리를 들어봐도 될까요? 그럼요, 내가 말한다. 괜찮아요. 개의치 않는 것이 내 일이다. 그들의 겸손은 나름대로 일종의 연민이다. 겸손이란 곧 그들이 질문한다는 뜻이고, 질문은 곧 그들이 답을 구한다는 뜻이며, 답은 곧 그들이 체크리스트상의 점수를 따게 된다는 뜻이다. 내 어머니가 항우울제 웰부트린을 복용한다는 사실을 알아내면 1점, 내가 지난 2년 동안 손목을 긋곤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면 1점, 내가 두 살 때 아버지가 곡물용 승강기 사고로 죽었음을 알아내면 1점. 내 삶의 모든 영역 아래 그물처럼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상실의 근본 체계를 깨달은 데 대한 점수다.
이런 의미에서 공감은 단지 체크리스트 항목 31번 ― 나의 상황/문제에 대해 말로 표현된 공감 ― 으로 측정될 뿐 아니라, 내 경험을 얼마나 철저하게 상상했는지 가늠하는 모든 항목으로도 측정된다. 공감은 그저 정말 힘드시겠어요 하는 말을 꼬박꼬박 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난을 빛 속으로 끌어와 눈에 보이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공감은 그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답을 하게끔 질문하는 것이다. 공감에는 상상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질문도 많이 필요하다. 공감하려면 당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감은 자기 시야 너머로 끝없이 뻗어간 맥락의 지평선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늙은 여인의 임질이 그녀의 죄의식과 연결되고, 그 자녀들은 그녀의 유년기와 연결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가정생활에 숨 막혀 했던 그녀의 어머니와 연결되고, 다시 그녀 부모의 깨지지 않은 결혼과 연결된다. 어쩌면 모든 것의 뿌리는 그녀의 첫 번째 월경, 그것이 수치심과 전율을 안겨주었던 방식에까지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른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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