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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기 전에 한국을 떠나야 한다고 K는 줄곧 생각했다. 그건 언제부터의 일이었을까? 작년 4월? 아니 어쩌면 몇 년 전부터였는지도 모른다. K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다소 막연하고 무모한 발상이다 싶었으나, 그럴 수 있는 기회가 3월 초에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재작년에 암으로 부인을 잃은 의과대학 후배가 K에게 전화를 걸어와 페이 닥터 자리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물어왔던 것이다. 그는 부인이 암 선고를 받자 자신이 운영하던 개인 병원을 정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의 옆을 지킨 뒤 고향 거제도로 내려가 이때껏 소식이 없던 터였다. 그러니까 서울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K에게 전화를 한 셈이었다. 그는 아이들 학교 문제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말했다.
사흘 뒤 K는 후배와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당분간 자신의 병원을 맡아줄 수 없냐고 오히려 부탁하는 입장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같은 페이 닥터라도 원장 자리를 두고 한 말이었다. 왜냐고 묻는 후배에게 K는 긴 휴가를 떠날 계획이라고 에둘러서 대꾸했다. 기간이 얼마가 될지는 K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후배에게 병원 인수인계를 끝내고 K는 3월 하순에 비행기로 무려 열 시간이 걸리는 북미北美의 한 도시인 밴쿠버에 도착했다. K는 이 도시에서 먼저 H를 만나볼 생각이었다. 공항에 내려 K는 H에게 자신이 가까이에 와 있음을 알렸다. 3년 전에 두 사람은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됐고 이때껏 꾸준히 연락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직접 통화를 하거나 만난 적은 없었다. 미리 알리지도 않고 찾아와 막상 부담을 느끼고 있는 걸까. K가 호텔에서 나흘째 머무는 날까지 H에게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페이스북에서도 접속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구글 지도 찾기로 검색해보니 K가 머물고 있는 호텔과 H가 사는 곳은 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호텔에 머무는 동안 K는 아침저녁으로 근처에 있는 숲을 산책했다. 3, 40미터씩 되는 미송과 붉은 삼나무로 뒤덮인 이 거대한 숲은 서쪽으로 바다를 끼고 있었고, ‘태평양의 영혼’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수많은 트레일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K는 첫날 숲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호텔로 돌아오는 데 한참이나 애를 먹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자막으로 ‘봄철 곰 주의보’를 흘려 내보냈다.
도착한 다음 날 K는 한국인 교민이 운영하는 렌터카 업체를 찾아가 일제 혼다 어코드 차량을 렌트하면서 임대 기간을 일단 한 달로 정했다. 또 당장 필요한 일은 아니었으나 이민국에 전화를 걸어 워크 퍼미트 신청 절차에 대해 알아보았다. 현지 면허를 취득해 장기 체류를 하려면 비자 변경 신청을 하거나 아예 이민 절차를 밟아야만 했다. 사흘째 되던 날에는 H가 운영하는 다운타운의 서점에 가보았지만 문이 닫혀 있는 상태였다. 서점의 규모는 K의 짐작보다 작았고 영어 학습 교재와 한국어 서적을 취급하고 있다는 문구가 간판에 적혀 있었다. 주로 유학생과 현지 교민을 상대로 하는 서점인 듯했다. 출입구에 ‘휴가 중’이라고 씌어진 쪽지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K는 낙담한 심정으로 돌아섰다.
그 외 대부분의 시간을 K는 호텔 방에서 보냈다. 혼자 관광을 할 기분은 아니었고 단지 음식을 사 먹기 위해 주변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공항에 내린 순간부터 어쩌다 한국인끼리 눈이 마주치면 서로 은근히 외면한다는 느낌을 받고 나서는 더욱 밖에 나가는 일을 꺼렸다. 어디를 가더라도 한 번은 한국인과 마주치게 됐는데, 괜한 자격지심 때문인지 K도 그때마다 반사적으로 눈길을 피하곤 했다.
H와 연락이 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K는 자신이 그녀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새삼 자문해보았다. 만난 적이 없었으므로 물론 단정적으로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동시에 K는 H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3년 동안 수많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상대에 대한 온갖 사소한 정보가 누적돼 있는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서로의 얼굴이 등장하는 사진도 그간 여러 차례 주고받은 터였다. 다만 통화를 한 적이 없었으므로 목소리의 고유한 톤이나 울림은 여전히 미지인 채로 남아 있었다. 교신의 시간과 단계가 지날수록 오히려 서로 통화를 꺼렸던 것은 그간에 자기 방식대로 쌓아놓은 상대에 대한 환상이 훼손될지 모른다는 일말의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와 실제로 대면한다는 것은 언제나 엄중함과 두려움이 뒤따르게 마련이었다. 그러므로 K는 H를 만나는 일에 대해서도 지나친 기대를 품지 않으려 했다. 살아오는 동안 자신이 만들어놓은 환상의 누추한 실체를 목격하면서 그때마다 조용한 절망과도 같은 체념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페이스북에서 교신을 하게 된 계기는 이러했다. H가 로키 밴프를 여행하면서 풍경 사진을 몇 장 올렸고 K는 눈에 뒤덮인 웅장한 산들을 눈여겨보다 무심코 ‘그 숲에서 곰을 만났나요?’라는 글을 메신저에 남겼다. 잠시 후 H가 ‘곰? 무슨 곰요?’라고 물어왔다. 둘 사이의 대화가 이어져, K는 영화 「가을의 전설」의 마지막 장면, 즉 늙은 주인공이 곰과 사투를 벌이다 장렬하게 죽는 장면을 언급하고 나서 ‘야생의 곰과 가까이에서 대면해보는 게 오래된 꿈이자 열망’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H가 뜻밖의 말로 응대해왔다.
‘K 씨께서는 현상의 역동이 아니라, 그 안에 전해 내려오는 풍속까지 욕망하시는군요. 무엇이 K 씨를 그렇게 만든 걸까요?’
순간 K는 바늘로 심장이 찔린 듯한 뜨거운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 감정의 실체를 분명히 알아차리기도 전에 K는 자신이 원하는 궁극의 상태에 대해 장황하게 토로했다.
‘혼돈을 치대고 패서 달궈 곁눈질과 수군거림 가운데 조응하는 정중동靜中動의 상태에 이르기를 염원하며 살고 있습니다. 불에서 달궈져 나온 도자기처럼 말입니다.’
이후 K와 H의 교신은 거듭되어 어느덧 일상적으로 변해갔다. 그 과정에서 K는 H가 캐나다 국적을 가진 교민이며 한국을 떠난 지 이미 17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딸과 둘이 살면서 다운타운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도, 고향이 제주도이며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까지도. H는 1969년생, 한국 나이로는 마흔일곱 살이었다. K도 H에게 물론 자신의 신상을 공개했다. 1962년생 81학번이며 직업은 신경정신과 전문의, 자세한 사정은 밝히지 않았지만 현재 혼자 살고 있다는 것까지.
두 사람이 심정적으로 더욱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어느 날 H가 ‘고향이 그리워 몸이 타들어갈 지경’이라는 메시지를 K에게 보내온 다음이었다. H는 제주의 검은 돌과 노란 유채꽃과 자리물회와 한치회와 연둣빛의 바다와 거친 바람과 사람들의 얼굴이 사무치게 그립노라고 K에게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이렇듯 폭발할 듯한 향수鄕愁의 순간들이 2, 3년 간격으로 어김없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 메시지를 받은 주말에 K는 제주도로 내려가 H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아 시간대별로 페이스북을 통해 전송했다. 또한 한치, 옥돔, 문어, 다시마, 멸치, 미역 등속의 건어물을 택배로 부쳐주었다. H는 감격한 듯했고 급기야 K와 기회가 되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 캐나다에 올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심지어는 보고 싶다, 라는 벌거벗은 말까지 서슴없이 주고받게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K와 H는 마치 오래된 연인인 양 서로에게 익숙해졌고 하루라도 연락이 되지 않으면 어느덧 초조함을 느끼는 사이로 변했다. 하지만 역시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한 관계였으므로 서로 내밀한 것들은 여전히 완고하게 은폐돼 있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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